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재미있는 요리를 해 먹는 것 또한 나의 취미 중 하나다. 기실 해외여행이 막히고 나서부터 생긴 취미나 다름없다. 해외에 나가서 먹을 때 더욱 맛있는 요리들을 집에서 재현해 볼 때의 쾌감은 퍽 중독될 만한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 본 요리들 중에는 아무래도 손이 너무 많이 가는 나머지 집에서 두 번 이상 해 먹을 만한 정도는 아닌 녀석들도 있거니와, 생각 외로 간단해서 재료만 잘 모이면 집에서 틈날 때마다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녀석들도 있다. 내게는 마라탕이나 마라샹궈 같은 것들이 바로 그러하다. 그냥 재료를 순서대로 넣고 열심히 볶거나 끓이면 뚝딱 완성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마라탕이나 마라샹궈에 들어가는 재료들이 영 마이너해서 구할 곳이 마땅찮다는 점이다. 요즘에야 세상이 좋아져서 마라 소스쯤은 마트에 가면 값싸게 구할 수 있지만, 넓적한 건두부라든가 푸주, 빙탕이라든가 소흥주 같은 매니악한 재료들은 인터넷을 통하지 않고서는 구하기 어려운 것이 실정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인터넷 쇼핑으로부터 나오는 쓰레기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 부류의 인간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근처에서 재료를 조달할 수 있는 곳이 있는지를 찾아보는 것이 버릇이 들었다. 그렇게 발견한 곳들 중 하나가 바로 중국/동남아 식자재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연남동의 '대화마트'이다.
힙스터들의 동네 연남동 거리에서도 특히 많은 이들이 오고가는, 이른바 '딩가 케이크 골목'을 통해서 북쪽으로 쭉 걸어가다 보면 갑작스레 붉은빛 간판과 천막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곳이 대화마트다. 가게 간판에 한자로 '대화大化', 그리고 영어로 씌어 있는 의문의 'MAR'이 눈을 확 잡아끈다. 아마 'MART'를 잘못 쓴 것이리라. 예전에는 '대화'의 한자 표기가 '大華'였던 것 같은데, 간화자 '华'도 아니고 '化'로 표기를 바꾼 이유는 알 수 없다.
이 가게가 각별한 이유는, 정말 별의별 중화요리 관련 식재료들을 다 팔고 있기 때문이다. 가볍게는 건두부포와 푸주에서부터 짜사이, 대만식 소시지, 만두 종류, 라유와 마유, 중국식 당면 등등 정말 없는 게 뭘까 싶다. 조금 매니악한 중화요리 재료를 사려면 아무래도 일반 마트는 기댈 곳이 못 되고, 일반인들은 인터넷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인터넷으로 식자재를 구매하려손 치면, 배송비가 곱절로 드는 것은 예사요 쓸데없이 대량의 재료를 구입해야만 하는 처지에 처하는 경우마저 왕왕 있다. 이렇게 소매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은 세계요리 도전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기회다.
가게를 들어가면 맨 처음 만나는 것이 신선 코너다. 건두부포는 여기에서 사는 것이 늘 가장 싸고 양이 많다. 마트에서 파는 두부면의 굵기는 아무래도 제한이 있지만, 여기서 한 번 건두부포를 사 두면 얼려 두었다가 필요할 때 녹여서 잘라 쓰면 된다. 짜사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여기서 사다가 먹어도 좋다.
신선 코너 옆으로는 냉동 코너가 쭉 이어진다. 여기서 가장 내가 애용하는 것은 냉동 양고기 슬라이스다. 얇게 썬 양고기는 구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요즘에야 대형 마트에도 양고기가 조금씩 들어오고 있다지만, 대부분 가장 수요가 많은 갈비나 기껏해야 목살 덩어리 정도다. 최근에 연희동 '사러가쇼핑' 슈퍼마켓 코너에 다양한 부위의 양고기가 들어오면서부터는 냉동 양고기에 그다지 손이 가지는 않게 되었으나, 그 전만 하더라도 훠궈나 샹궈에 넣을 얇은 양고기를 구하려면 무조건 여기였다. 그 외에도 냉동 완자나 만두류를 덕용으로 포장해서 팔고 있는데, 굳이 여기에서 완자나 만두를 살 것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아직 사 본 적은 없다.
냉동 코너 맞은편에는 중국식 조미료 코너가 있다. 대형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마라탕이나 훠궈, 샤브샤브 소스보다도 훨씬 다양한 종류의 국물요리/볶음요리 소스가 준비되어 있다. 토마토탕 소스는 여기에서나 구할 수 있다. 산초라고도 하는 화자오로 낸 기름인 '마유'나 중국식 고추기름 '라유' 등도 있고, 그 외에도 다양한 소스류나 통조림 등이 있다. 구석에 보면 피단까지 있다. 도대체 없는 게 뭐지? 싶은 생각이 다시 한 번 든다.
