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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20911 싱가포르

05. 싱가포르에서 시내버스 타기, 우드랜즈 워터프론트, 중화식 할랄 식사, 셈바왕 온천공원(2일차-04)

by 집너구리 2022. 10. 31.

싱가포르 식물원에서 나와서 다음으로 찾아갈 목적지는 우드랜즈 워터프론트(Woodlands Waterfront)이다. 우드랜즈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잇는 다리가 위치한 지역명이다. 실제로 이곳에서 말레이시아 조호르바루로 넘어갈 수 있고, 체크포인트(국경검문소) 바로 근방에는 바다 건너 말레이시아 땅을 조망할 수 있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우리가 갈 곳이 바로 그 공원이다. 싱가포르 식물원에서 바로 갈 수 있는 수단은 없고,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여 환승해 가야 한다.

앞서 구매한 이지링크 교통카드로 싱가포르 버스도 이용할 수 있다. 싱가포르 버스는 보통 거리에 비례하여 요금이 증가하는 체계를 가지고 있다. 탑승 방식은 한국과 똑같이, 앞문으로 올라타면서 카드를 찍고 뒷문으로 내리면서 카드를 한 번 더 찍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기본요금이 일단 산정되고, 그 다음 나가면서 추가요금이 나중에 산정되는 방식인 모양이다. 

이 때 주의할 사항이 몇 가지 있다.

먼저, 버스를 타기 전에 내 교통카드에 잔액이 충분히 충전되어 있는지 봐야 한다. 관광객이라면 보통 선불제 이지링크를 구매해서 지하철 역의 자판기에서 충전해 사용하게 된다. 이런 선불제 교통카드를 시내버스에서 처음 태깅한다면, 태깅한 버스 정류장에서부터 종점까지의 예상 청구금액과 승객의 선불 이지링크 잔액을 비교하여 잔액이 종점까지의 예상 요금보다 적으면 탑승 자체가 거부된다. 우리는 이걸 전혀 알지 못해서 나중에 엄청난 고생을 하게 되지만 이는 후술하도록 하겠다. 싱가포르 시내버스의 태깅기에는 잔액이 표시되지 않으니, 버스를 탈 예정이 있다면 그 전에 미리 지하철역 충전소 등에 가서 잔액을 확인해 두는 것이 좋다.

두 번째로, 싱가포르 시내버스는 차내 안내방송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자동 안내방송으로 출발 시와 도착 시에 다음 정류장이 무엇인지를 다 알려 주는 한국 시내버스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무척 당황스러울 것이다. 쫄지 말고 버스 안에서는 시종 구글 지도 앱을 켜 두는 것을 추천한다. 싱가포르는 구글 길찾기 서비스가 매우 유용한 나라 중 하나로 생각보다 정류장 정보가 정확하게 표시된다. 데이터가 부족한 여행자라면 미리 몇 정거장을 간 뒤에 무슨 이름을 가진 정류장에서 내려야 하는지를 파악해 두는 것이 좋다. 그리고 창문 밖을 최대한 자주 내다보고, 절대로 졸지 말 것. 여행하다 보면 지쳐서 깜박 졸 수야 있겠지만, 싱가포르에서는 잘못해서 버스에서 까딱 졸았다 하더라도 내가 잠결에라도 듣고 정신을 차릴 수 있을 법한 청각정보가 전혀 없다. 버스 시스템이 정말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여행객도 이용하기 편하다고는 하지만, 대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튼 이렇게 버스를 타고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 중 하나인 홀랜드 빌리지(Holland Village) 역으로 향한다. 여기에서 서클선을 타고 컬드컷(Caldecott) 역에서 톰슨 이스트코스트 선(Thomson-East Coast Line)으로 갈아탄다. 일단 갈아탄 다음에는 좀 졸아도 된다. 왜냐면 우리가 향하는 우드랜드 노스(Woodlands North) 선은 톰슨 이스트코스트 선의 종착역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싱가포르의 국경에 있는 역이니 그 이상 갈 수는 없는 것이다.

