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문기

[방문기] 서울시 마포구 '알맹상점'

by 집너구리 2021. 11. 1.

'알맹상점'은 사실 방문기를 쓰기에는 다소 새삼스러운 측면이 있다. 합정역에 갈 때면 거의 매번 들르는 가게이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방문'이라기보다는 '또 왔소'에 가까운 셈이다.

 

 

이곳이 무엇인고 하면, '제로웨이스트 가게'이다.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만든, 일종의 사회적 기업인 셈이다. 친환경(혹은 그에 가까운 형태)적인 상품들을 포장 없이 판매하고, 물물교환의 장을 펼쳐 주며, 헛되이 버려질 수 있는 물건들을 모아 새롭게 탄생시키기 위한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제일 먼저 손님을 맞이하는 것은 물물교환 코너이다. 집에서 쓰이지 않는 물건들을 갖다 놓고, 또 내게 필요한 물건들을 가져다 쓸 수 있는 곳이다. 예전에 적었던 콜드브루 메이커를 얻어온 이야기에서, 콜드브루 메이커를 주워온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집안 정리를 하다가 뭔가 내다 팔기는 애매한데 아직 멀쩡한 물건들이 있으면 이곳에 갖다 두면 누군가는 꼭 가져가게 되어 있다.

 

 

방문자 등록을 하고 손소독을 한 뒤 안으로 들어가면, 충실하게 물품들이 갖춰져 있는 선반을 볼 수 있게 된다. 세상에 이렇게 친환경 제품이 많았던가? 싶을 정도일 것이다. 차나 커피, 올리브유 등은 모두 유기농법을 활용하여 재배됐거나 공정무역을 통해서 들어온 제품들이다. 물론 '제로웨이스트 상점'이므로, 이런 먹을 것들을 사 가기 위해서는 담아갈 용기를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올리브유나 발사믹 식초는 정말 사악한 가격을 자랑하지만, 차나 커피나 향신료 등은 (희소성을 감안해도) 나쁘지 않은 가격이어서 가끔씩 사 가곤 한다. 

 

카운터 뒤쪽에도 자잘하게 뭔가 많이 팔고 있다.

생활용품도 다수 팔고 있다. 거의 모든 생활용품의 재료가 식물성이거나 쇠 종류인 것이 특징이다. 말하자면 플라스틱은 정말 거의 쓰이지 않고 있는 셈이다. 나는 환경에 가장 좋은 형태의 소비는 '필요최소한의 소비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여기서 생필품을 많이 사 보지는 못 했다. 집에 엔간한 건 다 있거든. 그래도 꾸준히 사들이는 것이 있는데, 바로 수세미다. 수세미 열매를 말려 만든 전통적 방식의 수세미나, 마 줄로 짜서 만든 수세미 같은 것들은 생각보다 까끌까끌하니 세정도 잘 되고 수명도 긴 편이어서 쓸 만하다.

 

환경오염에 신경을 많이 쓰는 이들을 위한 가게인 만큼, 친환경적으로 제조한 비누나 비건 비누, 세제들도 판다. 늘 볼 때마다 느끼지만, 친환경 비누와 비건 비누의 종류가 이렇게 많나 싶을 정도다. 친환경 비누라 하면 어쩐지 폐식용유로 제조한 비누가 떠오르곤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폐식용유 비누를 세안에 쓸 수 있을까 싶게 마련이다. 알맹상점에 납품되는 세안/세신용 비누의 경우에는 다른 재료를 쓰는 모양인데(확실하지는 않다), 다만 재료를 신경써서 만드는 탓인지 우리가 흔히 아는 비눗값보다는 대단히 비싼 편이다. 액상 세제나 화장품은 큰 드럼통에 담아 두고 파는데, 집에서 용기를 가져다가 드럼통으로부터 덜어서 무게를 재어 계산하는 식이다. 이것만큼은 한 번도 사 본 적이 없어서 무어라 말하기는 애매하지만, 매번 쓰레기로 버려지는 세제통이나 샴푸통을 보며 느꼈던 일말의 가책을 보상받기에는 충분한 판매 방식이 아닌가 싶었다. 집에 있는 주방세제를 다 쓰면 한 번쯤은 사다가 써 볼까도 싶고.

 

 

기실 알맹상점에 자주 들르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기는 하다. 이곳은 분리수거하기 다소 애매한 것들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재활용 스테이션'을 운영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받는 재활용 쓰레기라는 것이 그야말로 '애매한 친구들'이다.

 

1.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의 소형 플라스틱들 : 너무 작은 플라스틱 조각은 분리수거 분별 과정에서 불순물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아, 제대로 재활용 처리되지 못한다. 이런 플라스틱을 주로 재활용하는 '플라스틱방앗간'에 보내져 소형 액세서리나 생활용품을 만드는 데 쓰인다.

2. 우유팩이나 테트라팩 : 보통 '종이'로 분리수거하고는 하나, 내부에 코팅이 되어 있으므로 일반적인 종이 재활용 과정에서는 버려지곤 한다. 코팅을 분리하고 남은 종이는 최상급 펄프가 되는데, 이것을 활용하여 화장지 등을 만든다.

3. 다 마시고 말려 둔 커피 가루 : 의외로 커피 가루는 일반쓰레기로 버려지게 되는데, 쓰임새가 많다. 알맹상점에서는 커피가루를 압축해서 만든 화분을 팔고 있다(다만 집 안에서만 가드닝을 하는 사람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4. 브리타 정수기 필터 : 최근 재활용 코스를 시작하기는 했지만, 개인이 재활용 코스를 이용하게 되면 특정 개수 이상을 모아서 택배로 발송해야 한다. 대신 브리타 필터를 이곳에 가져다 주면 한번에 모아 브리타 본사의 재활용 담당부서로 보내게 된다.

(번외) 양파망, 나무젓가락 등도 때로 받기는 하는데, 상황에 따라 변동이 있을 수 있다.

 

알맹상점에 이렇게 모은 쓰레기들을 가져다 주면 무게를 재어 100그램당 스탬프 도장을 하나씩 받을 수 있다. 스탬프의 모든 칸을 채우면 작은 잡화들 중 하나를 받아갈 수 있는데, 요즘은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든 고리나 대나무 칫솔 등을 나눠 주고 있는 듯하다. 이것도 날짜가 달라지면 지급품(?)이 매번 달라지곤 한다.

 

 

알맹상점은 원래는 우리 부부만 아는 작은 가게였다고 생각했는데, 점차 세를 불리더니 이곳저곳에서 인터뷰도 하고, 심지어는 서울역 옥상에 분점 '알맹상점 리스테이션'이라는 분점까지 열 만큼 기세를 올리고 있다.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제로웨이스트의 가치가 알려질 수 있다는 관점에서는 상당히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부디 굽힘 없이 기조를 잘 유지하면서 계속 잘 운영해 주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