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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은 거창하게/식물

토분 받침에 카틀레야 야매로 부작해 보기

by 집너구리 2022. 5. 15.

한국화훼농협에 갔다가 할인하는 카틀레야를 한 촉 사 왔다. 요새 계속 의식적으로 난초를 조금씩 들여오고 있는데, 그 일환이다. 들여놨다만 하면 죽이기 십상이라 쉽지 않다는 것이 난초에 대한 일반적인 인상이지만, 호접란을 몇 촉 죽여 보면서(?) 점차 난초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이렇게 키우기 쉬운 식물도 흔치 않지 않나 싶을 정도다.

 

그러나 풍란이나 호접란처럼 비교적 구하기 쉽고 가격도 낮은 편인 난초에 비해, 카틀레야만큼은 작은 녀석이라도 가격대가 심상치 않은 경우가 많다 보니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국화훼농협 할인코너에 괜찮은 소품 카틀레야가 (물론 싸지는 않지만) 여러 촉 있는 것을 보니 '이제 한 번 도전해 볼 때가 되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왕 사 온 김에, 이번에는 뭔가 새로운 것을 해 보고 싶었다. 그렇다. 부작이다.

 

1. 부작에 사용할 도기 화분받침을 하나 준비한다.

 

부작이라고 하면 보통 돌에다 수태를 얹고 난을 붙이는 '석부작', 관솔이나 유목 등의 목재 위에 난을 붙이는 '목부작', 나무고사리류의 묵은 줄기에 난을 붙이는 '헤고부작' 등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 작업을 위해서 찾아본 많은 난초 전문가 선생님들의 말씀에 의하면, 부작이란 게 특별할 것 없이 아무데나 마음에 드는 표면에 난을 붙여서 난이 착생하도록 하면 되는 작업이라고 한다. 이론상 착생이 가능한 딱딱한 표면이라면 뭐든 가능하다는 거다. 이번에 준비한 카틀레야가 작기도 하고, 처음 시도해 보는 것이기도 해서 일단은 작고 납작한 토분 받침에 부작해 보기로 했다.

 

 

2. 부작을 걸 수 있도록 철사를 걸어 고정한다.

 

나는 분재철사를 활용하여 삼각형 모양으로 꼬아 화분받침을 둘러싼 뒤, 한 꼭지에 다시 철사를 꿰어 걸이를 만들었다.

 

3. 수태를 물에 불려서 준비한다.

 

수태는 최소 30분 불려서 사용하되, 이론적으로는 12-24시간 정도 불리는 것이 좋다고 한다. (난 치기 초보인 내 입장에서는) 무척 놀랍게도, 어떤 난초 전문가들은 이렇게 불린 수태를 길이별로 하나하나 분류해서 각각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고 한다. 나는 아직 그럴 경지까지는 아니고, 일단 이 시점쯤 되니 이미 저녁 11시를 넘긴 시간이었기 때문에 빨리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4. 난초를 화분에서 꺼내어 뿌리를 정리한다.

 

이번에 내가 사 온 카틀레야는 딱 보기에도 질이 괜찮아 보이는 자잘한 바크에 심겨져 있었다. 한 번도 써 보지는 않았지만 이름은 익숙한 오키아타 바크가 이건가? 싶기도 하고. 물론 바크에 키우는 것은 아주 정석적인 서양란 식재법의 하나이고 아무런 문제도 없지만, 나는 그저 부작을 연습해 보고 싶었을 뿐이다. 뿌리에 붙은 바크 조각을 정리한 뒤, 개중에서썩은 뿌리가 있는지 확인하고 제거해 준다. 보통 중심으로부터 가까운 뿌리들은 이미 오래 돼서 삭아 버린 경우가 많다. 호접란을 봐도 비슷한 경우가 많다. 이 카틀레야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뿌리가 멀쩡했지만, 중심부 근처의 뿌리들이 살짝 삭아 있어서 그것들은 잘라내어 제거했다.

 

5. 화분받침 위에 수태를 깐 뒤 카틀레야를 얹는다(수태를 더 얹어도 된다).

 

졸려서 다소 혼동이 있었던 탓에 카틀레야 뿌리 위에 수태를 한 번 더 얹었던 것 같기는 하다. 봉심기나 공동심기를 할 때에는 노출된 난초 뿌리 위에 한 번 더 수태를 이불 깔듯 덮어 주지만, 부작에는 꼭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한다. 어차피 다음 단계에서 낚시줄 등으로 묶어 줄 테니까. 이미 덮은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나름대로 습도는 좀 더 유지되지 않을까 하고 스스로를 위안해 본다.

 

6. 낚시줄로 잘 동여매 주면 완성.

 

마지막 단계로는, 이렇게 화분받침에 얹은 수태와 난초를 걸이대에 걸었을 때 떨어지지 않도록 잘 동여매 주면 된다. 보통 이 매듭이 눈에 띄지 않게 하기 위해서 투명한 낚시줄을 사용한다고 한다. 나는 낚시줄 대신 나일론 줄이 있어서 그것을 사용해서 부작을 친친 동여매 줬다. 수태가 마르면 물을 주는 식으로 잘 관리하면 뿌리가 자라나와서 점차 화분에 착 붙어서 자라나게 될 것이다. 다만 부작을 처음 한 뒤로는 한 일 주일 정도는 그늘에서 관리하면서 난초가 충분히 적응하도록 해 주는 것이 좋다.

 

부작을 한번 해 보니, 일단 제법 모양새가 볼 만하다. 공간을 덜 차지하기도 하고. 일반적인 화분이라면 화분 선반의 한 구석을 3차원으로 차지하면서 점차 커지게 되겠지만, 부작을 해 놓으니 양지바른 곳이라면 어디든(창가이건  그냥 걸어만 두면 이 부작 자리에서 조금씩 커질 뿐 부피가 극적으로 성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착생난이니 난초 입장에서 봐도 밑지는 장사가 아니기도 하고. 다만 통풍이 좋은 곳에서는 물이 극적으로 빨리 마르기 때문에, 물 관리를 부지런하게 해야 한다. 장마가 찾아오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건조한 봄인 지금은 돌아서면 수태가 바삭해지고, 돌아서면 수태가 바삭해지는 느낌이다. 그래도 녀석이 잘 자라서 언젠가 예쁜 꽃이라도 피워 준다면 더없이 고마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