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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세계 성당 방문기

[세계 성당 방문기] 07. 싱가포르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성 그레고리오 계몽자 성당

by 집너구리 2022. 11. 26.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성 그레고리오 계몽자 성당
Armenian Apostolic Church of St Gregory the Illuminator
등급 공소
소재지 싱가포르 공화국 힐 가 60번지
(60 Hill Street, Singapore)
관할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호주・뉴질랜드 교구
찾아가는 길 싱가포르 MRT 시청역(City Hall Station)에서 도보 5분

여러분은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라는 기독교회 공동체를 알고 계신가요? 아마 모르시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저도 최근까지는 이런 교회 공동체가 있는 줄 알지 못했습니다. 동방 교회 중 가장 잘 알려진 정교회조차도 한국에서는 천주교와 개신교의 교세에 밀려 이런 교회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으니,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는 도대체 무슨 교회인가 싶죠. 하지만 세계에 퍼져 있는 아르메니아인 공동체에 의해,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는 의외로 구미권에서는 제법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공동체라고 합니다. 심지어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기독교가 국교로 지정되기 이전부터 아르메니아의 국교였다고 하니, 그 역사와 신도들의 자부심을 가히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래 된 기독교 건축물이 바로 이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성당입니다. 정식 이름을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성 그레고리오 계몽자 성당'이라고 하는데, 아르메니아에서 기독교의 국교화를 이끌어낸 초대 아르메니아 총대주교 성 그레고리오를 주보성인으로 삼고 있습니다. 성 그레고리오는 당연하게도 아르메니아의 수호성인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처음 짓는 성당이라면 당연하게도 조국의 수호성인 이름을 따오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이 성당이 위치한 동네 자체가 예전부터 아르메니아인들이 모여 살았던 권역인 모양인지, 아직도 성당 뒷길의 이름이 '아르메니아 가(Armenian Street)'입니다. 성당에서 가장 가까운 MRT 역은 한 블록 떨어져 있는 시청 역(City Hall Station)이지만, 우리 부부는 처음부터 그쪽이 아닌 포트 캐닝 공원 쪽에서부터 걸어오다가 한번 들러 보자는 심산으로 이곳을 찾았습니다. 실제로 포트 캐닝 공원에서 무척 가깝기 때문에, 포트 캐닝과 함께 묶어서 돌아보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성당 앞문 쪽으로 돌아서 들어가면 이렇게 가장 먼저 뾰족한 첨탑이 세워진 파사드가 우리를 맞이합니다. 이쪽은 장식문만 있고 사람이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대신 나머지 3면에 입구가 있으므로 들어가 보고 싶으면 열려 있는 출입구를 활용합시다. 1836년에 완공되어 지금까지 이어지는 건물인데, 정말 관리가 잘 되어 있다는 느낌입니다. 벽이 어찌나 새하얀지 한낮에 오면 눈 좀 부시겠다 싶습니다. 마당 안으로 들어가 봅시다.

(좌) 십자가의 길 제1처와 제2처, (우) 십자가의 길 제3처와 제4처

잘 가꾸어진 잔디밭 위로 웬 조각상들이 즐비합니다. 기독교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것들이 모두 성경, 특히 복음서의 내용을 묘사한 것임을 쉽게 눈치챌 수 있을 것입니다. 천주교 성당에 가면 본당 안이든, 아니면 부지 안이든 '십자가의 길'이라고 하여 예수의 고난을 14단계로 나누어 그림이나 상으로 묘사하고 신자들이 이를 묵상할 수 있도록 해 놓은 곳이 있습니다. 이곳 아르메니아 성당에도 부지를 빙 둘러 십자가의 길을 조각으로 묘사해 두었습니다. 그 외에도 어린이와 함께 있는 예수상, 그리고 성당 건물 주위에 서 있는 천사상 등등이 있어 이들을 구경하는 소소한 재미도 있습니다. 

오래 된 성당이라 그런지 부지 안에는 연월이 느껴지는 거대한 나무들이 많이 있습니다. 개중에는 뭐 저렇게 생겼어 싶은 녀석들도 있는데, 이를테면 마치 서양 귀부인들의 부채마냥 널찍한 잎을 부채꼴로 촤르르륵 달고 있는 길쭉한 녀석들이 그것입니다. 놀라실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이 바로 여인초(旅人草, Traveler's palm; Ravenala madagascariensis)입니다. 무슨 여인의 치마폭 이런 걸 닮아서 '여인초'가 아니고, '여행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여인'입니다. 옛날에는 여인숙이라고 해서 여행자들이 고단한 몸을 잠깐 뉘이고 가는 그런 숙소들이 많았다지요. 왜 하필 여행자의 풀, 여행자의 야자라는 이름이 붙었는고 하니, 원산지인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서는 갈증에 시달리던 여행자들이 여인초의 잎자루 쪽에 고인 물을 마시고 해갈하고는 했다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답니다. 과연 저렇게 겹겹이 부채꼴로 잎을 달고 있으니 비라도 오는 날이면 그 사이에 물이 제법 고여 있을 법도 합니다. 다만 저렇듯 키가 무식하게 커질 수 있는 녀석이다 보니 해갈을 위해서는 어린 여인초 잎 사이를 헤칠 수밖에 없었겠지요.

