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미생활은 거창하게/식물

[취미생활은 거창하게] 연남동의 '그린하트클럽'에 다녀와 보았다

by 집너구리 2022. 3. 21.

 

일의 발단은 이 트윗이었다.

 

정말로 범상치 않은 공간인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연희동과 연남동 근방에 일반적인 동네라면 잘 없을 법한 독특한 가게들이 골목골목 숨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나, 화원이라니 이건 좀 색다르다. 마침 아내와 함께 연희동에 갈 일이 있어서 저녁에 잠깐 나왔다가, 들어가는 길에 들러 보기로 한다. 연희104고지 근처에서 버스를 내려, 연남동 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된다. 소위 '연트럴 파크'라는 입에 올리기조차 끔찍한 이름으로 불리는 경의선숲길 공원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미국식 케이크로 유명한 '딩가 케이크'라는 가게를 알지도 모른다. 그 뒷길로 들어가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주택가에서 갑자기 몽글몽글하게 생긴 녹색 하트 모양의 간판이 떡하니 나타난다. 

 

습기 무슨 일이야!

밖에서부터 느껴지는 이 압도적인 습기. 위에서 인용한 트윗의 타래에 따르자면 이건 전부 사장님이 열심히 분무해서 만드시는 습기라고 한다. 도대체 얼마나 분무를 해야 이 정도의 습기가 저 정도의 넓이에서 가능한 걸까. 사실 사장님은 인간 분무기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가게 앞을 둘러본다. 밖에서 빛을 충분히 봐야 잘 살 수 있는 라벤더와 로즈마리, 아카시아와 유칼립투스 같은 녀석들이 예쁜 화분에 잘 식재되어 있다. 옆에 뜬금없이 놓여 있는 상추 모판은 뭘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안으로 들어간다. 이미 선객이 있어서, 일단은 가게 안을 죽 둘러보기로 한다.

 

꽃피기 시작한 친구들이 슬슬 보인다. 상추가 웃음 포인트!

새삼스레 이렇게 다양한 꽃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형형색색의 화사한 꽃들이 창가를 향해 피어 있었다. 주로 앵초류인 것 같기는 한데, 정확한 명칭을 모르니 답답하다.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여우꼬리 모양의 아스파라거스 같은 풀들도 눈에 띈다. 밝은 색의 꽃들 사이로 푸르른 이파리들이 빼꼼 얼굴을 내미니 조화가 아름답다. 작은 우산 같은 이파리에 울긋불긋 꽃을 피우는 한련화도 눈에 띈다.

 

밖을 보고 피어 있는 화사한 꽃들.

발디딜 틈 없어 보이지만 생각보다 사람의 운신할 폭은 무척 잘 뚫려 있는 독특한 느낌의 공간이었다. 선객들에게 사장님이 식물들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는 것을 한 귀로 들으며 식물들을 구경했다. 아내가 좋아하는 느낌의 다글다글한 페페류가 특히 많이 보였다. 수박 페페, 거북이 페페, 픽시라임 페페, 나폴리나이트 페페, ... 아름답게 이파리를 늘어뜨린 아디안텀 고사리, 가운데에 고상한 느낌의 흰빛 줄무늬를 그려넣은 듯한 벨벳 싱고니움 등이 무척 건강한 느낌으로 식재되어 있었다. 행잉으로 키워지고 있는 아이비와 콩란, 선인장류, 호접란 등도 신선했고, 제법 큰 나무류와 고사리류도 있어서 공간 안에 조화로움이 돋보이는 느낌이었다. 

 

약간 힘들어하는 식물들을 케어하는 공간인 듯한 문간 선반. 사장님의 작업대에도 뭐가 많다.
큼지막한 벤자민과 무늬보스턴고사리, 아라우카레아, 셀렘 등도 눈에 띈다. 붉은빛 북슬한 꽃의 여우꼬리풀이 너무 귀엽다.
행잉으로 키우는 식물들도 있고, 소품으로 꾸며 놓은 친구들도 있다. 언젠가 집이 넓어지면 나도 저렇게 부작한 호접란을 키우고 싶다.
아름답기 짝이 없는 베고니아 구역. 하나 사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참는다. 무늬 프라이덱은 손님들이 하도 사 가겠다고 싸워서 '비매품' 딱지를 붙였단다.

