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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기

[방문기] 서울시 마포구 '카페 쿠바노'

by 집너구리 2022. 6. 20.

늦은 밤, 예전에 먹었던 단호박에서 모아 놨던 호박씨를 하릴없이 까면서 육식맨 님의 영상을 보고 있었다. 뭘 도전해 볼까 하고 일없이 보고 있자니, '쿠바 샌드위치' 편까지 흘러들어왔다. 저렇게 고기를 많이 사용해서 만든 샌드위치임에도 "여름의 맛"이라는 평가를 내리시길래 도대체 무슨 맛이기에 따끈따끈하게 구운 핫 샌드위치를 여름의 맛이라고 하는지 궁금해졌다. 당장 해 먹기에는 손이 많이 갈 것 같아서 고민하다가, 이따금 베이킹 재료를 사기 위해 다녀오곤 하는 홍대 비엔씨마켓 옆에 쿠바 샌드위치 전문점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궁금함을 못 참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라면 한번쯤 발걸음을 해도 좋을 것 같아 아내와 함께 다녀오기로 했다.

 

홍대입구역에서 잔다리길을 지나 아오이토리 빵집을 향해 걸어가다가 적절한 시점에서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머지않아 카페 쿠바노를 만날 수 있다. 정오부터 가게가 문을 여는데, 그보다는 조금 일찍 홍대에 도착했기 때문에 근처에 있는 애니메이트에서 잠시 시간을 때우다가 열한 시 오십 분쯤 되어서 가게로 향했다. 쿠바 국기 모양으로 온통 꾸며져 있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쿠바에 가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마치 쿠바에 온 듯한 느낌이 드는 정경이 펼쳐진다.

 

가게 앞모습.

쿠바 국기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대략 쿠바 국기가 이런 느낌으로 생겼다는 인상쯤은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빨간 삼각형에 흰 별, 파랗고 하얀 줄무늬. 휴일 아침의 칙칙한 홍대 거리에서 문 하나를 열고 들어왔을 뿐인데 갑자기 휴양지 느낌이 물씬 난다. 장내 음악도 남미의 흥겹고 여유로운 리듬과 선율로 가득하다. 라틴계이신 듯한 점원들이 유창한 한국말로 자리를 안내해 준다. 자리를 먼저 잡은 뒤 음식을 골라 카운터에서 주문하면 음식을 가져다 주는 시스템이다. 마수걸이라서 느긋하게 음식을 즐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우리 뒤로 바로 이어서 서양인 팀이 한 무더기 들어오더니, 곧이어 한국인 팀이 하나 더 이어서 들어온다. 제법 인기가 많은 모양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화사하게 꾸며져 있는 가게 내부. 남미풍 식당은 늘 이렇게 분위기 있는 사진을 걸어 놓는 것 같다.
메뉴

샌드위치로는 쿠바 샌드위치와 빵 꼰 레촌의 두 종류가 준비되어 있다. 쿠바식 바베큐 고기를 기본으로 하되 치즈와 햄, 피클이 들어가면 쿠바 샌드위치, 들어가지 않으면 빵 꼰 레촌인 모양이다. 쿠바 전통 요리도 소량이나마 준비되어 있고, 럼주와 럼 베이스 칵테일도 많이 준비되어 있다. 흥미롭게도 커피 메뉴가 생각보다 충실하다. 음식점의 메뉴판에 준비되어 있는 커피란 보통 구색 맞추기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과연 식당 이름에 '카페'라는 이름이 들어간 값을 하는 듯하다. 에스프레소를 바탕으로 한 음료들 가운데 이채를 발하고 있는 것이 시그니처 커피로 밀고 있는 듯한 '카페 쿠바노'다. 보아하니 모카포트로 끓인 커피인 듯하다. 기실 모카포트라는 것은 이태리식 커피라는 인상이 강한데, 나중에 찾아보니 쿠바 사람들은 3컵짜리 모카포트로 내린 커피에 설탕을 미친 듯이 넣어서 먹는다고 한다. 보통 한 번에 한 네 티스푼 정도는 넣는다나. 아무튼 내가 평소에 내려 먹는 모카포트 커피와 얼마나 다른지 궁금하니까 일단 내 몫으로 카페 쿠바노 하나까지 시킨다. 아내는 음료수를 먹지 않는 주의라, 라임즙이 들어간 물 한 잔을 떠 와서 먹기로 했다.

