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미생활은 거창하게/식물

[취미생활은 거창하게] 종로꽃시장에 다녀와 보았다

by 집너구리 2021. 10. 24.

사실 가을은 새로 식물을 들이기에 썩 좋은 시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북향인 우리 집에서는 크게 의미가 없는 일이기는 하다. 오타쿠가 굿즈샵을 어슬렁거리듯, 커피 덕후가 로스터리를 기웃거리듯, 가정원예에 맛을 들인 지 얼마 되지 않은 입장에서는 어디든 꽃집이나 꽃시장이 있다면 한번씩은 들여다보게 되는 모양이다. 아니, 적어 놓고 보니 전부 내 얘기다.

 

한동안 골머리를 앓게 하던 큰 프로젝트 하나가 끝나고 나서, 도저히 안 되겠어서 휴가를 쓰고 종로에 나왔다. 간만에 혼자 외식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종로 근방의 흥미로운 건축물들도 구경하며 돌아다녔다. 흥인지문 앞으로 나왔을 때쯤, 다음으로 어디를 갈까 싶어서 지도 앱을 켜고 이곳저곳 뒤져 보는데, 바로 지척에 웬 꽃시장이 하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문득 양재꽃시장에 갔을 적에 구근 가게 사장님이 지나가듯 얘기하셨던 '종로에 있는 꽃시장' 생각이 났다. 아 여기가 거긴가? 바로 근처가 종로5가이기는 한데, 그 때 들었던 '종로에 있는 꽃시장'도 5가 근방에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여기가 맞는 듯하다. 심심했는데 마침 잘 됐지 뭐,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흥인지문에서 광화문 방향으로 종로를 따라 걷다가 갑자기 오른쪽을 한번 훅 돌아보면 정말 특이한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재미있게도 자동차가 씽씽 오가는 4차선 도로에, 그것도 한 차선을 떡하니 차지하고 길가를 따라서 화훼 좌판이 쫙 늘어서 있다. 가을이라 그런지 국화 종류의 화분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지만, 다른 계절에는 또 다른 식물이 많이 꽃피운 채로 손님을 기다리고 있으리라. 이곳이 종로꽃시장이다. 종로41길 거리를 따라서 200미터 남짓, 실외에 무척 자연스레 형성되어 있는 퍽 원시적인 형태의(부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시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지만, 생각할 만한 식물 종류는 얼추 다 나와 있다. 겨울이 되었을 때는 어느 정도나 좌판이 활성화되어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직 가을인 덕에 관엽식물류는 거의 대부분 있다. 좌판의 크기가 워낙 작은 탓인지 대부분의 식물들은 대품이 아닌 포트분에 심긴 모종의 형태로 팔리고 있었다. 양재동 꽃시장에 가면 사람 키보다 큰 몬스테라나 나무류도 많이 팔리고 있는 것에 비하면 다소 아기자기한 느낌이다. 그래도 한구석에 가면 정원용 묘목도 많이 세워 놓고 팔고 있는데, 재미있게도 묘목 하나마다 최소 하나 이상 과일은 달아 놓았다. 이 과일이 열린다고 일목요연하게 알려 주고 싶었던 걸까? 묘목마다 그냥 과일도 아니고 '왕자두', '왕감', '왕석류' 처럼 하나같이 '왕' 자가 붙어 있는 것도 어쩐지 웃음이 나온다. 과일은 클수록 좋으니까!

(좌) 작은 크기나 어린 새싹 형태의 관엽식물이나 야생초가 나와 있기도 하고, (우) 제법 큰 고무나무 등도 눈에 띈다.
특히 다양한 다육식물들이 두드러졌다.
묘목은 주로 과실수류가 많다.

 

뭐니뭐니해도 종로꽃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다육식물의 종류와 크기가 다양하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이렇게 크고 예쁘게 키울 수 있는 건지 궁금해지는 크고 아름다운 다육식물을 주루룩 늘어놓고 파는 분들도 계셨고, 작지만 다양하게 품종들을 준비해 놓고 팔고 있는 분들도 계셨다. 양재꽃시장에서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던 코노피튬 칼쿨루스 같은 친구들이 여기는 제법 여러 개, 아무렇지도 않게 놓여 있기도 했고. 기본적으로 양재동에는 뭔가 없는 식물이 있으면 '주로 봄철에 들어오기 때문에 지금은 없다'는 안내를 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여기는 순환이 빨리 잘 되는 것인지 아니면 순환이 안 되는 것인지, 양재동을 비롯해서 어디를 가도 봄에나 되어야 나온다던 붉은 사루비아 종자 같은 것도 아무렇지도 않게 팔리고 있었다. 

 

다만 좌판이 하나같이 무척 작고 영업 규모도 그다지 크지 않아, 대부분의 좌판에서 카드결제 설비를 (육안으로는)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다소 아쉬웠다. 물론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다들 어쩐지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서 계산하는 눈치였다. 카드 영수증을 제시하면 심지어 주차비를 깎아 주기까지 하는 양재 꽃시장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카드 결제에 대한 안내가 좀 더 명확하게 나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이 되거나 하면 다시 이곳을 찾아서 새로 나오는 화분들이 있는지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