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기] 서울시 강남구 '카파노'

청담동에 친구 결혼식이 있어서 오랜만에 나왔다가, 양재꽃시장으로 가려는 길에 제법 괜찮은 수제버거 집이 있다고 하여 잠깐 들르기로 했다. 햄버거를 숨쉬듯 섭취하는 친구가 추천해 준 가게인데, 연 지는 얼마 안 되었는데 벌써 평점이 제법 높다. 강남구 일원동의 '카파노'라는 곳이다.

 

 

지도 앱을 보아하니 강남구 한복판의 주택가여서 백현동 카페거리 같은 곳인가? 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냥 오래 된 강남 주택가 한복판의 상가 건물 지하에 위치한 가게였다. 근처에 주차하기는 마땅한 곳이 없으니, 아예 근방에 있는 영희초등학교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 나아 보였다(실제로 우리도 그렇게 했다). 별다를 것 없는 적벽돌 상가 건물 지하로 내려가니 갑자기 앤티크해 보이는 장식장(?)과 그 옆으로 나 있는 목조 문이 눈에 들어온다. 안으로 들어가면 퍽 모던한 느낌으로 꾸며 놓은 가게가 나타난다. 

 

모던하면서도 아늑한 느낌으로 꾸며 놓은 가게 내부.

 

주문은 키오스크에서 하도록 되어 있다. 마침 젊은 사장님이 내려오셨기에 추천받을 만한 메뉴가 있느냐고 물어봤더니, (물론 다 맛있다는 자부심 넘치는 대답을 전제로 하여) 트러플크레마와 클라시코가 가장 잘 나간다고 말씀하셨다. 일단 트러플크레마 하나를 시키기로 하고, 메뉴를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재미있게도 스칼럽(관자) 버거가 있어 이것을 시키기로 했다. 피지로 다녀온 신혼여행에서 관자를 원없이 먹고 그 맛을 잊지 못하게 된 탓일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감자튀김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한 개만 세트로 시키고, 대신 밀크셰이크를 시키기로 했다.

 

트러플크레마 버거 단품. 

스칼럽 버거 세트. 웨지감자 튀김이 같이 나온다.

 

과연 햄버거를 물처럼 마시는 인간(?)의 추천답게, 정말 맛있는 한 상이었다. 기본적으로 번 자체가 무척 부드럽고 폭신한데, 그 위에 깨는 또 얼마나 많이 붙어 있는지! 거의 깨빵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듯했다. 보통의 수제버거집이라면 핀 같은 것으로 고정되어 나올 만한 덮개빵이 카파노의 버거들에서는 살짝 옆으로 기대어져 나온다. 버거의 내용물을 쌓아올린 방식까지 손님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 것일까? 바로 위층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비첼'도 같이 운영하고 있는 만큼, 레스토랑의 스타일을 수제버거에 적용하고 싶었던 것 같다. 

 

트러플크레마 버거는 한 입 베어물자 마자 다양한 고기와 버섯의 풍미가 마치 터져나오듯 입 안을 가득 채운다. 불고기 맛 비슷한 양념으로 재워진 패티와 두툼한 베이컨, 그리고 이름처럼 트러플 향이 나는 크림이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한 입을 느낄 수 있다. 부드러운 빵까지 더해지니 금상첨화다. 

 

스칼럽 버거는 완전히 다른 방향성으로 맛있다. 상큼한 느낌의 야채들과 토마토 소스, 깔끔한 느낌의 패티에 더해서 탐스러운 관자가 네 조각 얹혀 있다. 관자가 과연 햄버거와 어울릴까 싶었는데, 놀랍게도 탱글한 식감과 상큼한 소스의 궁합이 훌륭했다. 깔끔한 느낌이 드는 한 입이다. 이쯤 되면 다른 버거들도 궁금해지지만, 우리는 두 명이고 위장의 크기는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 다소 아쉽다.

 

세트로 제공되는 웨지 감자 또한 절품이다. 노릇노릇하게 튀겨졌음에도 부드럽고, 무엇보다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간 덕분에 기분 좋게 집어먹을 수 있었다. 달콤한 밀크 쉐이크와 같이 먹으면 훌륭하다. 사장님 말로는 요새 감자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서 수입산 감자를 써 보기도 하고 국산 감자를 써 보기도 한다는데, 이 날 우리 부부가 먹은 감자는 국산 감자였다고 한다. 국산 감자는 튀김에 적합하지 않다고 들었는데 이 정도면 제법 훌륭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사람이 많지 않아서 사장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할 수 있었는데, 원래 조경 일을 하시던 분이어서 인테리어에도 관심이 많아 이 식당의 인테리어도 모두 스스로 하셨다고 한다. 버거의 재료 또한 같이 운영하는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같은 재료를 써서 이탈리아풍으로 만드셨다고. 요즘같이 자영업자들 일하기 쉽지 않은 때에도 여러모로 노력하며 길을 개척하고 있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다행히도 배달 주문은 계속 들어오고 있단다. 강남에 갈 때면 한번씩 들러서 먹고 싶어질 만큼 훌륭한 맛을 자랑하는 이 가게가 부디 지금 같은 세월에서도 오래오래 계속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