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74 내가 나라奈良를 사랑하게 된 까닭 * 이 글은 2017년 어느 날 다른 플랫폼에 적어 올렸던 글을 가져온 것입니다. 나라는 생각보다 퍽 작은 동네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오사카 내지는 교토 여행을 오면서, 중간에 사슴에게 삥을 뜯기러(?) 혹은 유명하다는 도다이지 대불전을 보러 잠깐 들렀다 가는 동네다. 간무 천황의 헤이안 천도 전까지 꽤 오랫동안 일본의 수도로 화려한 모습을 자랑했을 도시는, 지금은 현청부터 주요 관광지까지 모두 그리 길지 않은 중심가에 몰려 있는 지방 중소도시로 명맥을 근근이 이어가고 있다. 정규직 전환이 결정되고, 정식 입사일까지 시간이 남아 간사이권으로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한창 벚꽃 필 시즌이었던지라, 교토에서는 도저히 숙소를 잡을 수가 없었다(사실 교토는 언제든지 숙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동네다). .. 2021. 3. 21. 도쿄 덕질투어: 밀리시타 2주년 즐기기_ 2019년 7월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감사하고 즐거운 일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 중에도 특히 감사한 것들 중 하나는 아내와 내가 둘 다 오타쿠라는 사실이다. 둘 다 만화와 애니메이션, 게임을 좋아하다 보니 공통의 화제나 관심사도 많았고, 때로는 같은 게임을 동시에 즐기거나 같은 작품을 함께 보면서 감상을 이야기하며 불타오르는 경우도 많다. 그 중 대표적인 하나가 지금 둘이 같이 즐기고 있는 스마트폰 게임 '아이돌 마스터 밀리언 라이브 시어터 데이즈(줄여서 '밀리시타')'이다. '밀리시타'는 52명의 아이돌을 리듬게임 등을 통해 육성하는 모바일 게임으로, 본래 카드수집형 모바일 게임인 '아이돌 마스터 밀리언 라이브!'로 처음 런칭된 IP를 리듬게임의 형태로 바꾸어 운영되고 있다. 2020년으로 15주.. 2021. 3. 14. 자카르타 돌아다니기, 2018년 10월 생각난 김에 이제까지 다녔던 도시 중 가장 흥미로웠던 곳인 자카르타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누구나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 봤을 자카르타는 인도네시아의 수도이다. 인도네시아는 수많은 섬들로 이루어진 지구상 최대의 섬나라인데, 자카르타가 위치한 자와 섬은 세계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섬이기도 하다. 이렇게 커다란 섬나라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관광으로 자카르타를 찾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인도네시아에 관광을 간다고 하면 보통 나라 이름보다 더 많이 알려진 발리 섬을 찾거나, 배낭여행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 신선한 여행지를 찾아 들어오곤 한다는 욕야카르타 쪽으로 가는 경우가 많지, 출장이 아닌 다음에야 오로지 여행 목적으로 자카르타를 찾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실제로 내가 출장으로 자카.. 2021. 3. 14. 대만유람기 2019 (10) : [3일차] 압도적인 국립고궁박물원과 의문의 밤산책, 그리고 훌륭했던 발 마사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대만유람기를 적기 시작한 이후로 벌써 열 번째 글이다. 글은 열 개나 쌓였는데 아직도 사흘차이고, 심지어 아직 타이베이 근교에서 벗어나지도 못했다. 앞으로도 두어 개의 글을 더 쓸 때까지는 타이베이 근교에서 계속 체류할 예정이다. 그래도 글을 쓰면서 새록새록 여행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만큼은 반가운 일이다. 여권에 출입국 도장을 찍어 본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도대체 이놈의 역병은 언제쯤 가라앉는단 말인가. 하루빨리 모든 것이 예전으로 돌아가 이번에는 대만 동부 유람을 가 볼 수 있게 된다면 소원이 없겠다. 