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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기

[방문/포장기] 서울시 마포구 '모센즈스위트'

by 집너구리 2022. 8. 7.

요즘 아내와 점심식사를 하면서 백종원의 <스트리트 푸드파이터>를 보고 있는데, 시즌 2의 첫화 튀르키예편에서 '카이막'이라는 음식을 소개하고 있다는 것은 미식에 진심인 사람이라면 웬만해서는 다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이 아름다운 자태 좀 보라지...

물소젖 10킬로그람에 40그람만 나온다는, 생크림과 버터의 그 어드메에 있는 깊은 맛을 낸다는 이 음식이 방영 당시 백종원 선생님에게는 "영 타산이 없는 일이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그러나 "언제고 꼭 튀르키예에 돌아가서 먹고 싶은 맛"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에 육식맨 채널에서 한국에도 카이막을 파는 가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육식맨 님은 서울에 있는 두 개의 가게를 다 가서 시식해 봤고, 어느 쪽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어느 한 쪽은 확실히 터키에서 먹었던 카이막 맛이 난다고 증언한 바 있다. 집에서 더 가까운 가게가 어디일까 하고 찾아봤더니, 상수동에 있는 '모센즈스위트'라는 가게가 그나마 가까운 듯하여 일요일 오전에 그리로 가 보기로 했다.

 

 

 

전날까지 눈이 부시도록 맑았던 하늘이 마치 거짓말이었던 마냥, 일요일 아침의 마포구 날씨는 꾸물꾸물 우중충했다. 바깥에 나가서 얼마 걷지 않은 것 같은데, 보도블럭에 하나둘 진한 동그라미가 그려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제법 강한 기세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바로 카이막을 사러 가는 것은 아니고 운동삼아 나온 것이었어서, 일단은 홍대 쪽에 있는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빵집 아오이토리에서 식사용 빵을 몇 개 샀다. 그 근처의 오래 된 카페에서 맛나는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다시 길을 나선다. 홍대 문화공원 뒷길을 따라 쭉 내려가다가 상상마당길 쪽으로 빠져서, 상수역 쪽으로 주차장을 따라 쭉 내려가면 그다지 크지 않은 테이크아웃 전문점 느낌의 가게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가 '모센즈스위트'다.

바로 앞이 차도라서, 줄을 가게 앞으로 바로 설 수는 없게 되어 있다. 단차선 차도 건너에 있는 원두막 앞에 대기줄 표시판이 있고, 그 뒤로 서너 명의 사람들이 우산을 받쳐 서고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나도 그 뒤에 서서 잠시 기다린다. 테이크아웃 위주로 운영되고 있기도 하고 오픈 시간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이기도 한 덕에 머지않아 주문할 수 있게 되었다. 카이막을 일단 두 개 주문하고, 쿠나파라는 이름의 디저트가 호기심을 자극해서 그것도 하나 시켰다. 음료도 몇 개 있었는데, 꿀을 탄 버터밀크인 발르슈트를 팔고 있길래 하나 살까 잠깐 고민했다. 내가 실제로 튀르키예의 어느 가게에 온 것도 아니고, 상수동에서 집까지 가려면 우중에 20분 정도는 걸릴 걸 생각하면 음료를 사기에는 다소 애매하다. 결국 카이막과 쿠나파만을 주문하고 잠시 기다린다. 주문한 음식은 생각보다 빨리 나온다. 주문하고서 한 5분 정도. 냉장 보관해야 하는 음식이므로 최대한 빨리 집으로 향한다.

 

집에 와서 포장을 뜯어 보았다. 카이막을 발라 먹을 수 있는 가벼운 느낌의 빵 두 덩이, 꿀이 깔린 카이막 두 덩이, 그리고 쿠나파 한 덩이. 쿠나파는 하루쯤 더 있다가 먹기로 하고, 점심을 먹은 뒤 카이막을 꺼내서 후식으로 먹어 보기로 한다. 친절하게도 카이막을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지, 빵은 어떻게 데워 먹어야 하는지, 카이막을 먹을 때 어떤 점에 주의하며 먹어야 하는지 등이 적힌 설명서도 동봉되어 있다. 카이막이 이름은 참 많이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접할 일은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한 배려인 듯하다.

