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에는 그동안 늘 가 보고 싶었지만 우리 집에서 제법 멀어서 엄두가 나지 않았던 화원에 다녀와 보았다. 고양시 일산서구에 위치한 '월간화원'이다. 파주에 위치한 조인폴리아보다는 가깝고, 덕양구에 있는 더그린가든센터보다는 멀다. 직선거리로는 한국화훼농협보다도 조금 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집에서 고속화도로를 타고 가면 큰 차이는 나지 않는다. 한국화훼농협이야 거기 하나로마트가 같이 붙어 있다 보니 그만큼 장 보기 편한 곳도 없어서 자주 가는 거고.
월간화원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독일카씨님의 유튜브 영상 덕분이었다.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식물을 만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이름을 '월간화원'으로 지었다는 말을 듣고 흥미가 동한 지 벌써 몇 달째, 마침내 시간이 되어 들를 수 있게 되었다. 대화역 너머 북서쪽으로 나가게 되면 고층 아파트 단지 사이로 갑자기 논밭이 튀어나오거나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곳 월간화원도 차를 타고 가다 보면 고층아파트 옆에 뜬금없이 뿅 하고 나타난다. 바로 옆에 물이 찬 논까지 있어서 더욱 이색적인 느낌이 난다.
플라멩코 셀릭스와 수국이 잔뜩 서 있는 하우스 입구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제라늄(펠라르고늄)이 우리를 맞이한다. 제라늄이 이렇게 종류가 다양했나? 차라리 제라늄 꽃밭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온갖 모양새와 크기의 제라늄이 가득하다. 보통 꽃을 관상하는 식물들은 이파리가 큰 특색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제라늄은 심지어 이파리까지도 예뻐서 혼자 다 하는 듯하다. 어른들 댁에 놀러가거나 하면 종종 제라늄만 잔뜩 모아놓고 애지중지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요즘 그걸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듯하다. 수집욕을 자극하잖아. "예전에는 꽃이 그렇게 예쁜 줄 몰랐는데, 요즘 당신이랑 이렇게 다니다 보니까 꽃이 참 예쁘더라. 아, 이 꽃 색 너무 예쁘다." 아내의 말 한 마디가 이토록 뿌듯하다.
제라늄으로 가득 찬 공간에서 한 칸 옆으로 나가 보면 여기서부터는 일반적인 화원에 가까운 구성으로 변화한다. 콜레우스나 고무나무 같은 흔하고 키우기 쉬운 식물들, 가정의 달답게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는 카네이션과 패랭이꽃, 온갖 울긋불긋 꽃들과 무늬가 예쁘게 들어간 식물들도 눈에 띈다.
오고가는 데 불편하지 않을 만큼 적당히 넓은 통로를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한참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덧 카운터 앞까지 왔다. 이쪽의 식물들은 우리가 속되이 얘기하는 '희귀식물'의 범주에 포함되는 녀석들이다. 무늬 보스턴 고사리나 무늬 아단소니, 몬스테라 알보 등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의 무늬종 식물들은 물론이고, 상태가 제법 좋은 싱고니움이나 필로덴드론류, 칼라데아나 마란타류, 심지어는 안스리움(?!) 종류들까지 구비되어 있다. 물론 여기 있는 식물들을 다 파는 것은 아니고, 가격표가 붙어 있는 녀석들을 주로 파는 듯했다. 고사리류와 알로카시아류도 많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내가 견문이 짧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여기에서 본 알로카시아 프라이덱이 이제까지 봤던 어떤 프라이덱보다도 컸다.
일견 화원과는 별 상관 없어 보이는 포인트일지도 모르지만, 곳곳에 나름대로 인테리어를 의도하고 전시해 둔 듯한 소품들이 나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다양한 관엽 식물들의 잎과 꽃들을 그려 놓은 포스터 액자가 무척 탐이 나서 한참을 들여다봤다. 아내와 함께 꽃들의 이름과 모양새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름과 생김새가 도저히 대응이 안 되는 녀석들도 있고, 아는 모습의 녀석들도 있고. 어려서부터 식물도감이나 동물도감을 많이 봐서 그런가, 나는 아직도 이런 도감류가 너무 좋다. 곳곳에 숨겨져 있는 빨간머리 앤 소품을 찾아보는 것도 추천한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는 앤과 다이애나의 모습을 발견하면 누구나 절로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식물을 몇 개 더 살까 정말 한참을 고민했다. 바로크벤자민, 브레이니아, 리톱스 등의 후보를 두고 아내와 계속 세 식물의 앞을 왔다갔다하면서 고민했지만, 일단 있는 것부터 잘 키우자는 결론으로 이어져 결국 새 식물은 사지 않는 것으로 했다. 대신 화분받침 몇 개와 난초 행잉에 쓸 구멍난 토분을 두어 장 샀다. 가격이 생각보다 저렴해서 놀랐다.
그린하트클럽 때도 그러더니, 여기 사장님도 퍽 친절하시다. 처음 이곳을 알게 됐을 때부터 꾸준히 '사장님 부부가 친절하다'라는 평을 듣기는 했지만 정말 그렇다. 손님들에게 "케냐 AA 원두로 커피를 내려드린다"면서 권하시기도 하고, 식물에 대해 궁금한 것을 여쭤보면 찬찬히 자세하게 알려 주시기도 한다. 친절함을 무기로 삼고자 하는 사장님들 가운데에는 간혹 '붙임성'과 '무례함' 사이의 선을 잘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곳 사장님은 그저 식물과 사람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유쾌하면서도 무례하지 않기란 참 어려운 일인데 대단하시다. "저희 식물 중에 마음에 드는 게 혹시, 없으셨나요...?"라고 물어보시기에 그냥 집에 식물이 너무 많을 뿐이라고 손사래를 쳤더니, "그럴 수 있죠! 그래도 식물을 좀 많이 키워 보셨나 보네요. 저도 여럿 죽이고 살리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라면서 껄껄 웃는다.
계산을 하려고 보니 천장을 뚫을 듯이 크게 자라고 있는 아름다운 식물이 눈에 띈다. 잎에 마치 수채화 물감으로 칠한 듯한 희고 노란 무늬가 드문드문 나 있는 무늬 바나나이다. SNS에서는 많이 봤는데 이렇게 실물을 감상하기는 처음이다. 식물이라기에는 차라리 어떤 예술작품 같은 아름다움이다. 사장님에게 무늬 바나나 얘기를 하면서 신기해했는데, 무조건 건강한 녀석을 데려오겠다는 생각만 갖고 골라 왔더니 무늬가 영 애매하단다. 부인(이곳의 또 다른 사장님)께서 사 오라고 해서 데려온 녀석인데 생각보다 무늬가 선명하게 잘 나오지 않아서 눈치가 보이신다나. 우리가 보기에는 그래도 너무 예쁜데! "건강한 게 최고 아니겠어요?" 하니 사장님이 "역시 그렇죠?" 하면서 또 껄껄 웃는다.
어쩌냐, 단골이 한 곳 더 생길 듯하다. 한동안은 식물 구매하기 어려운데 이걸 어쩐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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