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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기

[방문기] 서울시 구로구 'Bep Viet 베트남키친'

by 집너구리 2022. 3. 6.

신도림에 일이 있어 잠깐 나왔다가, 근처에서 밥을 먹고 가기로 했다. 맛있는 식당을 귀신같이 잘 찾아내는 아내가 이번에 발견한 곳은 이곳, 'Bep Viet 베트남키친'. 신도림역 이마트 뒷골목에 있는, 제법 큰 규모의 베트남 음식점이다. 요새는 에지간한 음식은 집에서 해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외식이라고 하면 주로 집에서 만들기 쉽지 않은 베트남이나 태국 등 동남아시아 음식점을 찾게 되는 듯하다.

 

가게 앞에 마침 차를 댈 수 있는 자리가 널널하게 있어서 차를 대고 안으로 들어간다. 노란색과 붉은색 기조로 장식된 겉모습이 제법 요란하다.

 

 

내부 또한 베트남의 풍물을 떠올리게 하는 장식들로 가득하다(다만 식당의 구조 자체는 전형적인 한국식 식당이다). 카운터 너머에서 사장님이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고, 베트남인인 듯한 젊은 직원이 메뉴판을 가져다 주며 친절히 메뉴와 가게 시스템 설명을 해 준다. 메뉴를 골라서 무인주문기에 주문하면 음식을 가져다 주는 식이다. 

 

이 가게에서 주력으로 내세우는 메뉴는 이름도 생소한 '빵깐(Banh Canh)'이라는 음식이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듣도 보도 못한 종류의 음식까지는 아니고, 남부 호찌민 지역의 전통 쌀국수라고 한다. 특이하게도 젓가락으로 건져 먹는 게 아닌, 숟가락으로 국물과 함께 건져 먹는단다. 강원도에 가면 먹을 수 있는 올갱이국수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메뉴판에 따르자면 우리나라 전국에서 이 가게가 처음으로 빵깐의 조리법을 들여와 장사하고 있다고 한다. 빵깐의 면은 쌀가루와 타피오카 전분으로 만드는데, 한국에서는 이런 면을 애초에 팔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매일 사장님이 직접 반죽을 해서 만드신다고. 그렇다면 충분히 기대할 만하다. 

 

책받침 재질의 메뉴판에는 베트남 음식을 자주 먹으러 다니는 사람에게는 익숙한 메뉴도 있지만, 다소 생소한 녀석들도 있다. '그린빈갈릭볶음'이라든가, '코코넛통돼지고기튀김' 같은 것들이다. 이미 빵깐이라는 요리 자체가 워낙 생소한 덕에 도전 정신이 더욱 강렬해진다. 세트메뉴를 보면서 한참을 끙끙거리고 둘이 머리를 맞댄 끝에, 해물빵깐 + 코코넛통돼지고기튀김 + 꽈이 세트 하나를 주문했다. 메뉴에 베트남식 연유커피인 '카페 쓰어 다'도 있어서, 호기심에 한 잔 주문한다.

 

 

매장에 근무자라고는 사장님과 베트남인 종업원까지 두 명뿐이었지만, 손님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서빙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제일 먼저 나온 것은 특제 해물 빵깐이다. 일단 레몬을 뿌리고서 한 번 먹어 본 뒤, 베트남 후추와 고춧가루를 넣어서 간을 맞춰 먹으라는 종업원의 친절한 충고. 중국 조식 하면 생각나는 튀긴 빵 '유조'를 닮은 베트남식 튀긴빵 '꽈이'가 같이 나오는데, 먼저 꽈이를 국물에 찍어서 먹은 뒤 빵깐을 먹는 것이 좋다는 추천을 받았다.