저 멀리 마다가스카르가 원산지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싱가포르에서는 거대하게 자라난 여인초를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길거리에 집채만한 이파리가 달린 중남미 출신의 몬스테라 같은 것이 잔디 대신 심겨져 있는 나라니까요. 세계 곳곳에서 온 관엽식물들이 모여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마치 싱가포르라는 나라 자체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도 같습니다. 

마당을 반 바퀴 정도 돌아보고서 이제는 성전을 들어가 볼 차례입니다. 도리아 양식의 기둥이 제법 웅장한 느낌을 줍니다. 초기 교회의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성전 건축들이 으레 그렇듯 이 성당도 십자가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문간에는 이 건물의 내력을 설명하는 명판이 붙어 있는데, 역시 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래 된 교회건축물인 만큼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흥미롭게도 처음 낙성했을 때만 해도 아르메니아 전통에 따라 천장에 돔과 종탑이 달려 있었다는데, 건축상의 문제로 인해서 돔을 제거하고 지금처럼 유럽 스타일의 기와지붕에 첨탑을 얹게 되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이 건물을 설계한 사람은 아일랜드 출신의 건축가 조지 콜먼(George Coleman)인데,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건축물을 구경할 때면 이 이름을 기억해 두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오만 데 다 이름이 들어가 있는 양반이더라고요.

성전 안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생각보다 단촐하지요. 역시나 하얀색으로 회를 칠한 내벽 안에 금빛 자수가 들어간 붉은 주단이 깔려 있고, 바람이 잘 통할 것 같은 메쉬 소재의 등받이가 달린 교회 의자가 예닐곱 줄 정도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실내는 원형이고, 제단은 안쪽으로 쭉 들어가 있습니다. 성당 전체를 큰 십자가라고 생각하면, 제대가 있는 지성소는 예수의 머리가 놓였던 십자가의 맨 꼭대기 부분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십자가의 길'이 아르메니아 성당에서는 마당에 있었다고 앞에서 이야기했지요. 대신 성전 내부에는 벽을 쭉 둘러서 이렇게 헌금 모금함과 기도문 같은 것이 붙어 있습니다. 기도문이야 아르메니아 글자로 써 있으니 도통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이 붉은 글씨로 쓰여 있는 것은 문장 부호의 구성으로 보나 글의 길이로 보나 주님의 기도(주기도문)인 것 같습니다. 그 바로 밑에 이렇게 헌금함이 있고, 그 아래에는 재미있게도 방명록이 있습니다. 아마도 헌금을 넣으면서 한 마디씩이라도 하시면 좋을 것 같다는 느낌으로 놓은 것 같습니다. 글씨가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최근에 적힌 방명록이 한국어여서 한 번 웃었고, 내용에 한 번 더 웃었습니다. 아드님이 통 장가를 못 가고 있어서 장가 가게 해 달라고 적어 놓으셨더라고요. 어디에 사시는 누구이신지는 모르겠으나, 모쪼록 하느님의 뜻대로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사진은 저도 도저히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찍어 본 것입니다. 예수 상 아래로 모래 같은 것이 깔려 있는 것을 보니, 추측하건대 향이나 초 같은 것을 피우고 기도를 하는 곳이 아닌가 합니다. 나중에 찾아보니까 정말 그렇더라고요. 아르메니아 대통령이 방문해서 찍은 사진을 보니, 정말로 초를 여기에서 켜 놓고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성전의 내부에 적혀 있는 글들은 전부 아르메니아어로 되어 있지만, 감사하다면 감사하달까, 웬만하면 모두 옆에 영어로 된 번역문이 붙어 있습니다. 위의 사진 왼쪽은 이 성당의 상량문입니다. 언제 어떠한 내력으로 이 건물을 지었다는 설명이 적혀 있습니다. 중간의 것은 어떠한 내용인지 알 수 없으나, 아르메니아인 공동체에 기여한 지역 유지인 골스턴 에드가라는 사람을 기리는 글인 모양입니다. 오른쪽의 사진은 이 성당이 세워질 적에 사목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세티안 남작을 기리는 글입니다. 잘 보면 이 사람들은 다 최종적으로는 싱가포르가 아닌 다른 곳, 이를테면 홍콩에서 세상을 떠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아르메니아 대학살 이후로 아르메니아인들이 세계 각국으로 흩어졌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만, 그들은 조국을 떠나서 정말 한 곳에 정착할 겨를 없이 여기저기 한참을 돌아다닌 모양입니다. 개중에는 이렇게 막 개발되기 시작하던 해협 식민지와 홍콩으로 이동해 간 사람들도 있었겠지요. 

