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미생활은 거창하게/식물

220423 오늘의 식물투어 : 한국화훼농협, 그린하트클럽

by 집너구리 2022. 4. 24.

주말치고는 다소 이른 시간인 아홉 시쯤 해서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마침 분갈이흙이나 수태 같은 식재가 다 떨어져서, 봄기운도 느낄 겸 식재도 살 겸 해서 한국화훼농협으로 향한다. 일산에는 크고 작은 화훼단지와 가든센터가 정말 많이 있어서 그야말로 '꽃의 도시'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지만, 최근에 가장 정을 붙인 곳은 한국화훼농협이다. 규모가 크고 시스템이 편리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바로 옆에 장 보기에 딱 좋은 초대형 하나로마트가 붙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농협 없었으면 도대체 어떻게 살 뻔했냐. 아직 홈플러스 같은 대형마트가 국내에 제대로 자리잡기 전부터 나를 데리고 하나로마트로 자주 장을 보러 갔던 어머니에게 그저 감사드릴 뿐이다. 이상하게 내 나이 또래인 30대 초반들부터는 하나로마트를 잘 모르더라고. 참고로 이거, 하나로마트 광고 아니다.

본격적으로 봄철이다 보니 화훼센터 바로 앞에 아예 하우스를 치고 모종을 잔뜩 팔고 있다. 하우스 안에는 판떼기로 파는 모종들, 하우스 밖에는 낱개로 사 갈 수 있는 모종들을 늘어놓은 형국이다. 그 탓인지 하우스 밖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한데 하우스 안에는 통 사람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주말농장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이들이라도 당장 한 판에 십수 개씩 들어 있는 모종을 판떼기로 가져갈 엄두는 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 주말농장을 처음 분양받은 사람들은 상추도 키워먹어 보고 싶고, 고추도 키워먹어 보고 싶고, 이런저런 작물을 다양하게 치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다. 도시농업에 열심인 우리 부모님 덕에 주말농장이라면 이골이 난 우리 식구들 정도는 돼야 모종을 판떼기로 사갈 생각을 하겠지. 늘 느끼지만 농사 또한 규모의 경제라서, 한 작물을 한 번에 싹 심어서 키우고 싹 뽑아 버리는 것이 관리도 훨씬 편하고 수확도 좋은 편이다. 몇 평도 안 되는 주말농장 밭뙈기에서 그런 걸 따지고 있을 계재는 아니기는 하지만.

 

어린이들을 데리고 오는 젊은 부모들이 많기 때문인지 이렇게 물고기 잡기 체험 행사도 하고 있다. 뜬 물고기 중에서 일부는 키워가도록 준다나. 이런 게 아이들의 동물에 대한 태도를 정립시켜 주는 과정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애꿎은 물고기만 고생이 많다.

 

따끈따끈한 바깥 공기를 떠나 실내로 들어온다. 짐수레를 하나 끌고 식재 코너로 가서 펄라이트니 수태니 이런 것들을 담고 있는데, 예전에는 막혀 있던 격벽 문이 열려 있고 뭔가 흥미로운 것들이 전시되어 있다. 원목 테이블이나 인조석으로 된 수반, 레진 처리한 나무 등걸에 그려진 성상들 등 재미있는 장식품들이다. 뭐랄까, 어렸을 적에 가족들이랑 여행을 다닐 때 가끔씩 만나곤 하는, 자연주의에 퍽 경도된 나이 지긋한 주인이 운영하는 펜션에 가면 으레 볼 수 있는 그런 갬성의 물건들이다. 그게 싫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정겹기까지 하다. 특히 파란색으로 칠해진 익살맞은 표정의 해마 장식이 무척 맘에 든다. 아내도 이 녀석을 퍽 마음에 들어해서, 한동안을 눈싸움을 했다. 나무 등걸에 그려진 성상도 내 기준에서는 꽤 재미있었는데, 일단 여기에서 뜬금없이 이런 종교적인 상징들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기도 했거니와, 천주교식 예수상과 성모상, 달마대사도, 그리고 개신교식 십자가까지 제법 3대 종단(?)의 구색이 잘 갖춰져 있다는 점이 특히 재미있었다. 장사 좀 하던 친구들이구먼.

 

식재 코너를 쓱 한 번 돌고서는 본격적으로 식물 구경에 나섰다. 봄이라 그런지 꽃이 핀 식물들이 예전에 비해서 대폭 늘어났다. 한 달 반 만에 제법 따뜻해졌기 때문인가도 싶다.

이렇게 큰 러브체인이라니. 우리 집에 있는 러브체인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다. 숱도 많고 이파리도 우리 집 러브체인의 두세 배는 되는 듯하다. 역시 빛이 관건인가?

 

오늘은 난이 무척 내 관심을 끌었다. 풍란과 나도풍란(대엽풍란이라고도 하지만 실제로는 호접란의 한 종류이다), 석곡 등을 비롯한 동양란과, 온시디움 샤리베이비나 카틀레야 등의 서양란 등 의외로 종류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나무판에 부작되어 있는 녀석들도 제법 있고. 나도풍란이 작고 동글동글하니 너무 귀여워서 한참을 그 앞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할인 코너에 40퍼센트 이상 할인하고 있는 카틀레야 종류도 있었는데, 벌브가 쪼글쪼글해져 있길래 도저히 이걸 잘 키울 엄두가 안 나서 일단 패스한다.

