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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190526 Fiji | Sydney

[이것저것 다 하는 신혼여행] 9. 스냅사진 촬영과 랜드마크 구경, 그리스식 저녁 식사와 밤의 천문대

by 집너구리 2022. 6. 26.

 

* 이 여행기는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인 2019년에 있었던 일을 다룹니다.

 

(앞 에피소드는 여기)

 

[이것저것 다 하는 신혼여행] 8. 시드니에서의 둘째 날, 차이나타운에서의 말레이시아풍 식사와

* 이 여행기는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인 2019년에 있었던 일을 다룹니다. (앞 에피소드는 여기) [이것저것 다 하는 신혼여행] 7. 휴양 끝 관광 시작! 시드니에서의 첫 끼니와 시드니의 첫인상, 낮

sankanisuiso.tistory.com

타운홀 역에서 서큘러 키 역으로 가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지하철 노선만 세 개가 같은 경로로 다니는데, 승강장 수가 많기 때문에 승강장으로 내려가기 전에 어느 기차가 어디로 들어오는지만 잘 체크하고 가면 된다. 보통 열차가 가는 방향으로 있는 주요 역들을 몇 개 같이 보여 주기 때문에 더욱 확인하기 쉬운데, 서큘러 키는 그 '주요 역'들 중 하나에 속한다. 

 

서큘러 키 역에 내리면 바로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저 유명한 오페라 하우스의 정경이다. 어제 배를 타고 지나가면서 보긴 했지만, 쾌청한 낮에 보니 그 아름다움이 한 다섯 배는 더 강렬하게 느껴진다. 새삼 날씨가 맑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개 껍데기를 형상화한 모양이라는데, 차라리 시드니 만에 떠 있는 하나의 거대한 돛단배 같기도 하다. 사실은 신혼여행 계획 단계부터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꼭 오페라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정말 안타깝게도 우리가 신혼여행을 다녀오기로 한 기간에는 오페라하우스에서 현대예술 공연밖에 하고 있지 않았다. 통탄할 노릇이다. 다음에 시드니에 갈 때는 오페라하우스에서 오페라를 볼 수 있는 시즌에 한번 맞춰 보고 싶다.

 

사진작가님은 여기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는 한국인 여성이라고 했다. 퍽 따뜻해 보이게 옷을 입고 나타난 작가님은 우리를 서큘러 키로부터 시드니 현대미술관, 조지 가, 캠브리지 가, 글로스터 가로 이리저리 이끌고 다니면서 자연스러운 사진을 뽑아 주셨다. 우리가 별것 아닌 대화를 나누면서 웃는 모습, 길거리를 거니는 모습, 어느 주택가인가의 계단에 걸터앉아 있는 모습 등등. 개인적인 사진이므로 여기에 싣지는 않겠지만, 지금 봐도 그 때의 감성이 새록새록 살아나는 몽글몽글한 느낌의 사진들이다. 그 때 거닐었던 곳들의 사진을 동선 순서대로 실어 본다.

