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서양인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제대로 된 식사빵집을 찾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알음알음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서양에 살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제대로 된 식사빵'이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느낌의 빵을 이야기하는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체인점들을 포함한 서울의 많은 빵집에서 살 수 있는 식빵이나 바게트 등을 먹어 보면서 어렴풋이 추측하자면 다음과 같다. 달지 않고, 담백하면서, 기본에 충실한, 뭐가 많이 들어가지 않은 느낌의 빵이 '제대로 된 식사빵'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기실 빵을 아침식사로 자주 먹는 사람 입장에서, 그러한 빵을 집 근처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은 일상의 작은 즐거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물론 직접 구워 먹을 수도 있지만 바쁘거나 하면 그것도 여의치 않으니까.
395빵집은 합정역에서 상수역으로 넘어가는 길목, 작은 골목길 어귀에 자리잡고 있다. 시멘트 벽돌로 눌러놓은 컬러콘 몇 개가 눈에 들어오면 잘 찾아온 것이다. 독일식 식사빵을 그렇게 잘 한다고 해서 찾아와 보았는데, 과연 내가 여기에서 본 손님들은 거의 서양 사람들이었다. 나름대로 홍대 근처의 젊은 서양인들에게는 이름이 알려져 있는 곳인 모양이다.
빵 종류는 대략 이 정도이다. 통밀이나 호밀이 주재료인 식사빵들이 많지만, 카이저젬멜 같은 빵은 익숙한 백밀가루로 만든 빵인 듯했다. 성산동에 있는 큰 빵집에서 봤던 식사빵들도 있지만,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빵들도 있다.
내부 인테리어는 이런 느낌이다. 2층도 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포장만 해서 나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2층에는 따로 올라가 보지 않았다. 커피도 팔지만 주스 종류도 제법 들여놓고 팔고 있고, 손님들이 주문을 기다리면서 시간을 때우기에 좋을 읽을거리들도 놓여 있다.
빵 외의 메뉴들은 다음과 같다. 샌드위치가 명물이라는 소문을 익히 들었기 때문에, 아내 것까지 식사용 샌드위치를 두 조각 사기로 한다. 빵 크기들을 보니까 그나마 좀 크기가 작고 부담없어 보이는 크기의 빵이 카이저젬멜이어서 그것으로 두 개를 주문한다. 샌드위치 속을 고를 수 있어서, 햄치즈 하나에 후무스당근 하나로 한다. 햄치즈는 보장받은 맛일 테지만 후무스 당근이라니, 호기심을 자극하는 구석이 있다. 이 외에도 소금버터롤빵 하나와 통호밀빵 한 덩어리를 주문했다. 썰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는데, 집에 돌아와서 열어 보니 통호밀빵은 썰어져 있었다는 점이 살짝 아쉽달까.
집에 와서 아내와 함께 샌드위치를 반씩 잘라서 나눠 먹었다. 후무스당근 샌드위치의 맛이 궁금해서 먼저 한 입 먹었는데, 뭔가 친숙한 야채샐러드의 느낌이 나는 맛이었다. 담백하고 적당히 쫄깃한 빵 사이에 싱싱한 상추와 오이, 얇게 썰린 토마토와 올리브 발사믹의 향기가 살짝 치고 올라오는 후무스 당근 페이스트의 조합이 훌륭했다. 가히 최근에 사 먹었던 샌드위치 중에서 가장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훌륭한 맛을 자랑하는 녀석이라는 느낌이다. 아내도 어지간히 맘에 들었는지, 이런 샌드위치라면 몇 조각을 앉은 자리에서 먹어도 물리지 않겠단다. 나도 적극 동감한다.
햄치즈 샌드위치 또한 물건이다. 담백하고 비린내가 나지 않은 질 좋은 햄과, 깊고 농후하다 못해 버터스러운 향까지 나는 고다 치즈(추정)의 맛이 깔끔한 빵과 무척 잘 어울린다. 전혀 물리지 않을 법한 맛이다. 기본에 충실하다는 것이 이렇게나 멋진 결과물을 불러오는 것이라니. 요즘은 샌드위치가 점점 비싸지면서 괜스레 이것저것 집어넣다가 밸런스가 깨지는 경우가 있곤 하다 보니, 이렇게 근본에 충실한 샌드위치가 오히려 소중하게 느껴진다.
+ 호밀빵은 다음 날 루꼴라와 프로슈토, 치즈를 넣고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꼬다리 쪽이 너무 딱딱하기는 했지만, 역시나 무척 담백하니 맛있었다. 무엇보다도 퍽 든든하다는 느낌.
+ 소금버터롤빵은 양고기 스튜와 함께 먹었다. 식사빵에 스튜는 못 참지. 다음에는 호밀빵과도 같이 먹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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