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이거죠.
(맛들린 레베기님 흉내내기)
이번에도 아내의 회사에서 받아온 사회공헌 키트다.
'세상아이'라는 사단법인에서 복지시설에 계신 어르신들을 위해
색칠공부책을 만들어서 보내드리는 활동을 하고 있단다.
나는 꼭 이런 걸 보면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가 생각나서
최대한 정성을 담아서 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나더라고.
방법은 어렵지 않다. (설명서만 잘 따라하면 된다)
먼저 표지와 도안을 잘 겹치고, 도안에 난 구멍을 따라가며 겹쳐진 표지까지 뚫어 구멍을 낸다.
도안은 토끼와 코끼리, 고래 등 (또 한 가지는 까먹었지만) 총 네 가지.
모두 귀엽고 어딘지 모르게 감성을 자극하는 예쁜 그림들이었지만
이번에는 토끼를 골라 보았다.
너 봄 토끼가 귀엽단다.
재미있게도 이렇게 구멍을 뚫는 이유는
구멍을 따라 실로 바느질(!)을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또 바느질은 좀 하는 편이다.
일단 도안을 다시 봐 가면서 이어지는 방향에 따라 선을 그어 준다.
굳이 진하게, 혹은 똑바르게 그을 필요는 없다.
어차피 실이 다 가려 준다.
다음은 선을 따라서 예쁘게 바느질선을 내 주면 된다.
초등학교 실과 시간에 배워서 지금까지 유효활용하고 있는
박음질 실력이 빛을 발할 때다.
오히려 천에 대고 박음질할 때보다
이미 구멍이 난 종이에 바느질을 하는 것이
훨씬 더 편하다.
실 길이 계산을 살짝 잘못해서 두 번 만에 도안을 전부 꿰었다.
도안을 다 바느질했으면 이제는 책등을 묶을 차례다.
먼저 책 옆에 난 구멍을 따라 홈질을 하고,
끝까지 묶으면 한 바퀴씩 돌려 가며 책등을 묶어 나간다.
본의 아니게 동아시아의 전통 제본 방식을 배우게 되는 효과가 있다.
이 때를 사실 제일 조심해야 한다.
자기가 바느질을 잘 한다는 자만심에 빠져서
한 번에 여러 개의 구멍을 휙휙 꿰거나 하는 헛짓을 하다간...
이렇게 구멍 하나를 낼름 묶지 않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다.
당황하지 않고 다시 원상복귀한 뒤 재시작하면 된다.
끝까지 다 묶는 데 성공했다면
처음에 남겨 둔 실과 함께 잘 묶어서 마무리한다.
결국 맨 첫 구멍의 마무리를 또 까먹었다는 걸
이 사진을 찍고 나서야 깨달았다는 건 안 자랑.
책 묶기를 마무리하면 이제는 색칠 시간이다.
어르신들을 위한 색칠공부 책이라지만,
표지만큼은 내가 색칠공부를 하는 마음으로 예쁘게 꾸민다.
색칠 작업을 할 때가 사실 가장 어렵다.
정해진 내용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봄 토끼라는 컨셉트를 잡았기 때문에,
대표적인 봄꽃인 개나리를 일단 그려 넣은 뒤
풀밭의 다른 꽃들도 조금씩 그려 넣었다.
적적하신 어르신들이 보시기에 토끼가 혼자 있으면 외로워 보일까 봐
참새(랍시고 그렸습니다. 죄송합니다)와 나비도 그려 넣었다.
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꽃들이 여럿 있었지만,
아무래도 우리나라 사람 정서에는 개나리가 제일 어울리지 싶었다.
색칠공부책의 내용은 <섬집 아기>.
물질하러 나간 엄마를 기다리다 잠드는 아기의 이야기.
나는 이 노래만 들으면 어렸을 때부터 서른 줄인 지금까지
어쩐지 항상 눈물이 난다.
어렸을 때는 그저 이 내용이 너무 슬퍼서 그랬고,
지금은 아이가 어떤 마음으로 엄마를 기다릴까 싶어서 그렇다.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이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날 것만 같다.
그때는 어떤 마음으로 이 노래를 듣게 될까.
마지막으로 박음질 자국을 가리기 위해서
앞표지와 뒷표지를 양면테이프로 이어서 붙이면
이렇게 고운 색칠공부책이 완성된다.
어떤 어르신에게 이 책이 가게 될까.
비록 서툰 그림으로 꾸민, 어쩌다 보니 만들게 된 그림책이지만
조금이나마 누군가에게 즐거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이렇게 진심으로 든 것도 참 오랜만이다.
설 명절을 마무리하며, 오랜만에 외할머니가 보고 싶어지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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