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어 선생님과 미식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는 편이다. 우리 둘 다 먹는 것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다. 주로 서울이나 간사이 지방 근처의 맛집에 대해 정보교환을 하는데, 최근에 선생님이 다른 학생으로부터 소개받았다는 스콘 가게를 추천해 주셨다. 겉은 파삭파삭하면서도 속에 수분이 촉촉하게 남아 있어 무척 맛있다는 전언이었다.
나는 스콘을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라, 빵 가게에 가도 스콘은 거의 사지 않는 주의이다. 그러나 빵과 과자를 무척 좋아하시는 선생님의 추천이라면 한번 속는 셈 치고 가 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그렇게 해서 일산 갔다 오는 길에 잠깐 들러 본 오늘의 목적지는 고양시 덕양구에 위치한 작은 스콘 가게, '엘라스콘'이다.
가게 외관은 이렇게 생겼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인 상가 건물군의 한구석에 조그맣게 자리하고 있다. 내 고향 안산에도 이런 느낌의 상가구획이 있었어서 이상하게도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가게에는 앉아서 스콘을 즐길 만한 안락한 좌석이 있는 것은 아니라서, 주로 포장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듯하다. 단촐하면서도 귀여운 느낌의 외관이 눈길을 끈다.
나무로 된 문을 밀고 들어가기에 앞서, 유리창에 내걸린 스콘 메뉴판을 한번 훑어본다. 매일 나오는 고정메뉴들과 요일별로 나오는 메뉴들을 구분해서 적어 두었다. 요일 메뉴가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밖에 없는 것으로 보아 일요일과 월요일은 휴무인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이렇게 스콘 종류가 다양할 수 있다니. 내가 스콘 레시피 책을 보고 만들어 본 녀석들도 있지만 생판 처음 보는 재료 조합으로 만들어진 스콘들도 눈에 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이렇게 카운터 진열장 안에 스콘들이 진열되어 있다. 가격은 한 개에 4천 원을 넘지 않는다. 스콘 전문점이니까 납득이 가는 가격이기는 하지만, 빵집에서 파는 스콘들과 비교해 봤을 때는 그리 값싼 편은 아니다. 사진을 따로 찍지는 않았지만 카운터 오른쪽 위에 냉장 보관함이 따로 있다. 캐러멜 버터 스콘은 이쪽에 있다. 버터가 올라가 있으니 실온 진열장에 넣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진열장을 들여다보면서 뭘 고를지 고민하는 시간이야말로 스위트 가게가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최고의 사용자경험 중 하나다. 종류가 이것저것 다양하다면 더욱 그러하다. 맛을 어느 정도 아는 종류들을 제외하고 보니 한 네 종류 정도가 남는다. 여기에 가장 기본적인 맛이라 비교의 척도가 될 수 있는 플레인 스콘 하나까지, 총 다섯 개를 골라 온다. 집에 오니 벌써 저녁 시간대여서, 그 다음날부터 두 개씩 골라서 아침 시간에 아내와 같이 먹어 보기로 했다.
1. 첫날 : 캐러멜 버터 스콘, 블루베리잼 크림치즈 스콘
아내의 말에 의하자면, 재료의 이름을 정직하게 적어 놓은 것부터 마음에 든단다. 실제로 그렇다. 가끔씩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가게들의 경우 블루베리잼을 넣은 스콘인데도 당당하게 '블루베리'라고만 적어 놓는 경우가 있는데(여러 번 당했다), '블루베리잼'이라고 명확하게 표기한 것에서부터 믿음이 간다.
캐러멜 소스와 블루베리 잼이 각각 들어 있으니 들척지근하리란 예상이 충분히 가능한데, 의외로 생각보다 달지 않아서 퍽 놀랐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혀 있는 느낌. 겉이 파삭파삭하고 단단하지만, 속에는 충실하게 수분이 남아 있어서 퍽퍽하지 않다. 홍차와 함께 먹으니 무척 잘 어울린다. 스콘에는 보통 클로티드 크림과 잼을 얹어 먹게 마련인데, 기본적으로 잼과 소스가 각각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그렇게까지 할 것은 없다. 캐러멜 버터 스콘의 경우, 위에 얹혀 있는 버터는 무염버터다. 단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겠으나, 전체적인 균형을 생각하면 무염버터인 것이 도리어 신의 한 수라는 느낌이 든다.
2. 이튿날 : 무화과 호두 크럼블 스콘, 얼그레이 스콘
무화과 호두 크럼블에는 건무화과가 들어 있고, 얼그레이 스콘은 스콘 안에도 얼그레이 찻잎이 들어 있지만 겉에도 얼그레이 드리즐이 발라져 있다. 이쪽의 스콘은 아무래도 다소 맛이 강하다는 느낌이다. 무화과 자체가 워낙 단맛이 강한 과일이다 보니, 잘 먹다가 중간에 갑자기 단맛이 팍 하고 터지는 순간들이 있다. 살짝 쌉쓰레한 느낌의 호두와 가뜩이나 바삭한 스콘 위에 한 번 더 얹은 크럼블이 무화과와 무척 잘 어울리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다소 달다는 느낌이다.
얼그레이 스콘을 먹을 때에는 차까지 얼그레이로 준비할 필요까지는 없을 듯하다. 생긴 것부터 충분히 짐작 가능하지만, 얼그레이 향이 제법 강하기 때문이다. 사실 굳이 얼그레이 드리즐까지 얹을 필요까지 있었나 싶기는 하다.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얼그레이 드리즐을 얹으면서 단맛이 내 기준보다 다소 강해졌다는 느낌이다. 물론 어디 다른 빵집이나 스콘 가게에서 먹는 것보다는 훨씬 담백한 편이기는 하지만, 드리즐을 빼고 그냥 얼그레이 찻잎만 스콘에 섞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다. 차를 곁들여 마시려면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같은 무난한 홍차나, 향이 약한 녹차류가 좋을 듯하다.
3. 셋째날 : 플레인 스콘
내가 예전에 구워 놨던 플레인 스콘과 같이 데워서 비교해 보기로 했다. 하필이면 내 스콘이 살짝 짭짤하게 구워진 녀석이었던 탓인가 싶기는 하지만, 오히려 엘라스콘의 플레인 스콘이 더 담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파는 스콘이 이렇게 집에서 만든 것처럼 담백하고 맛있지? 다른 맛의 스콘들도 물론 모두 맛있지만, 나는 이 녀석만 잔뜩 사다가 놓고 얼려 둔 뒤 먹고 싶을 때마다 데워 먹어도 좋을 것 같다. 맛있는 밀크티와 잼, 클로티드 크림과 함께 먹으니 거지 같은 화요일 아침도 제법 즐겁게 시작할 수 있다.
정말 오랜만에 마음껏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만족스러운 스콘 가게를 찾았다는 느낌이다. 집에서 살짝 먼 게 아쉽기는 하지만, 워낙 요새 일산을 자주 가니까 슥 들렀다 오는 것도 좋겠다. 물론 인터넷 주문도 하니까 그렇게 사다 먹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요일별로 다른 스콘이 나온다니까 느긋한 평일에 들러 진열장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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