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교회대교구 서울 성 니콜라스 대성당 St Nicholas Cathedral of the Orthodox Metropolis of Kore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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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 | 대성당(주교좌성당) |
소재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마포구 공덕동 마포대로18길 43 |
관할 | 한국정교회대교구 |
찾아가는 길 | 서울도시철도 5호선 애오개역 4번 출구에서 도보 5분 |
서울 시내에 천주교 성당은 정말 많이 존재합니다. 과장을 좀 섞어서 동별로 한 개씩은 존재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스갯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당장 서울 서북쪽에 위치한 우리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의 천주교 성당만 네 군데가 넘어갈 정도입니다. 개신교 교회야 건물 하나에 두어 개씩 있는 경우도 있으니 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유독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천주교와 더불어 가장 오래 된 양대 종파라고 불리는 정교회 성당이 아닐까 합니다.
2019년 어느 가을날의 일입니다. 광화문에 들렀다가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우연히 지도를 보다 보니, 가는 길목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한국정교회의 주교좌 대성당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침 심심하던 김에 잘 됐다 싶어서, 충정로역에서 본래 아현동 쪽으로 가야 하던 발걸음을 꺾어 공덕역 쪽으로 향했습니다. 내리막길을 걷는 발걸음이 경쾌합니다.
애오개역 4번 출구를 지나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면 곧바로 거대한 푸른색 청동제 돔이 눈에 들어옵니다. 주변의 다른 건물들은 하나같이 재개발을 앞둔 오래 된 콘크리트 건물들인데, 유독 튀는 비잔티움식 건축 양식입니다. 다만 성당 정문으로 가기 위해서는 동네를 상당히 빙글빙글 돌아 들어가야 합니다. 툭 튀어나온 언덕 꼭대기에 성당이 세워져 있는데다, 절벽에 면해 있다 보니 입구를 찾으려면 이 절벽을 뱅 돌아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러시아인이나 중앙아시아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주위에 모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당시만 해도 모스크바 대주교가 크림 반도 문제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와 다투기 전이어서, 러시아인들이 이 성당에 많이 다녔습니다.
교구청 건물을 겸하고 있는 문으로 들어가면, 중정을 중심으로 성당과 주교관, 교구청이 주위를 빙 둘러싸고 있는 형태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무척 아늑한 느낌입니다. 기실 '대성당'이라는 이름이 굳이 꼭 규모가 커야만 붙는 이름은 아닙니다. 지역 교구의 대표자인 주교가 있는 곳을 규모에 상관없이 대성당이라고 부르는데, 따지고 보면 그런 성당들이 보통 지역에서 규모가 제일 큰 경우가 많곤 하는 것입니다. 운이 좋으면 단층 주교관 창문 너머로 그리스 출신의 조성암 주교님을 볼 수도 있다는데, 이 날은 평일 오후이기도 해서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가장 궁금한 것은 성당 안쪽입니다. 마당을 쓸고 있던 여성 신자분께 가볍게 인사를 드리고 성당 안으로 들어갑니다. 문 안으로 들어가면 먼저 기도서를 잔뜩 꽂아 둔 책장과 주보성인 성 니콜라스의 성화가 눈에 들어옵니다. 남의 여행 사진에서나 종종 봤던 정교회 스타일의 성화 아래로 인쇄한 듯한 궁서체의 한국어 설명이 적혀 있는 것을 보니 어쩐지 유쾌한 기분이 듭니다. 기도서는 한국어로 되어 있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이 러시아어나 그리스어, 때로는 도저히 짐작도 가지 않은 꼬부랑 글자로 되어 있는 녀석들도 있습니다.
성당 안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교회 예배당이나 천주교 성당과는 확연히 다르게 생겼습니다. 녹색과 붉은색, 금색을 기조로 하여 무척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양쪽 벽에는 예수의 수난과 부활을 비롯한 성경의 대표적인 사건들이 총천연색의 성화로 그려져 있고, 정면에는 그리스 스타일의 십자가와 열두 사도, 그리고 예수의 모습을 그린 이콘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 앞에 정교한 투각으로 조각된 화려한 문과 휘장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정교회 예배당 건축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신자들은 들어갈 수 없는 곳인 '지성소'입니다. 천장으로부터는 열두 사도를 상징하는 12각형의 샹들리에가 걸려 있고, 그 위로는 '만물의 주관자'라고 적힌 예수의 이콘과 그를 둘러싼 천사와 성인들의 이콘이 그려져 있습니다. 모든 설명이 한국어로 적혀 있는 것이 이채롭습니다.
