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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기

[방문/포장기] 서울시 은평구 '솔밭식당'

by 집너구리 2021. 4. 3.

유튜브 중독자에 가까운 나와 달리 아내는 유튜브라는 매체 자체가 취향에 맞지 않다고 종종 나에게 호소하곤 했다. 그런 아내가 유독 열심히 챙겨보는 유튜브 채널이 바로 먹방 유튜버 쯔양 님의 채널이다. 먹방도 유튜브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쯔양의 유튜브 영상은 열심히 보는 것이 여간 신기하지가 않은데, 너무 깔끔하고 맛있게 잘 먹다 보니 점점 빠져들게 되는 모양이다. 나조차도 옆에서 보다 보면 멍하니 빨려들어 같이 보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

 

덕분인지는 몰라도 아내가 쯔양의 유튜브 영상 속에서 등장하는 맛집들을 종종 이야기해 주며 나중에 한 번 같이 가 보자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그 중 우리 부부가 가장 흥미를 가지고 도전해 보고 싶었던 가게가 이곳, 은평구에 위치한 '솔밭식당'이었다. 묘하게 예전에 학교 다닐 적에 같이 자주 다녔던 학내 식당과 같은 이름을 가진 이 식당은 우리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내 기준으로 운동삼아 걸어갔다 오기 충분할 것 같았다. 뽈살, 하얀살 등 돼지고기 특수부위를 주로 파는 식당이라는데 쯔양이 정말 신들린 듯이 고기를 구워 먹으며 연신 맛있다고 외치는 통에 우리는 마른침을 삼키며 다음에 포장이라도 꼭 해서 먹어 보자고 다짐했고...

 

 

마침 지난 주말에 수색동 쪽으로 운동삼아 혼자 부동산 임장(?)을 갔다 오는 길에 시간이 좀 남을 것 같았다. 잘 됐다 싶어 솔밭식당에 가서 모듬고기 2인분을 포장해다가 집에서 구워 먹기로 했다. 

 

정말 작고 오래 된 가게다. 그냥 지나가다간 모르고 쓱 지나칠 수도 있겠다.

 

달랑 한 칸짜리 작은 가게에는 저녁 여섯 시가 갓 넘어간 시간임에도 벌써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가게 문을 열자 고소하지만 역하지는 않은, 사람 기분을 좋게 만드는 고기 굽는 냄새가 확 끼쳤다. 메뉴판을 찍어 두는 것을 까먹었는데, 주 메뉴로는 뽈살/하얀살/목안살/연안살이 각 200g에 14,000원, 모듬고기가 250g에 15,000원이었다. 특수부위가 보통 얼마씩 하는지를 잘 모르긴 했지만, 이 정도면 두 사람이 고깃집에서 먹기에 나쁘지 않은 액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하고 계신 분들(아마 사장님 한 분과 점원 한 분인 것 같았다)이 너무 바빠 보이셨기 때문에 일단 안에 들어가서 그분들이 내게 다가오기를 멀거니 기다렸다. 이윽고 한 분이 다가와 주문을 받으셨다. 모듬고기 2인분 포장을 요청드리고 나가서 기다렸다. 창문 너머로 들여다보니, 고기만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저것 뭔가 더 챙겨넣고 있는 듯했다. 한 5분쯤 기다리니 검은 봉지에 잔뜩 담겨 있는 음식을 점원이 들고 나와 건네 주었다. 제법 묵직한 손맛에 기분이 좋아졌다.

 

 

집에 돌아와 포장을 펼치고 내용물을 꺼내 보았다. 고기와 편마늘, 청양고추, 상추가 기본적으로 들어 있고, 양념장으로는 고추장과 검은된장, 고추냉이간장의 세 종류가 들어 있었다. 이 양념장이 정말 훌륭해서, 된장과 고추장이 모두 부담스럽지 않고 깔끔하면서 감칠맛이 두드러지는 느낌을 주었다. 각종 후기들을 볼작시면 이 된장으로 끓여 주시는 된장찌개가 그렇게 맛있다는데, 아쉽게도 된장찌개까지 포장해 주시지는 않았다. 그건 다음에 직접 가게에 가서 먹을 때의 즐거움으로 남겨 두는 것으로.

 

 

(좌) 고기 포장을 막 뜯었을 때 (중) 첫 번째 판 (우) 두 번째 판

고기에는 기본적으로 소금과 후추, 참기름으로 간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고기 포장을 열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표면에 골고루 붙어 있는 간후추 알갱이들이다. 모듬고기는 뽈살, 하얀살, 목안살, 연한살의 네 종류가 골고루 들어 있다는데, 다른 건 모르겠고 하얀살은 누가 봐도 흰빛을 띄고 있어 확연히 구분이 갔다. 주인분께 뭐가 뭐냐고 물어보기라도 할 걸 그랬다.

고기를 굽기 시작하니 은은하게 간장 끓는 냄새도 같이 올라오는 것으로 봐서, 아주 미약하게나마 간장 양념도 들어가 있는 듯했다. 고기가 워낙에 부드러운 탓인지 그렇게 많이 익지 않은 상태에서도 가위로 너무나도 쉽게 슥슥 잘렸다. 다 구워진 고기들은 모양새가 같은 종류들끼리 모아서 접시에 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맛있는 고기들이었다. 특수부위라고는 갈매기살(웃음)과 껍데기(웃음)밖에 먹어보지 못했는데, 과연 왜 사람들이 특수부위에 빠지는지 알 수 있는 맛이라고나 할까. 부드럽게 씹히면서도 안에 담긴 육즙과 겉에 배어 있는 양념이 한데 어우러져, 마치 돼지고기가 아닌 다른 그 어떤 고기들을 먹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게다가 곁들여진 된장과 고추장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게 고기와 야채들과 함께 어우러졌다. 한식집에서 주인의 솜씨나 눈썰미를 가늠할 적에 보통 언급되는 기준 중의 하나가 장맛인데, 일종의 신화일지는 모르지만 '아무리 사서 먹는 장이 맛있다 하더라도 오랜 손맛을 들여 직접 담그는 장은 못 이긴다'는 나의 인식을 더 강화시킬 정도로 훌륭했다. 더더욱 이 장으로 끓인 된장찌개의 맛이 궁금해졌지만, 아쉬운 대로 집에 있던 청국장을 같이 먹으며 허한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물론 이 청국장도 정말 맛있긴 했지만!). 과연 오랫동안 한 자리에서 장사해 온 노포의 내공은 허투루 볼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만큼 훌륭한 식사였다. 언제고 시간이 되면 또 가서 포장해 와다 먹고 싶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