싱가포르 지하철은 어느 역을 가든 스크린도어에 진행 방향의 주요 역들을 표시해 둔다. 내가 가고자 하는 역이 어느 종점 방향인지를 미리 확인해 둔다면 승강장에 내려갔을 때 잘못된 열차를 탈 확률이 낮아질 것이다.

이렇게 전동차 안에도 열차 노선도가 잘 붙어 있으므로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말도 안 되게 꼬여 있는 다운타운 선의 저 압도적인 존재감... 톰슨 이스트코스트 선은 곧 점선으로 표시된 미개통 구간이 개통될 예정이므로 나중에라도 이 노선도를 보실 분들은 참고하시길.

우드랜즈 노스 역에 내려서 나가기 전에 환전소에 잠깐 들렀다. 국경 지대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전철역 지하에 조그맣게 환전소가 자리잡고 있다. 교통비가 생각보다 자잘하게 들고 있는데 가장 편하게 충전할 수 있는 것이 현금이라 어느 정도 들고 있어야겠다는 아내의 판단 때문이다. 우대율까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사람이 적기도 하고 직원 아저씨가 친절하시기도 해서, 우드랜즈 쪽을 관광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들러 봐도 좋을 듯하다.

구글 지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바이지만 우드랜즈 노스 역 근처는 완전히 허허벌판이다. 이런 풍경이 계속 이어지는 염천하에 한 10-15분 정도를 걸어야 목적지인 우드랜즈 워터프론트에 도착할 수 있다. 물론 버스를 타고 가는 것도 가능하기는 한데, 걷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고 사람도 거의 없다시피 하므로 걸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우드랜즈 워터프론트 공원은 남쪽에 있는 엄청나게 큰 공원인 '애드미럴티 파크'와 연결되어 있다. 지하 통로로도 연결되어 있고, 지상으로도 횡단보도 하나를 통하면 서로 왕래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 관계상 애드미럴티 파크는 패스.

싱가포르 시내를 거닐다 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만날 수 있는 광경이다. 거대하게 자라 있는 가로수에 갖가지 착생식물이 달라붙어 있다. 난초류나 덩굴식물류는 물론이고, 사람 몸만한 이파리를 가진 초대형 고사리가 몇 개씩 달라붙어 있기도 한다. 과연 내가 열대에 있기는 하구나 하는 실감이 든다.

 

길 하나를 건너면 우드랜즈 워터프론트 공원에 도착한다. 생각보다 제법 넓은 공원이지만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평일 낮 한 시 반쯤이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 일부러 찾지 않는 이상 이곳을 이 시간에 거닐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주위에서 생판 처음 듣는 새 소리가 들려온다. 어떻게 음으로 옮길지도 알 수 없는 괴상한 소리인데, 녹음을 해 두지 않아 아쉽다.

공원 안쪽으로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이렇게 탁 트인 전망 공간이 나타난다. 조호르 해협(Straits of Johor)이다. 이곳 전망대에서 내다보이는 맞은편 해안이 바로 말레이시아 대도시 중 최남단에 위치하는 조호르바루(Johor Bahru)이다.  전망대에 서서 왼쪽을 바라보면 해협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큰 다리가 하나 있는데, 이것이 조호르바루 도심과 싱가포르 우드랜즈 체크포인드를 잇는 조호르 코즈웨이 대교(Johor Causeway Bridge)이다. 기본적으론 자동차나 기차를 타고 통과할 수 있는 다리이지만 몇몇 용자들은 걸어서 건너기도 한단다. 양국의 체크포인트 간의 거리는 대략 2-3킬로미터로 퍽 가깝기 때문에 사실 체력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 거리다. 다만 출입국 절차가 까다로워서 그렇게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우리도 이번에 큰맘 먹고 말레이시아로 건너가 볼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출입국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쓸 것이 걱정되어 다음 여행으로 미루기로 하였다. 저렇게 국경을 육로로 건너가는 모습이란 사실상 섬나라나 다름없는 한국인에게는 여간 생소하기 짝이 없다. 

