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다름없는 월요일 아침, 잠에 절어 있는 아내에게 아침을 먹여 출근을 시키고 커피 한 잔을 내려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유튜브 영상을 틀어 놓고 게임을 조금 하며 커피를 곁들인 내 몫의 아침을 먹는다. 그러다가 문득 달력을 보았다. 작년 추석도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설이 눈앞에 다가와 있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 오히려 이름조차 거론하고 싶지 않은 그 질병이 여전히 위세를 떨고 있는 탓에, 올해는 새해 첫 날을 가족과 함께 보낸다는 것조차도 어떠한 종류의 사치가 되어 버린 것만 같다.
올해 설은 그렇고, 지난 설은 어땠더라. 생각이 꼬리를 문다. 돌이켜 보니 회사에 매일같이 출근해서 일을 하던 시절도 벌써 퍽 오래 전의 일처럼 느껴진다. 작년 2월 말에 아내와 상암동에서 즐거운 기념일 식사를 한 다음 날, 회사에서 "앞으로는 재택근무를 전면적으로 시행하겠다"는 이메일이 도착하면서 모든 일이 시작된 것만 같다. 우리 회사는 재택근무를 아예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한 달에 한 번씩은 집에서 일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갖추어져 있기는 하였으나, 과연 모든 사람들이 재택근무를 반기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집에서 일하는 것이 더 효율이 나는 사람도 있거니와, 집에 있으면 좀처럼 일이 되지 않아 회사에 나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처음 재택근무 제도가 도입된 이후로 다들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반드시 재택근무를 쓰던(마치 연차 같은 표현이기는 하나 달리 이야기할 방도가 적었다) 시기가 지나고, 점차 "에이, 딱히 엄청 편한 것도 아닌데 그냥 쓸 수 있으면 쓰고 아님 말지"와 같은 태도로 넘어가던 무렵에, 전 직원 재택근무 시행이라는 파격적 조치는 그렇게 돌연 찾아왔다.
경기도 사람들의 우스갯소리 중 하나로 "서울 사람의 두 시간과 경기도 사람의 두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는 말이 있다. 서울 사람들은 왕복 두 시간이 걸리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을 괴로워하기 일쑤이지만, 경기도 사람은 보통 서울 다녀오는 데 왕복 두 시간은 짧은 수준이라는 사실에 대한 일종의 자조적 표현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작한 재수생 생활부터 시작하여, 지금의 회사에 취직하여 다니기까지 나의 하루의 대부분은 소위 '길거리에 버려지는' 시간이었다. 재수 학원과 그 뒤에 다니게 된 대학교 모두 서울 남부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집에서 출발해 강의실에 들어가 책가방을 내려놓고 한숨을 돌리기까지는 아무리 해도 편도 두 시간은 걸리기 일쑤였다. 본가에서 회사가 있는 곳까지 최단거리로 이어 주는 대중교통이 없었던 탓에 결혼 전에는 회사를 왕복하는 데 다섯 시간은 족히 걸렸고, 결혼해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오고서는 왕복 세 시간이 조금 안 되는 수준으로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서울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 경기도 사람이라면, 이 정도의 이동 시간은 오히려 평범한 수준에 가까웠다. 서울로 이사를 오고 나서 제일 만족한 부분이 '출퇴근 시간이 세 시간으로 줄었다는 점'이라는 말을 하면 주위 동료들은 "얘가 미친 거 아닌가"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곤 하지만, 실상이 그러한 걸 어떡하겠는가.
본격적으로 매일같이 집에서 일하면서 가장 크게 인식하게 된 부분이 바로 출퇴근 시간만큼의 시간이 늘어났다는 점이었다. 내 경우를 예로 들자면 하루에 갑자기 서너 시간의 공짜 시간이 생겨난 듯한 체감이었다. 더 이상 아침에 물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겠는 샤워기로 머리를 감고, 덜 마른 머리로 옷을 입고, 집에서의 식사는 언감생심에 버스에서는 잠들기 바쁜 나날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이렇게나 여유로운 삶을 보장해 줄 줄이야. 아내는 그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평소와 다름없이 출퇴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주부의 자리는 자연스레 나에게 넘어왔다. 집안일을 좋아하는 덕분에 청소나 빨래 같은 기본적인 일들 외에도 점차 다른 부분에 눈이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 그 무렵이었다.
요리가 그렇게 재미있는 줄은 미처 몰랐지. 본가에 살 적에 어머니가 "결혼했는데도 제 밥상 하나 제대로 못 차려 먹으면 내쫓긴다"며 최소한의 기술까지는 가르쳐 주셨던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어떤 때 어떤 양념을 넣고, 불 조절을 어떻게 해야 하고, 칼질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야채 손질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도만 알아도 대부분의 요리를 겁없이 할 수 있는 일종의 자신감이 붙는다. 본가에서 어머니가 해 주시던 음식들을 내 손으로 하나씩 차려서 먹어 보고, 백종원 님의 레시피 영상을 보면서 열심히 공부하던 차에 일종의 기폭제가 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아내가 생일 선물로 받아 온 오븐 토스터기였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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