기본적으로 식물을 잘 어울리는 토분에 식재해서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그린하트클럽의 식물들은 생각보다는 가격이 좀 있는 편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식물 상태가 너무 좋기도 하고, 무엇보다 사장님의 서비스가 훌륭하다. 뭘 물어봐도 척척 답이 나오고, 사고자 하는 식물을 고르면 무엇을 조심하면 되는지 꼼꼼하게 설명해 주신다. 가게 곳곳에도 손님을 향한 사장님의 배려가 돋보인다. 특히 식물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흥미롭다. 식물의 이름과 특성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종이 표찰 밑에 가격과 더불어 다른 스티커가 붙어 있는 것들이 종종 있는데, 초보들도 키우기 쉬운 식물에는 '초보'라는 글자가 적힌 노란색 스티커가, 반려동물과 같이 키워도 무방한 식물에는 강아지 얼굴이 그려진 흰 스티커가 붙어 있다. 덕분에 식물의 특성을 명료하게 파악하기가 훨씬 쉽다. 사장님은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은 식물들은 '지금으로서는 추천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서슴없이 하신다. 손님의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일이다.

 

 

오늘 손님이 많이 왔다며 아주 신이 나 있는 사장님과 간단히 몇 마디를 나눠 보았다. 11월에 이 가게를 개업하기 전에는 주로 화장품 업계에서 조향하는 업무를 해 오면서 꾸준히 식물들을 키워 오셨다고 한다. 식물을 키운지는 거의 10년 가까이 되셨다는데(아내는 나중에 나에게 '이것이 10년 후의 당신의 한 가능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라고 말했다), 집에서 오랫동안 필로덴드론류 등의 희귀식물을 키워 오셨고 지금도 그렇지만, 식물마켓 등에서 간혹 볼 수 있는 소위 셀러들의 눈살 찌푸려지는 태도('이거 정말 비싼 거고, 너희는 이걸 사갈 수 있다는 데 감사해야 해')가 싫었다고 한다. 그래서 화원을 열면서 '비싸고 희귀한 식물보다는, 조금 더 발품을 팔아야 구할 수 있지만 키우기 쉽고 예쁜 정도의 식물들을 팔아 보자'라는 생각에 닿으셨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식물마켓에나 가야 구할 수 있는 희귀종들뿐만 아니라 어느 화원에서든 발에 채이듯 쉽게 구할 수 있는 몬스테라 같은 친구들도 잘 없다. 오히려 방향성을 따지자면 서촌에 있는 노가든과 조금 더 맞닿아 있는 느낌이다. 

 

거북이 페페와 픽시라임 페페, 여우꼬리풀 중에서 한참을 고민한 끝에 픽시라임 페페 하나와 소형 토분 두 장을 구매하자, 사장님이 직접 손글씨로 픽시라임 페페 키우는 법을 적어서 건네 주셨다. 아무리 설명을 열심히 듣더라도 나중에 집에 가면 까먹을 수 있으니까요, 라는 말씀에서 어떤 관록이 느껴진다. 가게 앞에 나와 있던 상추는 구매자들을 위한 선물이란다. 생각지도 못했던 상추를 세 촉이나 받았다. "식물 관련해서 궁금하신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찾아오세요!"라고 하며 배웅해 주시는 사장님을 뒤로 하고 문을 나선다. 이제껏 여러 가든센터와 화원을 드나들어 보았지만, 이렇게 기분 좋은 경험을 한 것은 거의 처음이다. 줄곧 '손님들에게 좋지 않은 경험을 하게 하고 싶지 않다'고 하시던 사장님의 진심이 전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식물계의 흥미로운 문화 중에 서로를 방문할 때 식물 선물을 들고 가서 교환하는 것이 있는데, 심지어는 단골 화원에 찾아갈 때에도 종종 그러는 경우를 보아 왔다. 눈도장을 찍고 자주 들락거리면서 한번쯤은 사장님에게도 흥미로운 식물 선물을 하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었다. 오랜만에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