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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기

[방문기] 경기도 안성시 '더 정감'

by 집너구리 2022. 3. 13.

 

 

안성에 가끔씩 가곤 한다. 할머니와 큰이모가 잠들어 계신 곳이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는 거의 무조건 온 가족이 다 같이 찾아뵙고는 했는데, 지금은 상황의 여의치 않다 보니 때로 혼자 가곤 한다. 주말에는 차가 영 막히다 보니 일부러 휴가를 내는 것이 오히려 속이 편하다. 낮시간쯤 해서 도착한 뒤, 한동안 할머니와 이모 앞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슬슬 다음 계획한 곳으로 가기 위해 자리를 뜬다.

 

식사할 곳이 마땅치 않다. 안성을 자주 찾는 다른 어른들이야 어디를 가면 맛있는 데가 있는지 잘 알고 있으시겠지만, 나는 아직 짬밥이 부족하다. 코로나가 워낙에 기승을 부리는 마당에, 아무리 사람이 별로 없는 한적한 저수지변이라지만은 무작정 식당에 들어가 마스크를 벗고 식사를 하기도 저어된다. 이럴 때 마음 둘 곳은 역시 자주 찾는 단골집이다.

'더 정감'은 미산저수지 호반에 붙어 있다. 바로 옆에 있는 '호수정감'이라는 식당과 운영주체가 같은 듯하다. 제법 천고가 되는 한옥을 리모델링해서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덕분에 가게 구조가 좀 독특하다.

 

미세먼지가 너무 많아 사진이 영 흐릿하게 나와 다소 아쉽다. 미산저수지의 모습과 고즈넉한 한옥 카페의 외양이 잘 어울린다. 나무등걸로 만들어 놓은 간이 의자와 파이어피트에서 늘 탁탁 소리를 내며 타고 있는 장작 연기가 풍취를 더한다. 고개를 돌려 보면 바깥에 앉아서 경치를 즐길 수 있는 데크도 마련되어 있다. 사실 사진을 찍지는 않았지만, 저수지변으로 조금 더 걸어 내려가면 아예 저수지 바로 앞에 앉을 수 있는 벤치와 흔들그네까지 있다. 아직 날씨가 완전히 풀리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호반까지 내려가 있는 사람은 없었다.

 

식당 부지 안쪽으로 더 들어가야 있다 보니 영 찾기가 쉽지 않지만, '더 정감'을 찾게 되는 이유들 중의 하나는 이곳의 커피 내리는 솜씨에 있다. 기본적으로 맛있는 원두를 쓰는 것이 틀림없다. 일 년에 서너 번 가면 많이 가는 곳이다 보니 직원이 바뀌어 있는 경우도 종종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기복 없는 퀄리티의 커피를 늘 맛볼 수 있는 것은 애당초 직원을 뽑을 때 신경을 많이 쓴다는 방증일 수도 있고, 좋은 재료를 올바르게 쓰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맹세하건대 광고글이 아니다). 고소하고 묵직한 느낌을 주는 원두로 내린 에스프레소에 빵실하게 올라간 우유 거품. 카페라테야말로 이 가게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다. 아 물론, 이것저것 마셔 본 바로는 다른 음료도 다들 제법 괜찮다.

 

다만 여기서 식사를 위한 빵을 사는 건 처음이다. 크로와상과 팽오쇼콜라, 애플파이와 크림치즈 마늘빵이 있다. 차에서 커피와 함께 먹을 텐데, 빌린 차니 가루가 떨어지는 것은 곤란하여 크로와상은 제외. 기이하게도 이 날따라 초콜릿이 안 땡겨 팽오쇼콜라도 제외. 하나만 사먹기는 다소 모자를 듯하여 애플파이와 크림치즈 마늘빵을 한 개씩 고른다. 점원이 커피를 내리는 동안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하고는, 빵을 깔끔하게 포장해서 종이봉투에 담은 뒤 커피를 정성스레 내리기 시작한다.

 

나를 위한 커피가 만들어지는 동안, 가게 안을 어슬렁거리며 구경한다. 낮 한 시 반을 갓 맞이한 평일의 오후, 미세먼지로 가득 찼다지만 그래도 볕이 좋은 덕인지 벌써 세 팀이나 가게 안팎에 앉아 있다. 가게의 분위기 때문인지, 다들 잔잔하고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음료를 즐기고 있었다. 

 

정갈하게 꾸며진 가게 내부를 둘러보는 것도 즐거움의 하나다. 화장실로 들어가는 문 바로 위를 로프트 공간으로 만들어 놓은 재치가 돋보인다. 나는 아이가 없지만, 높은 곳을 좋아하는 아이들의 특성상 이런 로프트가 있으면 올라가고 싶어 안달이 날 듯하다. 기둥에 붙어 있는, 마스크를 쓴 모나리자의 인쇄된 그림도 유쾌하다.

 

직원이 나를 부르면서 "커피 뚜껑은 닫아 드릴까요?"라고 묻는다. 별것 아닌 친절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한번쯤 확인해 주는 세심함이 고맙다. 포장한 커피와 빵을 들고 가게 밖으로 나가는데, 늘 가게 앞에서 손님을 맞이하곤 하던 이 집의 마스코트 웰시코기가 가게 옆 비닐하우스 창고 앞에 앉아서 볕을 즐기고 있다. 아는 체를 해도 그저 미소만 지을 뿐 꿈쩍도 하지 않는다.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오는 것을 녀석도 아는 듯하다. 

 

번잡스럽게 먹는다고 사진을 찍지 못했지만, 커피와 빵의 조화는 훌륭했다. 사실 크림치즈 갈릭빵은 생각했던 그대로의 맛이었는데, 애플파이가 생각보다 퍽 훌륭했다. 사과와 시나몬의 적절한 조화에 더불어서 파삭하지만 딱딱하지는 않은 페이스트리 껍질까지, 그냥 먹어도 맛있고 커피와 함께 먹으니 더욱 괜찮았다. 다음에는 다른 빵도 한 번 도전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먹은 것을 정리하고 다시 운전대를 잡는다. 다음에는 오랜만에 아내와도 한 번 같이 올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