 

사실 우드랜즈 워터프론트를 찾은 것은 단순히 국경지대 구경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여기 전망대에 있는 '라사 이스티메와(Rawa Istimewa)'라는 식당이 또 나쁘지 않다고 해서, 겸사겸사 여기에서 식사를 하고 가려는 계획이다. 보통 이런 관광지에 있는 식당은 늬 맛도 내 맛도 아닌 경우가 많은데, 생각보다 별점이 괜찮고 블로그 리뷰도 호평이 많아 도전해 보기로 했다. 주로 중화풍의 할랄 음식을 파는 가게인 모양이다. 저녁이 되면 사람들로 붐빈다는데 늦은 점심 시간에 와서 그런지 손님이라고는 우리 부부밖에 없었다. 목이 너무 말라 제로코크 하나를 시키고, 해물볶음밥 하나와 공심채볶음 하나, 그리고 가오리찜 하나를 시켰다. 볶음밥과 공심채볶음은 볶음 소스를 고를 수 있다. 공심채볶음은 단순하게 마늘을 넣고 볶은 것으로, 그리고 볶음밥은 (기왕 싱가포르에 오기도 했으니) 삼발 소스가 들어간 것으로 주문했다.

 

삼발 해물볶음밥
마늘 공심채볶음
가오리찜

역시 볶음밥은 중화풍만한 것이 없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인디카 쌀 사이로 보이는 계란과 야채 조각들, 그리고 새우와 조개 관자가 매콤하게 치고 빠지는 삼발 소스와 함께 어우러져 무척 훌륭한 조화를 이루어낸다. 별점이 높다고 하더라도 그냥저냥 괜찮은 식당이겠거니 하고 왔기도 하고, 실제로 식당 자체가 엄청나게 훌륭한 비주얼은 아니어서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볶음밥이 너무 훌륭했다. 공심채볶음을 곁들여 먹으면 기분이 무척 좋아진다. 한국인의 입맛에는 다소 짭쪼름하기는 하지만, 더운 나라고 하다 보니 기본적으로 음식이 어느 정도 짤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큼직하게 썬 마늘이 들어가서 한국인 입맛에도 딱이고, 아삭아삭한 느낌의 식감 덕분에 먹는 즐거움이 배가된다.

이 식당에서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가 가오리찜이라고 하여 시켰는데, 처음에는 위에 얹어진 소스만 먹다 보니 살짝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것도 뭐 나쁘진 않았는데, 아내는 첫 한두 입은 살짝 애매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곁들여 나오는 저 종지 안의 피쉬 소스를 같이 찍어 먹었더니 삽시간에 맛이 한두 단계는 더 끌어올려지는 것이다. 공연히 소스에 또 소스를 곁들여 주는 게 아니었다. 가오리찜을 시켜 드시거든 꼭 피쉬 소스도 같이 드시길. 아내는 연골뼈를 잘 먹지 못해서 맨살을 주로 발라먹었고, 나는 오독오독한 가오리 연골이 너무 맛있어서 와그작와그작 씹어먹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식당에서 기대 이상의 식사를 하게 되어 기분이 무척 좋았다. 싱가포르 로컬 음식점에 대한 두 번째 평가는 상당히 만족. 적고 있다 보니 또 생각나는 맛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가볍게 전망대를 산책하며 배를 꺼뜨리기로 한다. 바다 위로 역기역자로 꺾여 있는 전망대는 생각보다 길이가 좀 되어서 느긋하게 산책하면서 주변의 경치를 구경하기에 제격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조호르 코즈웨이 대교와 조호르바루 시내. 공사하고 있는 고층 아파트가 마치 한국을 떠올리게 한다.
전망대에서 싱가포르 쪽을 바라본 광경. 평탄한 지면 위에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고 있다. 공원이라 그런지 스카이라인이 무척 낮다.
전망대의 가장 동쪽 끝에서 바라본 조호르 해협. 양국 사이에 뭔가 공사가 한창이다. 아마도 우드랜즈-조호르 간 경전철 공사인 듯하다.

