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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기

[방문/포장기] 서울시 용산구 '카카오봄'

by 집너구리 2022. 6. 7.

주말에 조금 긴 산책을 하는 겸 용산에 좀 다녀오기로 했다. 우리 부부가 참 좋아하는 쇼콜라티에인 '카카오봄'에서 여름 한정 프랄린 세트를 냈는데, 날씨가 더워 택배 판매를 하지 않는다기에 직접 사러 가려는 공산이다. 벌써 몇 년 째 발렌타인 데이 때마다 카카오봄에 신세를 지고 있지만 매장에 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각지역 사거리에서 한강대로를 따라 조금만 더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1번 출구가 보이는 골목 어귀에서 왼쪽으로 꺾어 들어간다. 국방부 부지 근처라 개발이 어려워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이 골목으로 들어서는 순간 경험한 적 없는 1980년대로 돌아가는 기분이 강하게 든다. 건물들은 물론이고 간판까지 오래 된 느낌이 무척 강하다. 도저히 인스타 같은 데에서 인기를 끌 만한 맛집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조용하고 고즈넉한 동네이다. 그렇게 걷다가 나오는 두 번째 골목에서 왼쪽으로 살짝 꺾으면 거기에 카카오봄이 있다.

 

일요일 낮이라 그런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주위에 차도 없고 삼각지역 근처는 사람도 거의 없던데, 다 여기 모여 있었네. 안으로 들어간다.

 

가게 안에는 좌석이 여럿 마련되어 있고, 입구 오른편으로 카운터가 있다. 전시장 안에는 마치 아이스크림 가게마냥 초콜릿과 과자들이 죽 전시되어 있다. 새삼 초콜릿 과자가 이렇게 많았던가, 싶다. 다양한 생김새와 빛깔의 초콜릿들을 둘러보고 있자니 아직 초콜릿을 입에 넣은 것도 아닌데 벌써 기분이 좋아진다.

 

초콜릿과 견과류를 섞은 과자, 쿠키와 퍼지 등이 눈에 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항상 초콜릿 슬래브를 좋아했다.
카카오봄의 주력 상품인 초콜릿 코인과 파베, 그리고 프랄린. 초콜릿 코인은 우유에 녹여 코코아를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초콜릿 세트 진열장. 프랄린 세트뿐만 아니라 파베 세트, 코인 틴 등등 이쪽의 종류도 다양하다.
초콜릿 젤라또도 파는 모양이다. 메뉴에는 물론 커피와 티 종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초콜릿 베이스 음료와 와플이 주를 이룬다.

아내와 같이 왔다면 자리에 앉아서 초콜릿 음료나 젤라또를 시켜 놓고 천천히 음미할 수 있었겠지만, 나는 갈 길이 바쁘니 이미 마음 속으로 정해 둔 것들만 주문하기로 한다. 여름 프랄린 열여덟 구짜리. 평소보다 다소 많은 양이긴 하지만, 집에 처제가 놀러 와 있으니 같이 먹으면 좋을 것 같다는 아내의 제안이 있었다. 자고로 젊은 친구에게 쓸 식사값은 아끼는 게 아니라고 했다. 직원이 정성스레 하나하나 프랄린을 집어서 박스에 넣는 것을 멀거니 보고 있다가, 쇼핑백에 담긴 프랄린 상자를 건네받고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다행이다. 아기자기한 생김새의 초콜릿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나 즐거운데, 맨얼굴로 달콤한 초콜릿 향기를 그대로 얻어맞았다가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으리라.

 

 

집에 와서 초콜릿 상자를 열어 보았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포레스트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단다. 뭐가 나올지 알 수 없지."라는 대사를 하지만, 아쉽게도(?) 카카오봄의 초콜릿 상자에는 늘 무슨 초콜릿이 들어 있는지 친절하게 설명한 종이가 동봉되어 있다. 18구짜리는 처음 사 봤는데, 재미있게도 양쪽 상자의 초콜릿이 선대칭으로 들어 있어서 정말로 뭐가 무슨 색인지는 먹어 봐야 알 수 있게 되었다. 조금 재치 있는 수학 교재라면 '이 중 맛을 보고서 전체 초콜릿의 배치를 추론해 낼 수 있는 최소한의 초콜릿은 몇 개인가?' 같은 문제를 내도 재밌을 것 같다.

 

발렌타인 데이 때 받았던 봄 프랄린 세트는 술이 들어간 초콜릿이 제법 많았는데, 이번에는 술이 들어간 녀석보다는 조금 더 깔끔하고 상큼한 콘셉트의 녀석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는 느낌이다. 일단은 몇 개만 시범삼아 먹어 봤는데, 단짠단짠의 정석인 소금 캬라멜과 깔끔하고 새콤달콤한 패션프루츠 맛이 퍽 괜찮았다. 처제가 놀러 온 덕에 더 오랫동안 초콜릿 맛을 즐길 수 있게 되었으니, 조금씩 먹어 보면서 느긋하게 여름의 초콜릿을 즐길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