(좌) 어디였던지 기억이 안 나는데 퍽 멋있었던 낡은 문짝. (중) 브리지 스테어스의 지하도. 수많은 관광객들의 발자국이 찍혀 있다. 우리도 각각 하나씩 찍었다. (우) 브리지 스테어스의 출구측. 타워브리지로 올라갈 수도 있고, 시드니 천문대와 글로스터 가를 오갈 수도 있다.
시드니 천문대! 고풍스럽고 우아한 느낌의 건물이다. 이 때까지는 맑았는데...
옵저버토리 힐 파크Observatory Hill Park에서 바라본 시드니의 전경(1)
옵저버토리 힐 파크에서 바라본 시드니의 전경(2). 수많은 사람들이 돗자리를 펴거나, 그냥 바닥에 앉아서 여유를 즐기고 있다.
옵저버토리 힐 룩아웃Observatory Hill Lookout에서 바라본 하버 브리지와 월시 만의 모습. 파노라마로 찍었다.
하버 브리지 아래로 내려가면 이렇게 철골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다.
하버 브리지 아래에서 바라본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서서히 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해질녘, 석양을 등지고 다리 철골 구조 위를 걷는 관광객들. 하버 브리지 관광코스의 일부분이다. 우리도 가 볼까 하다가 말았다.
바닷바람이 슬슬 불어오기 시작하는 하버 브리지에서.
만 건너편에 있는 놀이공원인 '루나파크 시드니Luna Park Sydney'의 모습. 관람차가 있기는 하지만 사이즈가 작기도 하고 바다를 건너가야 해서 미뤄 두었다. 저 태양 모양의 얼굴 조형물이 너무 괴이쩍어서 줌을 당겨 찍었다.
서큘러 키 웨스트Circular Quay West)의 적벽돌 창고군. 1800년대에 세워진 부두들은 어쩜 이렇게 찍어낸 듯 적벽돌 창고군이 있나 모르겠다. 요코하마, 가오슝, 시드니 모두.

스냅 사진을 찍는 건지 데이트를 하는 건지 모를, 무척 즐거운 시간은 두어 시간 만에 마무리되었다. 시드니는 겨울의 문턱에 걸쳐 있는지라 해가 네 시 반쯤 되니 벌써 노을지기 시작한다. 밝은 낮 시간부터 뉘엿뉘엿한 이른 저녁까지 다양한 빛을 받는 우리들의 모습을 꼼꼼이 담아 주신 작가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서큘러 키 역에서 헤어진다. 여기서부터는 느긋하게 걸어 다시 중심가로 향한다. 어제 그렇게나 바람이 불었던 것이 거짓말 같이, 오늘은 그나마 바람이 덜 불어서 춥기도 덜하다. 한 20분쯤을 걸으면 우리가 오늘 저녁을 먹기로 한 레스토랑이 나타난다. 그리스 식당 '메두사Medusa'다.

 

'메두사'의 입구 모습.
정말로 그리스 신화의 그 메두사를 가게 벽화로 그려 놓았다. 음식으로 사로잡겠다 이건가?

왜 호주까지 가서 그리스 음식을 먹게 되었느냐 하면, 별 이유는 없었다. 그냥 양고기가 무지 먹고 싶었을 뿐이다. 우리의 검색 기술이 그리 좋지 않았을 수는 있지만, 시드니에서 '맛있는 양고기 구이'를 찾았더니 당시에 제일 먼저 나왔고 제일 평점이 좋은 곳이 여기였다(사실 캥거루 고기도 먹어 보고 싶었지만, 그건 어영부영하다 보니 찾기를 까먹었다). 그리스의 아름다운 풍광을 그린 벽화가 가득한 가게에 앉아 메뉴를 고르고 있자니, 이건 도대체 뭐가 무슨 요리인지를 알 방도가 없다. 일단 전채 하나에 램찹 구이 하나, 수블라키 하나를 주문하기로 했는데, 전채 중에 뭔가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로켓과 구운 토마토, 허브 오일을 곁들인 구운 키프로스 치즈'라는 설명이 붙어 있는 '할루미'라는 메뉴다. 궁금하니 한번 시켜 보기로 한다. 사실 이번 여행을 거치며 '로켓'이라는 채소의 맛을 알게 되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로켓이 딴 게 아니고 루꼴라였다. 어쩐지 맛있더라고.