탁 트인 바닷가에서 햇볕과 바닷바람을 받으며 국경 너머를 구경하는 느낌은 제법 나쁘지 않았다. 국경 지대를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것이 서로 안전하게 오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국경이라고 말하기는 다소 애매하기는 하지만 휴전선 근방에서 국경 지대를 관찰할 때의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알 수 없는 미묘한 긴장감과 답답함이 교차하던 휴전선은 누구도 멋대로 오갈 수 없는 곳. 그러나 싱가포르-말레이시아 국경은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문제 없이 오가는 왕래의 관문이다. 분단국가에서 온 사람이 보기에는 다소 생경하면서도 부러운 광경이었다.

전망대에는 우리 외에도 사람이 두엇 더 있었는데, 낚싯대를 여럿 뻗쳐 놓고 있는 아저씨 하나, 그리고 미묘하게 뽕짝톤의 (아마도 싱가포르 음악일 듯한) 음악을 한껏 틀어 놓고 반나체로 드러누워 일광욕을 하고 있는 젊은 남자 하나, 마지막으로 뜬금없이 상반신 탈의를 한 채로 조깅을 하며 나타난 앳되어 보이는 청년 하나였다. 일광욕 하는 사내가 틀어 놓은 음악이 희한하게도 고속도로 뽕짝의 그것과 거의 유사한 느낌이어서 우리도 괜히 흥이 나 이리저리 몸을 배배 꼬아 보기도 했다. 아시아인이라면 누구나 뽕짝 한 곡조씩은 마음 속에 품고 살잖아요. 햇살 좋고 평화로운 바다 한가운데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선곡이기는 했지만, 아무렴 어떠랴. 즐겁게 산책을 마치고 몸을 돌려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그래도 국경 지대라고 이상한 선적이나 화물, 수영하는 사람을 보면 즉시 신고해 달라는 안내판도 붙어 있다.

다시 공원 앞으로 나와 버스를 탄다. 다음으로 향할 곳은 싱가포르의 유일한 온천지대로 알려진 셈바왕 온천공원(Sembawang Hot Spring Park)이다. 족욕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이야기를 구글 리뷰에서 읽고 한번 가 볼까? 싶어서 여행 리스트에 넣었다. 사실 예전에 카고시마에 놀러 갔을 때 만났던 족욕탕에서의 경험이 아주 인상적이기도 했고 다리의 피로를 풀기에는 제격이었기 때문에, 그 기억을 살려 다리도 좀 풀 겸 찾아가 보기로 한 것이다. 버스 여정은 한 30분 정도. 아침 일찍부터 밖에 나와 하루종일 걸어다니기도 했고, 버스 창문으로 비치는 햇살이 워낙 좋고, 버스에는 또 에어컨도 딱 기분 좋게 틀어져 있어 졸기에는 딱 좋은 환경이었다. 한 20분 정도 조는 거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 아내는 일단 재우고, 나는 구글 지도를 보다가 깜박 졸다가 하는 것을 계속 반복했다.

버스 안에서 하면 안 되는 것들. 도대체 두리안을 얼마나 좋아하는 거람.

한참을 그렇게 달려 버스가 우리를 내려 준 곳은 웬 주택단지 근처였다. 여기에서 한 10분 정도 걸으면 온천 공원이 나온다고 한다. 거대한 공군기지 옆을 지나서 조금 더 걸어가자 온천공원 명판이 나타났다. 입구에서부터 한 2-3분 안쪽에 온천장이 있는 모양이다. 주위에는 나무와 꽃을 예쁘게 심어 두었고, 이곳이 어쩌다가 온천으로 알려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안내판 같은 것들도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 아직 영국 식민지이던 시절인 1908년에 처음 발견되어 생수 생산시설 및 온천장으로 유명해졌고, 일본이 점령했던 시절에는 아니나다를까 일본인 군속들의 휴양지로 명성을 떨쳤다가 연합군의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었으며, 그 뒤에도 다시 온천수가 솟아나기 시작해 지금은 시민공원으로 재개발되어 있는 상태라고 한다.

마치 어드벤처 게임의 한 장면을 끌어온 듯한 웅장한 나무와 고사리. 여기저기 예쁜 부겐빌리아꽃도 피어 있다. 
셈바왕 온천의 역사를 다룬 안내판. 여기에서 나온 온천수를 정제해서 생수로 팔았다고도 한다.