성당이 세워졌을 당시의 혼란한 국제 정세가 마치 거짓말과도 같이, 2022년의 성당 안은 그저 조용하고 고즈넉합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나른한 오전의 햇볕, 밖에서 이따금 우짖는 새 소리, 창 밖으로 내비치는 초목의 푸르름, 이따금 성당 앞 대로를 지나가는 차 소리 정도가 이 공간을 채우는 것의 전부입니다. 한때 돔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거짓말이 아닌지, 지금도 신도들이 앉는 곳 위의 천장은 돔 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단촐한 느낌의 샹들리에가 호젓함을 더합니다.

제단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죠. 아르메니아 성당의 제단은 정말 단촐합니다. 오래 된 천주교 성당에서 으레 볼 수 있는 화려한 장식과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정교회 성당에서 으레 볼 수 있는 지성소처럼 화려한 이콘으로 장식된 벽으로 막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최후의 만찬을 묘사한 성화가 그려진 커다란 액자, 계단 모양으로 장식된 것이 전부인 정갈한 느낌의 제대, 그 위의 십자가상, 그리고 오른쪽에 작게 들어가 있는 감실. 어찌 보면 딱 필요한 것만 깔끔하게 준비되어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러시아 근처에 있는 나라이다 보니까 정교회 전통에 가까운 양식이 아닐까 했던 지레짐작이 보기 좋게 깨지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떻게 보면 정말 뭐가 없는 공간인데, 묘한 감동 같은 것이 찾아오더라고요. 고향을 쫓겨나듯 떠나 기후도 먹을 것도 완전히 다른 곳에 와서,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첫 기반을 세우기 위해 노력했던 이들의 첫 결실이기 때문일까요. 때로는 백 가지 미사여구보다 깊은 침묵이 더욱 많은 것을 전달하기도 하는 법입니다.

본당 안을 쭉 둘러보고 나와서 바깥으로 나오면,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교회 묘지 비슷한 것이 나옵니다. 사실 이 아래에 정말로 아르메니아인들의 무덤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묘지석들만이 놓여 있는 곳입니다. '메모리얼 가든'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은 싱가포르 곳곳의 공동묘지에 묻혀 있던 아르메니아인들의 묘지석을, 재개발 열풍으로 인해 묘지가 없어질 때 '구출'해 와서 이곳에 모셔 둔 것이라고 합니다. 개중에 몇몇은 포트 캐닝 공원에 있는 벽묘지에 묻혀 있다고 해요. 여기에 있는 묘비석들 가운데에는 현대 싱가포르에서도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래플즈 호텔을 비롯하여 아시아의 영국 식민지에 많은 호텔을 운영했던 사르키스 3형제(The Sarkies Brothers)라든지, 지금도 싱가포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일간지인 '스트레이츠 타임즈(The Straits Times)'의 창간인인 카치크 모세스(Catchick Moses), 그리고 싱가포르 최초의 인공교배종 난초이자 싱가포르의 국화인 '반다 미스 조아킴'을 개발한 가드너 아그네스 조아킴(Agnes Joaquim) 같은 이들입니다. 당시 아르메니아계 디아스포라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 묘지석들은 아르메니아 학살에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적황색 비석을 둘러싸고 부채꼴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한국에서 좀처럼 접하기 힘든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성당이 어떤 느낌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가 보았는데, 생각 외로 상당히 흥미롭게 구경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아르메니아계 공동체가 지금은 상당히 작아진 탓인지, 성찬예배는 순회 신부님이 방문할 때에만 간간이 이루어지고, 오히려 콥트 정교회 공동체가 한 달에 두 번 콥트 정교회식 성찬예배를 이곳에서 드린다고 합니다. 아르메니아식 전례로 이루어지는 성찬예배를 참관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겠으나, 이곳을 중심으로 치열하게 전개되었을 아르메니아 공동체의 역사를 일부나마 느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기실 그 모든 것을 떠나서라도, 복잡하기 짝이 없는 싱가포르 도심에서 퍽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끼기에 좋은 곳이니 싱가포르를 방문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찾아가 보시면 좋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