 

구운 할루미 치즈. 로켓(루꼴라)와 구운 토마토 샐러드가 곁들여 나온다.
파이타키아(램찹 양념구이에 구운 감자, 피망, 양파를 곁들임)와 아르니 수블라키(양고기 꼬치구이에 감자튀김, 토마토 양파 샐러드, 피타 빵, 차지키 소스를 곁들임)
디저트로 제공된 터키시 딜라이트(로쿰)

결론적으로 이야기해서, 식당을 무척 잘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아내의 맛집 검색 능력은 알아줘야 한다. 재미있게도 수블라키를 무슨 고기로 만드는 건지, 램 찹보다 오히려 더 맛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램 찹이 맛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딱 좋게 구워진 부드러운 양고기에 역시 구운 야채가 잘 어울린다. 요구르트를 베이스로 만든 소스인 차지키 소스도 양고기와 아주 잘 어울리는 상큼한 느낌이다. 수블라키는 샐러드와 피타 빵에 얹어 같이 먹게 되어 있는 그리스식 꼬치구이인데, 생긴 것만 봐서는 어째 중앙아시아 언저리에서 왔을 것 같지만 무척 오래 전부터 그리스에서 즐겨 먹었던 전통 요리라고 한다. 

 

할루미에 대한 이야기를 빼먹었다. 구운 치즈는 이전에도 몇 번 먹어 보았지만, 이렇게 맛있는 것은 처음이다. 짭쪼름하고 단단한 질감의 치즈인데, 노릇노릇하게 구워 놓았는데도 형태가 그리 뭉그러지지 않았다. 치즈에 허브 오일을 더 쳐서 먹는다는 게 일견 부담스러울 정도로 느끼하지 않을까 싶은데, 상큼한 로켓이나 토마토와 같이 먹게 되니 그렇게까지 부담스럽지 않다. 균형이 전반적으로 잘 잡힌 요리라는 느낌이다. 이 때 먹은 할루미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해, 한국에 와서 가끔씩 그리스산 할루미를 사다가 구워 먹고는 한다. 더럽게 비싸지만!

 

디저트로는 로쿰이 나왔다. 보통 영어로는 '터키시 딜라이트'라고 한다지만, 역사적으로 터키와 영 감정이 좋지 않은 그리스 식당이다 보니 이걸 영어식으로 그렇게 불러도 되는지 살짝 고민이 된다. 그냥 원어식으로 '로쿰'이라고 부르는 게 나은 것 같기도 한데, 또 '로쿰'이라는 표현이 터키어식 표현인가? 싶기도 하고. 어려운 일이다. 그런 고민은 달짝지근한 로쿰을 입에 한 개 털어넣는 순간 싹 사라진다. 뇌가 녹을 정도의 달콤함. 민트가 들어가 녹색 기운이 감도는 녀석이 두 개, 장미가 들어가 붉은색 기운이 감도는 녀석이 두 개. 각각 하나씩 맛보라는 친절함이다. 달큰하면서 상큼한, 그러면서도 뒷맛이 남지 않는 산뜻함이 디저트로는 제격이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잠시 숙소에 들렀다가, 손짐을 챙겨서 여덟 시쯤 숙소를 나왔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천문대 투어가 저녁 여덟 시 반에 잡혀 있기 때문이다. 타운홀 역에서 오팔 카드를 찍고 전철을 타서, 바로 다음 정거장인 윈야드 역에서 내린다. 사실 걸어가도 상관없는 거리이긴 하지만, 오늘은 둘 다 너무 많이 걸었다. 시드니 천문대가 영 어중간한 위치에 있다 보니 윈야드 역에서 내려서 걸어가든 서큘러 키 역에서 내려서 걸어가든 큰 차이는 없지만, 서큘러 키에서 천문대로 가려면 낮에 지났던 어둠침침한 브리지 스테어스 지하도를 지나야 해서 다소 거리껴졌기도 하다. 켄트 가를 쭉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천문대로 올라가는 길다란 계단이 나온다. 헉헉거리며 계단을 올라가는데, 어째 하늘이 영 꾸물꾸물하다. 오늘 망원경으로 하늘 구경을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이거 괜찮은지 모르겠다.

 

윈야드 역의 플랫폼. 벽에 붙은 역명판은 역마다 색깔이 다르다.
밤의 시드니 천문대의 모습.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이 생각보다 여럿 있었다.