국립고궁박물원国立故宮博物院, 찬란한 중화문화의 진수 드디어 벼르고 별렀던 그곳, 국립고궁박물원으로 향한다. 우육탕면도 배부르게 먹었겠다, 발걸음도 가볍게 둥먼東門 역에서 다시 .. 2021. 3. 7. 대만유람기 2019 (9) : [3일차] 땡볕이 내리쬐는 낮 타이베이 시내 관광 셋째 날이 밝았다. 어제와 다름없이 아침을 먹으러 갔다. 오늘의 아침은 대만식 오믈렛과 베지 버거. 우리가 묵었던 게스트하우스는 이렇게 중정을 가운데 두고 여러 개의 건물에 걸쳐 둘러싸여 있는 형태이다. 왼쪽 유리문을 지나면 바로 우리 부부가 썼던 방이 있다. 이 사진은 공동샤워실 옆에서 찍었는데, 이 책상에 사람들이 간간이 앉아서 자기네들끼리 떠들곤 했다. 셋째 날인 이날은 멀리까지 관광을 하러 나가지는 않기로 했다. 아내는 몰라도 나는 대만이 처음인 만큼, 적어도 타이베이에 오면 누구든지 들른다는 곳들은 한번씩 가 보고 싶었고, 아내도 내 의견을 존중해 주었기에 이루어진 일정이었다. 대신 국립고궁박물원을 일정에 넣은 만큼, 오전에는 일정을 최소화하고 오후 나절은 통으로 박물원에 투자하기로 했다. 중화.. 2021. 2. 28. 대만유람기 2019 (8) : [2일차] 복닥복닥한 스펀과 등불이 아름다운 지우펀, 그리고 건조기지옥 스펀十分, 하늘을 나는 천등만으로는 묘사가 부족한 마을 흔히 스펀이라고 하면 이른바 '예스진지' 투어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게 마련이다. 예류지질공원, 스펀, 진과스, 지우펀의 네 지역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이 네 곳은 대중교통으로 찾아가기에는 워낙에 열악한 곳에 위치해 있다 보니 택시 투어 등으로 다녀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부부의 이번 신베이 투어의 주 목적은 앞에서 이야기했던 허우퉁이었기 때문에, 허우퉁에서 기차로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 스펀과 지우펀만 다녀오는 것으로 하기로 했다. 허우퉁 역에서 기차를 타고 20분 정도를 가면 스펀 역이다. 그렇게 멀지는 않은 거리인데 이렇게 오래 걸리는 이유는, 기차가 보통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는데다가 철로가 깎아지른 낭떠러지 위를 아슬아슬하게 지.. 2021. 2. 7. 대만유람기 2019 (7) : [2일차] 국부사적관, 타이베이 역에서 고양이마을 허우퉁까지 타이베이국부사적관臺北市國父史蹟館, 쑨원의 자취를 기리는 공원 까오지에서 배불리 밥을 먹고 느긋하게 걸어 타이베이 역으로 향했다. 허우퉁으로 가는 일반열차 시간까지는 아직 조금 여유가 있어서, 그 동안에 무얼 할까 고민하던 차에 타이베이 역 바로 앞의 교차로 근방에 작은 공원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40분 정도 시간이 비니, 여기서 20분 정도 거닐면서 시간을 때우다 출발해도 기차 시간에는 맞겠다 싶었다. 로마자 표기만 봐서는 대체 무슨 박사를 기념하는 공원인가 싶겠으나, Sun Yat-sen이란 신해혁명의 주도자이자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모두에서 국부로 추앙받는 쑨원孫文 박사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Yat-sen은 그의 자 '일선逸仙'을 광둥어식으로 읽은 것이다. 어쩐지 공원 문 앞에 웬 낯이 익은 콧.. 2020. 4. 21. 대만유람기 2019 (6) : [2일차] 조식, 장안천주당, 까오지 동파육과 소롱포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조식 어제 밤 늦게까지 뽈뽈거리고 돌아다닌 탓인지, 이튿날 아침에는 제법 느지막하게 일어났다. 아내가 잠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조금 일찍 침대에서 기어나와 대충 씻고 조식을 주문하러 1층으로 내려왔다. 무료로 주문할 수 있는 아침식사 메뉴는 주로 대만식 오믈렛과 토스트 종류였다. 대만식 오믈렛이라는 게 별 게 아니고, 계란과 야채를 섞어서 스크램블드 에그 비슷하게 만든 다음 그걸 또띠야로 싼 느낌의 요리였다. 오믈렛 하나 만들 때에도 충실하게 대만식 향신료를 뿌려 놓아서, 생긴 건 서양식 요리인데 대만의 향이 아낌없이 나는 이채로운 아침 식사였다. 토스트는 뭐, 평범하다면 평범한 프렌치 토스트였는데, 퍽 맛이 괜찮았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제법 수준이 높은 요리들이어서, .. 