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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기

[방문기] 서울시 영등포구 '엘카페 커피 로스터스'

by 집너구리 2021. 4. 10.

지난번과는 다른 이유로 경기도 쪽에 일이 생겨 다녀오는 길이었다. 퍽 이른 아침에 출발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선유도 쪽에서 처리해야 할 일을 마저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하여 그쪽으로 향했다. 그러다 마침 생각난 곳이 바로 이번에 방문하게 된 '엘카페 커피 로스터스'였다. 최근에 알게 된 유튜버 '남자커피' 님이 영상에서 그렇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셨던 곳인데, 로스팅부터 브루잉까지 한 잔의 커피가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을 깊이 있게 파고들고 있는 업체라 하여 언젠가 한 번 가 보고 싶은 곳이었다. 

 

원래 선유도 하면 내가 심심하면 주말마다 다녀오곤 하는 어라운지가 있는 곳이기도 해서 친숙한 편인데, 엘카페 커피 로스터스도 그 근방이기는 하지만 한번에 묶어서 다녀오기에는 조금 더 걸어야 한다는 사소한 고충이 있어 여적지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가운데 마침 차를 빌리기도 했고 시간이 좀 뜨기도 했으니, 이만한 기회는 없다 싶었다.

 

 

선유도라고 하였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영등포구 양평동에 위치한 이곳은 양평동에 흔하디 흔한 폐공장을 개조하여 만든 로스터리 겸 카페이다. 겉에서 보기에도 퍽 오래 된 옛 건물을 느낌 있게 리폼했다는 느낌이 든다. 걸어서 2-3분만 나가면 바로 현대적인 대로변이라지만, 카페의 앞이고 옆이고 뒤고 전부 오래 된 공장들뿐이라 막상 이 안쪽으로 들어오면 뭔가 별세계 같은 느낌이 든다.

 

압도적인 블루리본의 개수들. 도대체 언제부터 받은 게야...

카페 문을 통해 들어가면 카운터와 로스팅 공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로스터들이 열심히 돌아가고 있는 모습이 훤히 보이는 로스팅실을 배경으로 마치 미래에서나 볼 법한 빌트인 에스프레소 머신과 자동 푸어오버 머신이 눈에 띈다. 푸어오버 머신에는 드리퍼들이 놓여 있고, 자동으로 노즐이 그 위를 뱅글뱅글 돌면서 물을 일정하게 붓고 있었다. 영상에서는 많이 보던 광경이지만 실제로 보다니 퍽 신기했다. 내부에 앉을 자리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코로나의 영향 때문인 듯도 싶었다), 정갈하고 모던한 인테리어가 제법 훌륭했다. 메뉴를 보고, 일단 엘카페 오리지널 블렌드 드립 커피를 한 잔 시키기로 하였다. 푸어오버와 프렌치프레스 중 한 가지를 고를 수 있다기에, 이번에는 일단 푸어오버를 부탁드리기로 했다. 한 잔에 6,000원.

 

로스팅 공간과 카운터. 가운데에 에스프레소 머신들이, 오른쪽 끝에는 푸어오버 머신이 눈에 들어온다.

좌석 외에 눈에 들어오는 것은 계산대 오른쪽으로 펼쳐져 있는 전시 공간이다. 가지각색의 원두와 드립백이 현란하게 진열되어 있다. 엘카페 특유의 시그니처 블렌딩 원두는 물론이고, 싱글오리진 스페셜티 원두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아쉽게도 고작 며칠 전에 베라커피 아울렛에서 이미 원두 두 팩을 사 둔 터라, 눈물을 머금고 시그니처 블렌딩 원두 한 팩만을 사기로 했다. 

 

계산대에 원두를 가져다 드리고 계산을 부탁드렸더니, 놀랍게도 원두를 사면 원래 드립커피 한 잔이 무료라고 한다. 덕분에 의문의 공짜 커피 한 잔을 얻어먹게 된 셈이다. 앞에서 한 결제를 취소하고 원두 한 팩의 가격만을 다시 결제한다. 무언가 이득을 본 것 같아 괜히 즐거워졌다.

 

다양한 종류의 블렌드 원두와 싱글오리진 원두들이 팔리고 있다. 
그라인더와 에쏘팟도 전시해 두고 팔고 있다. 에쏘팟의 실물을 구경하고 싶을 때 가면 좋겠다.
가게 구석에는 이렇게 몇몇 커피용품들을 두고 팔고 있기도 하다.

대략 공간의 절반 정도를 로스팅 스페이스와 사무실로 쓰고 있는 듯, 무엇보다도 로스팅에 진심인 카페라는 것이 깊게 느껴졌다. 카페 내부를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 카운터로 돌아오니, 마침 내가 마실 커피 한 잔이 완성된 참이었다. 바깥에 나와서 일단 마스크를 살짝 내리고 한 모금을 마셔 본다. 과연 훌륭하다. 혀가 데이지 않을 만큼 딱 적절한 온도에, 깔끔하면서도 풍성한 향이 입 안을 가득 채운다. 커피 취미를 시작하고 나서 하루 커피를 한두 잔씩은 꼭 마시는 습관이 들어 버린 참에, 이렇게 아침의 첫 한 잔을 더할 나위 없이 즐겁게 시작하는 것은 또 하나의 소소한 행복이다. 따지고 보면 어라운지에서 기껏해야 10분 정도 더 걸으면 바로 나오는 곳이니, 기왕 선유도까지 걸어갔다면 한번씩은 들러서 원두도 사고 맛있는 커피 한 잔 얻어먹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산 원두와 함께. 별 생각 없이 드립커피와 같은 맛으로 주문했는데, 그러길 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