가장 독특한 코너는 가게 왼쪽 구석에 조그맣게 자리하고 있는 조리기구와 도교 관련 상품들이다. 물론 그 위에 진열되어 있는 빙탕이라든가 미친 듯한 양을 자랑하는 자스민 티 같은 것도 흥미롭지만, 진짜 중화요릿집에서 쓰는 웍과 훠궈 냄비, 그리고 면 건지개 등은 쉬이 구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중국계들이 도교 의식을 행할 때 쓰는 향과 각종 지전들까지. 이건 정말이지 이런 곳이 아니면 찾아볼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은 차이나타운이 이상하리만치 형성되어 있지 않은 나라라서 세계 어디를 가든 차이나타운 구석에 한 곳쯤은 있는 도교 사원조차 구경하기 어려운데, 도대체 이런 것들은 누가 사가서 어디에서 의식을 치르는 건지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 기회가 된다면 한번 구경해 보고 싶다.
면류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오뚜기에서 납작당면을 본격적으로 출시하기 전에는 중화당면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늘 여기나 일식 식자재 마트에 가서 구매하곤 했다. 건도삭면이나 옥수수 국수, 에그누들 등도 다양하게 팔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서 팔고 있는 대만식 건도삭면을 사다가 우육면 국물에 말아 먹으면 기가 막히다.
다시 한번 코너를 꺾으면 이번에는 중화풍 식재료에 덧붙여 동남아시아 식재료가 등장한다. 물론 한편에는 촌스러운 포장이 특징인 중국산 식자재들(이를테면 감자전분 같은 것)이 도열해 있기는 한데, 이쪽의 식자재들은 아무래도 한국 마트에서도 비슷한 것들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메리트 자체는 높지 않은 편이다. 오히려 동남아 식재료가 훨씬 더 눈길을 잡아끈다. 베트남식 쌀국수 면이나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나시고랭에 늘 곁들여 먹는 의문의 새우칩(압축건조되어 있기 때문에 기름에 튀겨야 우리가 아는 그 알새우칩 모양의 과자가 된다), 피쉬소스나 해선장, 땅콩소스, 스리라차 소스 같은 것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동남아 음식은 소스도 소스지만 무엇보다도 생야채나 생허브 등이 있어야 제 맛이 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아직 도전하기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다. 지금으로서는 늘 구경만 하고 지나가는데, 언젠가는 사다가 멋들어지게 요리해 볼 날도 있겠지.
음료수와 술 코너도 빼놓을 수 없다. 음료수는 작은 냉장고에 빽빽이 진열되어 있는데, 맨 아래층은 맥주다. 우리에게 친숙한 칭다오와 하얼빈 같은 맥주들은 물론, 한국에선 정말 큰 마트나 주류점에 가야만 찾을 수 있는 타이완비주(대만맥주)도 몇 종류가 들어와 있다. 대만 동과차 캔이나 태국식 두유, 심지어는 일본산 녹차 같은 것도 있어서 고르는 재미가 있다. 도수가 높은 술은 냉장고가 아닌 일반 진열대에 전시되어 있다. 고량주나 공보가주 같은 것들은 물론이고, 요리할 때 주로 쓰이는 샤오싱주(소흥주) 같은 것도 생각보다 괜찮은 가격에 구할 수 있다. 예전에 유튜브 '육식맨' 채널에서 육식맨님이 소흥주를 찾아다니느라 온 서울을 이 잡듯이 뒤졌지만 쉽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동파육 편인가에서 한 적이 있었는데, 대화마트를 자주 들락거리는 구독자가 한 명이 없었단 말이야?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 외에 과자 코너도 조그맣게 준비되어 있다. 이쪽은 정말 생판 처음 보는 상품들로 가득하다. 월병 비슷한 녀석들도 있고, 건오징어나 사탕 같은 것도 있는 듯하고. 펑리수나 망고수 같은 대만식 과자들도 진열되어 있다. 한국어로 이름이 적혀 있기는 한데, 아직 시도해 본 것들은 하나도 없다. 나중에 친구들과 과자 맞히기 게임 같은 것을 할 때 활용하면 좋을 듯하다.
삼십 평생을 경기도에서만 살다가 서울로 옮아온 지 어언 삼 년, 경기도에서의 삶과 비교해 지금의 삶이 극적으로 나아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곳들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구하기 어려운 것들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은 서울살이의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고, 서울살이를 쉽게 놓을 수 없는 이유들이 이렇게 하나씩 야금야금 쌓여 가고 있으니 참 얄궂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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