천주교를 위시한 서방 교회의 성당에 익숙한 입장에서, 정교회 성당 양식의 정수를 소규모로나마 확인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경험이었습니다. 조각을 활용하며 입체감과 직선이 중시되는 서방교회와는 달리, 평면적인 벽체에 그림을 통하여 손재주의 극한을 추구하며 곡선을 아낌없이 활용하는 모습이 상당히 대조적이었다고 할까요. 녹색과 적색을 활용한 채색 양식이 어딘가 단청과도 맞닿아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서울시내에 있는 비잔티움 양식의 정교회 성당으로는 유일무이한 곳이니만큼, 정교회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꼭 한 번씩 들러 보시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덧붙이자면, 서울대성당 지하에는 러시아인 신자들을 위한 성 막심 성당이 부속성당으로 붙어 있습니다. 교구청 입구 왼쪽으로 돌아가면 지하 막심 성당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습니다만, 평소에는 닫혀 있습니다. 성찬례 시간을 교구청 홈페이지에서 한번 찾아보시고, 그 시간에 맞춰 견학 가는 것을 추천합니다. 또한, 대성당 입구에는 교구에서 펴낸 정교회 안내서가 비치되어 있으니 가져다 읽어 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후일담 : 한국의 정교회
세계사 시간에 졸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정교회'라는 기독교의 한 종파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동서 대분열로 인해 갈라서긴 했지만, 정교회는 천주교(가톨릭교회)와 더불어 무려 사도 시대부터 그 명맥을 이어 내려온 가장 오래 된 두 개의 기독교 분파 중 한 축입니다. 흔히 서방의 가톨릭에 대비하여 '동방 정교회'라고 불리기도 하죠.
한국 사람들에게는 천주교나 개신교는 상당히 익숙한 기독교의 종파입니다. 개중에는 잘못된 교육으로 인해 '개신교=기독교'라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엄연히 개신교는 '기독교'라는 큰 종교의 한 갈래입니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기독교의 이미지는 대부분 이 천주교나 개신교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으로 개신교와 가톨릭을 합친 기독교 신자의 비중은 전체 인구의 27.3%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동유럽권 기독교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정교회의 경우, 한국 국내 신자 수가 5천 명을 넘을까 말까 한 수에 불과합니다. 그러다 보니 동유럽과 러시아 지역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정교회에 대한 인식이 한국에서는 바닥을 길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에 정교회가 전래된 것은 1900년 러시아를 통해서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도무지 교세가 늘어날 수 없게 만드는 일들이 줄을 잇습니다. 1904년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일본에 패하면서 일본에 의해 러시아인 신부가 강제 출국을 당하는가 하면, 1917년에는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 소련이 성립되면서 러시아 정교회는 한국 교인들은커녕 스스로를 건사하기에도 바쁜 신세가 되었습니다. 겨우겨우 일본이 패망해 쫓겨가고 교세 확장의 기회가 오나 했더니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기존의 서울 성당이 폭격을 맞아 무너지고, 설상가상으로 일본 정교회로 강제 편입되었던 시절이 문제가 되어 성당이 적산으로 분류되며 성당 부지가 통째로 몰수될 위기에까지 처한 적도 있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그리스군 종군사제로 부임했던 안드레아스 할키오풀로스 신부의 노력으로 한국 정교회는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2004년부터는 세계 총대주교청 산하 지역대교구로 승격되어 지금에 이릅니다.
한국 천주교 신자들 가운데에는 아무래도 정교회에 대한 호의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7대 성사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른바 형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훈련소에 있을 적에, 한번은 연무대성당에서 크리스마스 미사를 집전하던 신부님이 문득 훈련병 하나를 단상으로 불러냈습니다. 그 훈련병은 정교회 신자였는데, 정교회는 한국군에 종군사제도 성당도 없기 때문에 군에서 신앙생활을 하기 어렵습니다. 때문에 성사교류가 되고 있는 천주교 미사에 참례한 것일 테지요. 신부님은 그를 불러올려서, "신앙생활을 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꿋꿋이 믿음을 찾아 이곳으로 온 마음이 기특하여, 자네에게 특별히 선물을 줄 테니 소대원들과 나눠 먹으라"고 하면서 엄청난 양의 초코파이 선물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 날 훈련병 한 사람마다 초코파이 한 박스씩을 안겨 준 탓에 복귀한 후 조교들이 그 사실을 알고 뒤집어졌다는 웃지 못할 비화와 함께, 굳은 의지로 신앙을 유지하던 그 훈련병과 그 마음을 이해해 주었던 신부님의 모습이 여간 잊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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