 

꽃사과 꽃이 정말 예쁘다. 사과꽃이 예쁜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꽃을 보기 위한 목적으로 개량해 놓으니 나무가 온통 꽃으로 가득 찰 만큼 흐드러지게 꽃이 폈다. 하늘하늘하고 얇은 하얀색 꽃잎이 무척 소담하면서도 아름답다. 피토니아 비슷하게 생긴 납작한 식물들도 있어서 잠깐 흥미를 가져 본다. 이름을 보긴 봤는데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 수국이 여기에 빠지면 섭하다. 사실 수국은 노지에서는 초여름부터 슬슬 피어나기 시작하지만 화훼시장에 나오는 수국들은 벌써부터 꽃망울을 배불리도 달고 나온다. 마음 같아서는 하나 데려오고 싶은데, 이미 집에 수국 화분이 두 개나 있으니 눈물을 머금고 참는다. 이렇게 다양한 수국 종류가 있었나, 하고 대신 새삼스레 감탄한다. 수국을 전 세계에 퍼뜨린 것이나 다름없는 일본에서는 수국 품종이 미친 듯이 개량되고 있다고 하는데, 다시 하늘길이 열리면 일본 쪽 가든센터에도 한번 가서 다양한 수국 종류를 둘러보고 싶다.

이렇게 나무 전체를 온통 꽃이 뒤덮은 개량철쭉도 있고. 나는 어렸을 적부터 철쭉과 영산홍이 그렇게 좋았다. 사실 제일 좋아하는 것은 진달래기는 하지만. 누가 들으면 도대체 어디에서 살다 온 사람이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으나, 어렸을 적 학교에서는 "진달래와 철쭉은 서로 다른 꽃이니 함부로 꽃 따먹겠다고 진달래 대신 철쭉을 뜯어먹지는 말라"는 이야기를 선생님들이 신신당부하시곤 했다. 철쭉에는 독이 있어서 함부로 먹다가는 정말 큰일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전화일본어를 하다가 이 얘기가 나왔는데, 정작 진달래나 철쭉이나 똑같이 '츠츠지'라고 부르는 일본에서는 딱히 그런 걸 가르치지는 않는단다. 애초에 꽃 자체를 통으로 씹어먹는 게 아니라 꿀만 빨아먹는 게 아니냐는 말에 별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오늘의 전리품은, 칠레산 수태 한 팩과 꽃이 핀 나도풍란 한 촉(향이 제법 강하다! 시트러스 계열의 톡 쏘는 향이 난다), 아내가 지난번부터 눈독을 들이던 교배종 호접란 한 촉, 그리고 뜬금없게도 하나로마트 앞에서 좌판을 깔고 팔고 있던 비올라꽃 세 촉이다. 비올라는 팬지의 한 종류인데, 꽃을 식용할 수 있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어서 한번 사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한 촉에 고작 칠백 원밖에 안 하는데야 사지 않고 어떻게 배겨. 참고로 몬스테라 델리시오사도 한 촉에 천구백 원 정도에 팔고 있었는데(이 말도 안 되는 가격을 보라지!), 녀석을 사들였다간 진짜로 집이 작살날 것 같아서 뇌에 힘을 주고 참았다.

 

오후에는 운동삼아서 홍대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린하트클럽을 잠깐 들렀다. 요즈음에는 딱히 별일이 없더라도 이 앞을 지나갈 때면 한 번씩 들러서 사장님과 수다를 떨다가 오곤 한다. 오늘은 난초 분갈이에 대해서 여쭤볼 겸 화분도 하나 살 겸 해서 한번 들렀는데, 봄이 왔다는 것을 동네방네 주장하고 싶기라도 한 듯 가게 앞이 온통 꽃으로 가득했다. 마치 달걀프라이 같은 하얗고 노란 마가렛은 물론이고, 우리 아버지가 무척 좋아하는 패랭이꽃, 그리고 오묘한 청보랏빛으로 다글다글 꽃을 피우는 로벨리아까지 그저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하는 녀석들이 가득하다. 

토분을 하나 사면서 난초 분갈이하는 법을 여쭤봤는데, 내가 제일 편하다고 생각했던 '바크와 하이드로볼로 심기'와는 달리 완전히 동양란식 식재법인 '봉심기'라는 것을 알려 주셨다. 구멍이 넓게 뚤린 토분에 마치 밥그릇처럼 수태를 얹어서 그 위에 난초를 키우는 식재법이란다. 이번에 사온 난초들로 한 번 해 볼까 싶다. 사장님이 키우시는 하나하나 다 아름다운 베고니아들로부터 시작해, 스페셜티 커피, 별거 없지만 가장 깔끔한 드립 커피, 사장님이 요새 실험하고 계시다는 식물 활력제에 대한 이야기, 난 분갈이하고 키우는 이야기, 새로 사들이신 블루아이스 얘기까지 짧은 시간 동안에 대화의 주제가 널뛰기하듯 이리저리 뛰었지만, 이런 게 식물친구들(?)끼리의 대화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큰돈을 들여서 예쁜 식물을 사는 게 물론 좋기는 하지만, 저는 사람들이 더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을 키우면서 각각의 즐거움을 찾아가면 좋겠어요."라는 사장님의 말씀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발걸음도 가볍게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철쭉과 영산홍, 라일락이 가득하다. 도중에 이렇게 나무 구석구석에 무슨 며느리밥풀꽃 같은 꽃이 달려 있는 나무가 있어서 신기해 찾아봤는데, 얘 이름도 밥티기나무란다. 이렇게 또 꽃나무 지식이 하나 늘었다. 그야말로 식물로 가득 찬 하루가 아닌가. 일단 내일은 오늘 사 온 난초들을 다시 분갈이해 주고, 뭔가 식물로 또 글 쓸 건덕지가 있는지 고민을 좀 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