2019. 11. 9. 대만유람기 2019 (5) : [1일차] 시먼딩 미식탐방, 천문과학관 달구경과 스린 야시장 시먼딩의 길거리 음식 시먼딩西門町으로 나왔다. 파란색 반난선板南線을 타고 타이베이 기차역에서 한 정거장이다. 시먼딩은 타이베이 최대의 번화가로, 밤 늦게까지 사람들이 버글버글하다. 시먼역 출구로 나오면 무슨 명동 롯데백화점 사거리 내지는 시부야 스크램블을 방불케 하는 불야성이 펼쳐진다. 철도패스 수속을 마치자마자 이쪽으로 나온 것은 여기에 맛있는 길거리 음식이 가득하다는 것을 사전에 찾아 두었기 때문이다. 금강산도 식후경, 타이베이도 어쨌든 식후경 아니겠는가. 제일 먼저 간 곳은 '아종면선阿宗麵線'이라는 곱창국수 전문점이었다. 곱창이 들어간 국수라면 작년 6월에 오사카 도톤보리에서 먹었던 카스우동 이래로 처음이다. 곱창의 기름진 맛을 퍽 좋아하기 때문에, 저으기 설레었다. 가게 앞은 제 차례를 기다리며 .. 2019. 11. 8. 대만유람기 2019 (4) : [1일차] 숙소에 짐 풀고 철도 패스 구하기 타이베이에서 묵을 숙소로 이번 여행에서 난생 처음으로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게 되었다. 아내는 친구들과 여행을 다닐 때 가끔씩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곤 했었다. 반면 나는 중증도의 토요코인 죽돌이라 일본만 가면(사실 부산 갈 때도) 거의 토요코인을 썼고, 취직 후 일본 외의 나라에 갈 때에도 호텔 아니면 리조트에만 묵었기 때문에 사실 좀 걱정이 되었다. 경험도 없는 주제에 쓸데없이 겁만 많아서, '게스트하우스는 남이랑 같은 방에서 자야 하고 외지 사람들이랑 열심히 놀아야 하는 곳'이라는 대체 어디서 기어나왔는지 모를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던 탓이다. 반면 토요코인은 마! 어디를 가든 질이 일정하고! 값도 적절하고 조식도 주고! 을매나 좋노! 으이! 이러던 촌놈이 토요코인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대.. 2019. 11. 6. 대만유람기 2019 (3) : [1일차] 쑹산공항에서 환전/유심구매 후 시내로 쑹산공항은 여러모로 김포공항이랑 닮았다. 일본깨나 다녀본 분들이라면 하네다 공항이랑도 닮았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시내에 딱 달라붙어 있어 접근성이 좋고, 지은 지 좀 되었는데 확장을 못 해서 어딘지 좀 비좁아 보이는 느낌까지도 세 공항은 판박이다. 일본이라면 들어가면서 심사관이랑 한두 마디 주고받기라도 할 수 있을 텐데, 대만이야 뭐 대만국어(표준중국어)건 대만민남어건 원주민 말이건 전혀 할 줄 모르니 그냥 들어가서 여권 들이밀고 말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사실 여행하면서 제일 갑갑하고도 은근히 긴장되는 시간이 이 때다. 딱히 내가 뭐 잘못한 건 없지만, 외국에 들어간다는 건 늘 긴장을 동반하는 경험인 모양이다. 입국장 카운터로 나가서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은행을 찾는 것이다. 대만의 화폐인 .. 2019. 11. 5. 대만유람기 2019 (2) : 대만? 중화민국? 먼저 용어 정리를 좀 할 필요가 있겠다. '대만臺灣, Taiwan'이란 사실 나라 이름이 아니고 지역 이름에 가깝다. 대만 섬을 현재 실질적으로 영유하고 있는 나라의 이름은 '중화민국中華民國'이다. 아마도 90년대 초반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은 세계지도에서 '자유중국'이라는 이름이 쓰인 쬐끄만 섬을 본 기억이 있으리라. 뚜껑을 열어 보자면 그 당시의 '자유중국'도 딱히 '자유'롭지는 않은 나라였지만, 어쨌든 요즈음은 '자유중국'이라는 이름 자체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힌 지 오래인 듯하다. 중화민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 된 민주공화국이다. 1947년 이전까지만 해도 중화민국은 지금의 중국을 지배하고 있었으나, 국공내전에서 국민정부가 중국공산당에게 패배한 이후 대만으로 옮겨 오면서 지금처럼 대만 섬과 부속 .. 2019. 10. 20. 이전 1 ··· 3 4 5 6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