밤 여덟 시 반인데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천문대 투어를 예약한 사람은 많았다. 다 해서 한 다스 정도는 되는 사람들이 모였다. 정문에서 예약 여부를 확인하고 들어가는 식인데, 접수처에 앉아 있던 직원이 "오늘은 하늘이 흐려서 망원경은 운영하지 않습니다."라고 알려 준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렇게 맑았는데? 직원이 민망하다는 표정으로 "오늘 저녁에 갑자기 구름이 많이 몰려와서 그렇게 됐어요. 죄송합니다."라고 덧붙인다. 그 대신 플라네타리움을 구경할 수 있게 준비해 두었단다. 플라네타리움 구경은 또 처음 해 보는 것이다 보니, 아쉬움이 크지만 그건 그것 나름대로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내하는 직원의 설명을 들으며 천문대의 전시시설을 잠깐 돌아본다. 시드니 천문대의 역사라든지, 남반구에서 볼 수 있는 별자리의 종류라든지,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천문기구들 같은 것들이 전시되어 있다. 갑작스레 세종조에 제작되었던 앙부일구의 복제품이 떡하니 전시되어 있는 것에는 다소 놀랐다. 1992년에 한국 문화재청에서 기증받은 것이라고 한다.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조상님의 발명품(의 복제품)을 만나게 되니 퍽 반갑다.

 

전시관 관람을 마치고 나서는 망원경을 한 번 둘러보러 갔다. 아쉬운 대로 천개는 열려 있어서, 어떻게 망원경을 보는지, 어떠한 천체들이 5-6월의 호주 하늘에 떠 있는지 등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시드니 천문대는 타워 브리지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데, 유쾌한 직원 선생님이 진짜 천체는 못 보는 대신 타워 브리지를 비춰 줄 수는 있다며 망원경을 타워 브리지 쪽으로 돌렸다. 다리를 걸어서 건너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목구비 등이 다소 뭉개지기는 했어도) 제법 똑똑히 보여서, 차례대로 들여다보면서 다 같이 낄낄대고 웃었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망원경이 있는 공간은 완전한 돔 형태로 되어 있어서 내가 서 있는 벽의 반대쪽 벽에 서 있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이 돔을 타고 들려왔다는 점이다. 자기들 딴에는 나름대로 조근조근 얘기하는 듯했는데(별 내용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이드 직원의 목소리보다 더욱 선명하게 들려서 흥미로웠다.

 

다음으로는  플라네타리움을 볼 수 있는 방으로 다 같이 이동했다. 빛샐 틈 하나 없는 공간에 다 같이 빈백에 기대 누워서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플라네타리움을 구경하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사진을 촬영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정도이다. 하늘의 다양한 별자리들, 각종 행성들과 그 위성들, 멀리 떨어진 은하와 성운, 성단, 그 너머에 있는 블랙홀 같은 다양한 천체들의 모습을 몰입감 있게 구경할 수 있었다. 이건 이것대로, 괜찮은 구경거리다. 

 

(좌) 지구와 태양의 관계를 나타낸 천구 모형. (우) 태양을 중심으로 토성까지의 행성들과 그 위성의 움직임을 나타낸 천구 모형. 목성의 갈릴레이 위성을 표현한 것이 눈에 띈다.
갑자기 분위기 국립과학관... 세종대왕의 앙부일구가 여기서?

아쉽지만 나름대로 재미있었던 천문대 구경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는 길에, 울워스 슈퍼에 잠깐 들러서 과일을 한 팩 샀다. 밤을 마무리하기 위해 아내와 맥주 한 병을 까기로 한 것이다. 피지에서 무더기로 산 피지 비터 맥주와 함께 먹는 수박은... 무척 맛있었으면 좋았겠으나 아쉽게도 생각보다 맛이 묽었다. 겨울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왜 민트를 함께 섞어서 파는 건지는 아직도 미스테리이다. 호주 사람들의 입맛도 참 알 수 없다. 그렇게 밤이 깊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