그렇게 온천을 찾아 조금 더 걸어가다 보니, 맞은편에서 왠지 커다란 양동이 같은 것을 든 현지인들이 두셋 정도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양동이? 뭐지? 그와 함께 점차 주위 기온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우리 앞에 온천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이렇게 절절 끓는 온천물이 쏟아지고 있다는 얘기는 아무도 안 했잖아요. 예전에 <대만유람기>를 쓰면서 신베이 지열곡에 갔을 때 그렇게까지 뜨겁지 않았던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는데, 그 때 경험하지 못했던 열기를 마치 이곳 셈바왕에서 조금이나마 경험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뇌가 녹아내릴 것 같이 덥다. 이 더운 날에 온천수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는 모습은 차라리 초현실적이기까지 했다. 보통 날씨가 추울 때 포장마차에서 얻어 먹는 뜨끈한 오뎅 국물에서나 나는 게 김 아니었나? 알고 보니 기본적으로 이 곳에서 솟아나는 온천수의 온도는 섭씨 65도란다. 하다못해 동네 목욕탕 열탕에 가도 가장 높은 온도가 42도를 넘을까 말까인데, 누가 대체 여기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발을 담갔다는 거지? 가운데에 있는 조형물에서는 아무도 족욕 같은 건 하고 있지 않았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그늘진 곳에 있는 벤치 등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각자 양동이 하나씩을 받쳐 놓고 족욕을 하고 있었다. 과연 이렇게 하는 거였고만!

모두가 이용하는 온천에서 해도 되는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을 표시해 둔 안내판, 그리고 여기에서 족욕을 하는 방법에 대한 안내판이 곳곳에 붙어 있으므로 참조하는 것이 좋다. 실제로 남녀노소 다양한 성별과 연령대의 현지 사람들은 족욕(은 물론이고 몇몇 영감님들은 반신욕이 가능한 통을 아예 갖다 놓고 몸을 반쯤 담그고 있었지만)을 즐기고 있었기 때문에 구글 리뷰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닌 게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안내판에는 '통과 바가지는 다른 사람들이 쓸 수 있도록 씻어서 반납해 주세요'라는 말이 써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통이나 바구니를 빌릴 수 있을 듯한 시설이 보이지는 않았다. 현지 주민들에게 물어보면 답이 어느 정도 나왔겠지만, 약 5초 간의 치열한 눈빛 교환 끝에 우리는 여기에서의 족욕은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조금 덜 더웠다면 해 볼 만도 하겠는데 솔직히 인간적으로 너무 덥다. 기본적으로 30도를 조금 넘는 기온인데다가 땡볕이 이마빡 까지도록 내리쬐는 상황에서, 65도에 육박하는 온천수에 발을 담근다는 것은 이미 이 더위에 한껏 적응된 현지인이 아니고서야 불가능 또 불가능이다. 그냥 온천 구경 했다는 셈만 치고 돌아가기로 한다.

공원의 전경은 이렇게 생겼다. 붉은 적벽돌 건물은 밸브실인 듯하다.
물을 떠다가 달걀을 삶아 먹을 수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달걀을 몇 알 가져다가 여기에서 물을 붓고 바로 삶아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전 내내 걷다시피 했으니 여기에서 피로를 좀 풀었으면 좋았으련만, 앉을 자리조차 찾지 못한 채로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기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공연히 여기까지 먼 걸음 하자고 했나 싶어서 아내에게 너무 미안했다. 아내는 좋은 구경을 했으니 괜찮다고는 했지만, 아무래도 너무 미안한 나머지 일단 다음 일정은 무조건 어디든 앉아서 쉬는 것으로 하자고 했다.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멍하니 있다가, 곧 오는 버스를 잡아타고 이순(Yishun) 역으로 향했다.

그래도 아파트 단지는 모양새가 예뻐서 기분이 다소 좋아졌다. 싱가포르 국기가 집마다 걸려 있는 것도 멋졌다.
이순 역은 고가역이다. 여기에서 기차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