그 말대로 먼저 국물을 한 번 마셔 본다. 무엇으로 국물을 우렸는지 모르겠으나, 퍽 깊고 우아한 맛이 난다. 베트남식 해물국수의 특색 중 하나로 겉을 그을리듯 구운 해물을 사용한다는 점이 있는데, 그 덕에 국물에서 살짝 불맛이 나면서 무척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꽈이를 찍어서 먹어 보니 쫄깃한 빵의 질감과 묵직한 국물의 향이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첫 입부터 제법이다. 다음은 본격적으로 국물과 함께 국수 면발을 건져서 먹어 본다. 똑똑 끊기는 형태의 면은 아니고, 기본적으로 면 자체가 짧다락한 편에 가깝다. 쌀가루와 전분으로 만든 면이다 보니 쫄깃쫄깃 씹는 맛이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국수의 질감이라기보다는 아주아주 가늘게 뽑아낸 가래떡과 같은 식감이다. 깊이 있는 국물과 함께 먹는 쫄깃하고 짧은 면발.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조합이지만 마치 오래 전부터 그 맛을 알았던 듯 너무나도 훌륭하고 맛있다. 점원의 말대로 후추와 고춧가루를 쳐서 먹어 보니, 칼칼함이 더해져 또 다른 맛이 난다. 일반적인 한국인에게는 이게 조금 더 입에 맞을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 부부는 로컬의 맛을 더 지향하기 때문에, 넣어도 맛있고 넣지 않아도 맛있다. 아, 주문을 할 때 직원이 '향신료는 어떻게 하시겠어요?'라고 꼭 물어보는데, 고수를 좋아하느냐는 뉘앙스의 질문이다. 나는 고수를 없어서 못 먹지만 아내는 잘 못 먹기에 요리에 넣지 말고 따로 담아서 달라고 하였다.

 

(좌) 해물 빵깐, (우) 꽈이

완전히 정신을 놓고 먹고 있는데, 코코넛 통돼지고기튀김이 나왔다. 얼핏 치즈돈까스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위에 하얗게 뿌려진 것이 모두 코코넛가루임은 물론이요, 돼지고기튀김 반죽도 코코넛가루로 만든다고 한다. 곁들여 나오는 것은 베트남고추가 잔뜩 들어간 특제 소스와 잘게 썬 파, 레몬과 칠리 소스, 그리고 베트남 민트와 이름을 까먹은 또 한 종류의 허브가 같이 나온다. 역시나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음식인데, 더욱이나 민트와 함께 먹으라니 도대체 무슨 조합인가 싶다. 그런데 바삭쫀득한 튀김과 상큼한 향의 민트가 웬걸, 의외로 잘 어울린다. 고추씨가 동동 뜬 특제 소스는 나처럼 매운 것을 못 먹는 사람에게는 퍽 어려울 수 있으니 칠리소스를 같이 먹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특제 소스가 맛이 없다는 것은 아니고, 아내의 말을 빌리자면 '맛있게 맵다.' 빵깐과도 정말 잘 어울리는 마성의 음식이다. 운전하는 것만 아니라면 맥주 한 잔 시켜서 같이 먹으면 딱일 텐데.

 

엄청 푸짐하게 나오는 코코넛 통돼지고기튀김. 민트와 허브도 같이 먹으면 맛있다.

종업원의 배려가 두드러지는 지점 중 하나. 커피를 언제쯤 가져다 주려나 했더니, 식사를 어느 정도 진행했을 무렵 잔과 드리퍼를 가져다가 우리가 보는 앞에서 바로 물을 붓고 내려 주었다. 베트남 특유의 드리퍼인 '커피 핀'에 커피를 담고 누름판으로 누른 뒤 물을 붓는다. 퍽 진하게 우려진 이 커피는 연유가 담긴 잔에 붓고 저어서 마시면 된다. 마치 더위사냥을 녹여 먹는 것 같은 진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맛이 일품이다. 재미있게도 연유 커피를 달달 젓고 있자니, 종업원이 한 번 더 다가와서 이미 다 내린 커피 핀에 물을 한 번 더 부어 준다. 이렇게 마시면 아메리카노 비슷한 느낌이 난다나. 연유커피를 다 마신 뒤 한번 맛을 봤더니,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아메리카노라기보단 베트남 커피 특유의 달큰한 향이 우러나오는 커피향 찻물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이건 이거대로 괜찮다. 커피를 전혀 마시지 못하지만 늘 커피 맛을 궁금해하는 아내에게 한 입 권했더니, 이 정도면 자기는 조금씩 먹을 수 있겠단다. 여러모로 흥미로운 경험이다.

 

투명한 커피잔 위에 핀을 올려놓고 커피를 내린다. 어느 정도 차면 바로 연유에 붓고 젓는다. 커피차 비슷한 두 번째 커피도 나름대로 괜찮다.

휴일 점심인데도 손님이 별로 없는 것이 오히려 의아할 만큼 훌륭한 식사 한 끼였다. 신도림이 집에서 다소 멀다는 것이 이다지도 안타깝다. 요 근처에 올 때면 꼭 한 번쯤은 포장해서 집에 가져가 먹고 싶은 맛이다. 입소문을 어떻게 하면 낼 수 있을지 고민이다. 훌륭한 음식을 만드는 가게이니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