 

아름다운...자태...

쿠바 샌드위치는 이렇게 생겼다! 길쭉하지는 않은, 동그랗고 커다란 번 안에 풍성한 향신료 향이 나는 쿠바식 바베큐 돼지고기와 독특한 향이 나는 피클, 그리고 담백한 느낌의 햄과 깊은 맛이 나는 치즈가 들어가 있다. 석쇠 모양의 틀로 눌러 굽는 모양이다. 감자튀김은 평범한 느낌의 웨지감자. 감자튀김을 찍어먹을 수 있도록 마요네즈와 케찹이 제공되고, 따로 병에 담긴 특제 마늘 소스가 같이 나온다. 테이블마다 타바스코 소스가 놓여 있으니 먹고 싶은 사람은 자유롭게 먹으면 된다.

 

샌드위치는 그냥 먹어도 맛있다. 균형이 잡힌, 든든한 느낌의 한 입이다. 어딘가 은근하게 익숙한 느낌이 난다 싶었는데, 아내가 "멕시코 음식 같은 향이 나네!"라고 해서 그 정체를 알았다. 남미 음식 자체에 조예가 깊은 것은 전혀 아니지만, 우리 부부는 멕시코 음식을 둘 다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자주 사 먹는다. 과연 멕시코 음식에 주로 쓰이는 향신료가 많이 들어간 듯, 그 비슷한 느낌의 향이 났다. 내가 완전히 공감했던 아내의 표현을 한 마디 더 옮기자면, "멕시코 음식은 대부분의 경우 모든 재료들이 기름에 볶여서 나오는데, 이 쿠바식 샌드위치는 재료를 거의 볶지 않고 굽기만 했기 때문에 훨씬 담백하게 느껴진다."

 

점원이 추천한 마늘 소스를 얹어서 먹으니 더욱 훌륭하다. 이 소스 어디다 담아서 갈 수 없나? 올리브 오일과 잔뜩 다져넣은 마늘을 기본 베이스로 하여, 오레가노와 고춧가루, 라임 즙 등의 향신료의 향기가 폭발적으로 강조되는 느낌이다. 라임의 상큼함이 무엇보다도 기분 좋다. 순식간에 바닷바람 냄새가 나는 휴양지의 차양 아래에서 샌드위치를 한 입 먹고 있는 듯한 느낌이 난다. 아, 이래서 육식맨 님이 이걸 여름의 음식이라고 했던 걸까. 정확히 말하자면, 여름의 음식이라기보다는 '휴양지의 음식'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기는 하지만, 보통 휴양지는 여름 휴가 때 가니까 가히 틀린 표현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카페 쿠바노는 샌드위치가 나오자마자 이어서 나왔는데, 쿠바 샌드위치 세트에 카페 아메리카노가 들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본래 쿠바 사람들은 샌드위치와 커피를 같이 먹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펄펄 끓는 모카포트를 같이 내어 주고 직접 따라 마시게 하리란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점원이 "뜨거우니까 조심하세요!"라는 경고를 하기는 하지만, 모카포트가 제법 오랫동안 열을 간직한다는 사실을 감안하자면 부주의한 손님들은 딱 데기 좋을 것 같았다. 설탕을 많이 넣어 먹지 않았기 때문에 정통 카페 쿠바노와는 조금 거리가 멀 수도 있겠으나, 아무튼 커피는 맛있었다. 

 

크게 기대하지는 않은 채로 그저 궁금증을 채우기 위해서 찾은 가게였는데, 생각보다 무척 만족스러운 한 끼 식사였다. 입 안에 계속 여운이 남아 있을 만큼, 그래서 집으로 가는 길 내내 쿠바 샌드위치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하며 웃고 떠들 수 있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홍대에서 집까지는 그리 멀지 않으니, 생각나면 한 번씩 들러서 사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