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구 서부 찬양론자가 죽지도 않고 또 돌아왔다. 오늘 소개할 곳은 예전에 한번 글을 올린 적이 있던 샤퀴테리아 '써스데이 스터핑'에서 걸어서 4분 거리에 있는 양갱 전문점, '금옥당'이다.
외국 식자재를 사러 갈 때나 써스데이 스터핑의 가공육이 그리워질 때면 늘 찾는 곳이 연희동이다. '카페거리'라는 이명이 붙어 있을 만큼 커피집이나 찻집이 많은 동네인데, 그 중에도 금옥당은 이채를 발한다. 야트막한 단독주택과 밝은 색조의 카페들이 늘어서 있는 가운데 유독 혼자 외장이 적벽돌이기 때문이다. 깨진 곳 하나 없이 무척 가지런하게 쌓아올려진 것을 보자면 최근에 올린 인테리어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정갈한 문 안으로 들어가면 손님들이 앉아서 기다릴 수 있는 구식 스타일의 의자가 눈에 들어오고, 왼쪽으로 돌면 가게 입구가 나온다. 의자 너머로는 유리창이 설치되어 있어서 내부의 부엌이 훤히 들여다보여서, 이른바 오픈 키친을 표방하고 있는 듯하다. 부엌이 무척 넓게 보이기는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의외로 앉을 자리가 제법 된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골동품과 전통 소품으로 정갈하게 장식된 창문 공간과 음료를 진열해 둔 냉장 선반, 그리고 다양한 양갱 종류를 진열해 둔 낮고 넓은 선반이 눈에 들어온다. 고풍스러운 유리병에 담긴 음료는 크게 수정과, 오미자, 쌍화차의 세 종류다. 양갱의 종류는 그보다 더 다양해서, 메뉴판에 올라 있는 것만 열여섯 가지가 된다. 팥 쑤는 솜씨에 퍽 자부심이 있는 모양인지 팥 종류만 세 가지(팥, 통팥, 거피팥)에다가, 녹차 양갱도 교토산과 제주산의 두 가지가 있다. 얼핏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는 양갱인데도 굳이 다르게 만들어 둔 것은, 그만큼 각자의 특성을 잘 살려낼 수 있다는 자신이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선반에 전시되어 있는 양갱 포장이 너무나도 예쁘기 때문에 너나없이 주문하기 전에 양갱 포장지들을 보면서 고르다가, 주문할 때가 되어 카운터로 가면 아까 골라놨던 양갱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당황하는 광경을 자아내곤 한다. 그러나 카운터 옆에 친절하게도 이미 메뉴판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큰 걱정할 필요는 없다. 선물포장을 해서 사가는 사람도 많지만, 몇 개만 내가 먹으려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으리라(이 가게의 포장 박스도 원체 예뻐서 무슨 트로피 보관함 같다). 오늘은 기본에 충실하게 통팥양갱과 백앙금양갱, 제주녹차양갱과 단호박양갱을 주문한다. 단품으로만 구매한다고 하면 종이 봉투에 양갱들을 넣어서 건네 준다. 냉장 보관으로 2주간은 너끈히 가지만, 가는 길이 너무 더우면 주의할 것.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지만, 금옥당의 양갱 포장은 이미 어떤 경지에 오른 듯하다. 우선 종이봉투다. 마치 방금 도장으로 찍어낸 듯한, 그야말로 옛날 감성으로 마크와 주소가 타이프라이터체로 적혀 있는 양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만은 21세기 한국 서울이 아닌 1880년대 외국 어딘가에서 갓 과자를 사들고 나온 듯한 느낌이 절로 든다. 살짝 중심선에서 빗겨나 있는 것마저 '손으로 찍은' 듯한 느낌이 난다. 뭘 좀 아는 양반들이다. 안에 들어 있는 양갱 포장들도, 그저 슈퍼에서 파는 연양갱 정도에 익숙한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아름답다. 동아시아 전통문양을 아르누보 느낌이 나도록 재해석한, 그러면서도 실제 양갱의 맛과 딱 맞는 색상으로 조합하여 디자인된 양갱 포장을 보면 공연히 기분이 좋아지게 마련이다. 아무래도 양갱이란 것의 본질이 화과자라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어딘지 모르게 유카타 무늬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맛이다. 아무리 보기 좋은 떡이라 하더라도 실제로 베어물었을 때 영 맛이 별로면 되려 속았다는 느낌에 감정이 상하게 마련이다. 이것이 또 절묘한데, 양갱 하면 보통 생각나는 '입에 확 퍼지는 들쩍지근한 맛'이라기보다는 은은하면서도 여운이 오래 남는 단맛을 내는 것이다. 생각보다 많이 달지 않으면서도 원재료의 향이 확실하게 살아 있기 때문에, 포장지를 보면서 얻은 이미지가 맛으로까지 고스란히 연결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사용자 경험을 고민하는 IT 업계인으로서도 상당히 인상이 깊은 지점이다. 녹차나 우롱차와 같이 먹으면 가히 천국을 맛볼 수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쯤 되면 매년 여름에 팔고 있는 팥빙수의 맛도 궁금해지는데, 코로나가 끝나기만 해 봐라, 하고 앞을 지나칠 때마다 늘 끙끙거리고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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