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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기

[방문/포장기] 서울시 서대문구 '오향만두'

by 집너구리 2022. 4. 3.

봄기운이 완연한 어느 늦은 오후, 아내와 함께 오랜만에 꽃구경 겸해서 산책을 나섰다. 연희동 골목을 따라 걸으며 만개한 목련과 개나리 구경도 하고, 재미있어 보이는 가게들도 기웃거리고 하다가 문득 한 가게 앞을 지나게 되었다. 연희동에 자주 가는 나도 늘 궁금했지만 아직 한 번도 들러 본 적이 없는 이곳 '오향만두'다.

 

 

연희동에 화교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바로 근방에 연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가 있기도 하고, 전통적으로 부유층들이 많이 거주하는 동네이다 보니 고급 중화요릿집이나 한식집도 예전부터 많이 있었단다. 물론 고급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민들의 배를 기꺼이 채워 줄 수 있는 맛있는 요리를 제공하는 가게들도 늘 존재해 왔다. 그 중의 하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오향만두' 앞에서 가게의 전경을 바라보기만 해도 제법 오랫동안 운영해 왔다는 것쯤은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식도락을 좋아하는 아내가 눈을 반짝인다. 예전에 모 미식가가 쓴 만두에 관한 글에서, 서울 시내에 제대로 된 중국식 만두를 빚는 집은 딱 두 곳뿐인데 그 중 하나가 이 '오향만두'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더욱 그 맛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일단 포장해서 집에 가서 먹어 보기로 한다.

가게의 전경. 좁은 입구로 들어가면 동서로 긴 가겟방이 나타난다.
만두를 빚고 있는 직원들. 만두를 주문하면 그 때부터 찌거나 튀겨서 포장해 준다. 가격도 제법 저렴한 편이다.

나이 지긋한 점원 네다섯 분 정도가 같이 운영하는 가게이다. 잘 보니 대략 2대 정도가 같이 운영하는 가게인 듯, 등이 굽은 할머니 한 분이 연신 만두를 빚고 있고, 아주머니 점원이 주문을 받자 안에 있는 아저씨 직원 둘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가격은 찐만두가 10알에 육천 원, 군만두가 10알에 칠천 원. 면류나 밥류가 없고 오로지 만두와 요리만으로 이루어진 메뉴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군데군데 틀리게 표기된 메뉴의 이름이나 한자로 적혀 있는 금액에서 왠지 모를 신뢰가 느껴진다. 기름으로 만두를 지지는 냄새가 고소하게 풍겨오는 가운데, 직원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서로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으며 잠시 기다린다. 억양은 한국어 사투리처럼 들리는데 어휘는 도저히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꼼꼼하게 포장된 만두를 들고 길을 나선다. 홍대를 잠시 들렀다가 집에 오느라고 만두가 다소 식기는 했는데, 그래도 아직 '아, 차갑다' 싶을 만큼 팍 식지는 않았다. 군만두가 다소 눅눅해진 것이 제일 안타깝다. 바로 튀겼을 때 먹었으면 진짜 맛있었을 텐데. 며칠 전에 먹다 남은 마라샹궈까지 꺼내다가 식사를 시작한다.

 

촉촉하고 때글때글한 찐만두와 고소하고 묵직한 느낌의 군만두. 둘 중에는 절대 못 고르겠다.

 

나는 일단 군만두. 바로 튀긴 것을 먹었다면 훨씬 더 고소하고 파삭했을 것 같은데 아쉽다. 아쉬운 점이라고 한다면 딱 그 부분뿐이다. 소롱포에서 흔히 기대하는 '터져 나오는 육즙' 같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고기의 풍미가 확 살아나는 밀도 높은 속과 함께 쫄깃한 만두피가 잘 어우러진다. 간장을 살짝 찍어서 먹으면 더욱 풍미가 폭발한다. 만두를 통째로 기름에 튀기는 일반적인 군만두와는 달리, 아래쪽만 노릇하게 구워져서 부드러움과 바삭함의 조화가 훌륭하다. 오히려 일본식 중화요릿집에서 주로 내놓는 야키교자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따지고 보면 이것이야말로 중화식 군만두의 원형이 아닐까.

 

다음으로는 찐만두. 군만두와 기본적으로는 같지만 딱 찌기까지만 한 만두이다. 따라서 본연의 맛이 더욱 잘 드러나는 형태라고 할 수 있겠다. 한 입 베어물면 물만두스러운 축축함이 아닌 '촉촉함'이 여실히 느껴진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만두피가 일반적인 한국식이나 일본식 만두보다 훨씬 두꺼움에도 불구하고 밀가루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밀가루 음식이든 어느 한 순간쯤에 밀가루 비린내가 치고 올라와서 입맛을 버리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만두피가 두꺼운데도 그런 게 없다. '얇은피 만두'가 일종의 정의처럼 여겨지는 요즘 세상에 다소 뒤처져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두꺼운 만두피에서 어떠한 극의를 찾아낸다면 바로 이와 같은 형태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뒷맛이 무척 깔끔하고 입에 남는 텁텁한 맛이 없다. 정신을 놓고 먹게 된다.

 

만두 스무 알은 사실 그리 적은 양은 아니다. 아내도 나도 두세 개쯤은 남겠거니 하고 먹기 시작했는데, 웬걸 한 사람당 열 알씩 싹싹 비우고 심지어는 얼마 남지 않았다지만 한 줌 정도 있던 마라샹궈도 단숨에 사라졌다. 이 동네에 사는 동안 중국식 만두라면 이제 오향만두로 정착하게 될 것 같다. 과연 서울 양대 만둣집이라는 평가가 헛된 것이 아니었다. 보물 상자 같은 연희동 골목길에서 새로운 보석 같은 맛집 하나가 뿅 하고 튀어나왔다. 

 

글 쓰다 보니 만두 땡기네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