먼저 빵을 200도 예열한 오븐에 2분 정도 넣어서 딱 기분 좋을 정도의 따끈한 온도로 데워 둔다. 이 빵이 또 별미라서, 맛이 진하지 않으면서도 쫄깃쫄깃하고 부드러워 그냥 식사빵으로 먹기에도 딱 좋았다. 빵만을 단품으로 팔고 있을 정도니 나름대로 빵에 자신이 있기는 한 듯하다(매일같이 먹기에는 다소 비싼 가격이기는 했지만). 따뜻한 빵을 손으로 뜯은 뒤, 카이막을 꿀과 함께 한 덩이 떠서 빵에 얹어 먹는다. 이 때 카이막을 잼처럼 눌러 바르지 말고, 덩어리 모양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도록 살짝 올려서 먹는 것이 포인트란다.

 

아, 정말 맛있다. 사실 백종원 선생님의 설명이나 육식맨 님의 설명에서 크게 벗어나는 느낌은 아니다. 정말로 훌륭한 풍미의 생크림과 훌륭한 향의 버터, 그 가운데 어딘가에 있는 질감과 맛과 향이다. 어느 쪽에 더 가깝다고 말하기 어렵다. 딱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희한한 음식이다. 고소하고 깊이 있는 향의 유지방과 달착지근한 꿀, 그리고 쫀득한 바게트의 삼합이 완벽하다. 공연히 튀르키예에 카이막을 먹을 목적으로 몇 번이고 간다는 소리가 나오는 게 아니구나. 유목민 출신들이기 때문에 비로소 만들 수 있는 훌륭한 디저트다. 튀르키예는 빵도 맛있고, 우유도 맛있고, 무엇보다도 꿀이 맛있다는데, 튀르키예에 직접 가서 카이막을 먹으면 어떤 느낌일지 괜스레 궁금해진다. 도대체 얼마나 맛있을까?

 

다음으로 먹어 볼 것은 이 '쿠나파'라는 디저트이다. 이 녀석은 설명이 자세히 써 있지 않아서 인터넷에서 무슨 음식인지 찾아봐야만 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자면, 밀가루를 가늘게 실처럼 반죽한 뒤 꿀과 치즈, 피스타치오 가루 등을 섞어서 페이스트리처럼 반죽해서 구워낸 음식이라고 한다. 전자레인지에서 40초 돌려서 먹으면 딱 적당하게 따뜻한 느낌이 된다.

 

꿀이 잔뜩 들어가서 그런지 무척 달착지근하지만, 아예 직접 꿀을 끼얹어 먹는 카이막보다는 덜 달다는 느낌이 든다. 밀가루 반죽과 치즈, 피스타치오가 완충 작용을 해 주는 듯하다. 우리는 이미 고르곤졸라 피자를 꿀에 찍어 먹는다는 경험을 통해 치즈와 꿀의 조합이 완벽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여기에 고소하고 향긋한 피스타치오 가루가 풍미를 더한다. 아는 맛 같으면서도, 식감이 독특한 탓에 익숙하다기보다는 새로운 느낌이 더 강하다. 뭐야, 이 맛있는 디저트는. 중동 사람들은 뭣 때문에 이토록 디저트에 진심이 되고 만 것일까? 튀르키예 디저트가 하나같이 뇌가 찌르르할 정도의 단맛을 자랑한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고 나도 실제로 여러 번 당해(???) 봤지만, 오히려 쿠나파는 치즈와 피스타치오 덕분에 제법 균형이 잡혀 있는 맛이었다. 카이막이 기분 좋은 날 특별히 먹고 싶은 느낌의 디저트라면, 쿠나파는 피곤한 여느 평일 저녁에 가볍게 사다가 먹고 싶은 느낌의 디저트였다.

 

글 쓰고 있자니 또 카이막과 쿠나파가 고파지는 저녁이다. 다음 주쯤에 또 한 번 도전해 볼까도 싶다.

 

+ 아내가 어딘가에서 카이막 믹스라는 희한한 물건에 대한 정보를 찾아왔는데, 재미있게도 우유에 카이막 믹스를 넣고 잘 가열하면 카이막처럼 유지방이 우유 위로 떠올라 굳는단다.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은 맛이라는데...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