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한 번에 두 군데를 묶어서 소개하기로 한다. 별다른 의미는 없다. 그냥 하루에 연달아서 두 군데를 다녀왔을 뿐이다. 먼저 이른 점심식사를 위해 찾은 조선김밥부터.
오래간만에 북촌 나들이를 갔다가 들른 곳이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조선김밥을 가 보기 위해서 북촌을 간 것이라고 바꿔 말하는 것이 옳다. 아내가 김밥을 정말 좋아하는데, 맛집 블로그에서 이곳의 김밥이 뭔가 독특하다는 이야기를 읽은 모양이다. 살펴보니 뭔가 된장찌개가 들어간 독특한 느낌의 국수도 파는 모양이다. 김밥도 김밥인데 국수가 독특하다니까 나도 흥미가 동했다. 마침 집에 놀러온 처제와 함께 셋이서 개점 시간에 맞추어 조선김밥을 찾았다.
메뉴는 무척 단촐하다. 김밥 두 종류에 콩비지와 '조선국시', 그리고 음료수와 맥주가 전부이다. 인원수대로 한 개씩 시켜야 하니, 일단 김밥 두 종류를 다 시키기로 하고 나머지 한 그릇을 뭘 시킬지 고민에 빠진다. 국시를 먹을까, 콩비지를 먹을까? 몇 없는 메뉴 중에 굳이 콩비지를 집어넣었다는 것은 그만큼 콩비지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리라는 추측은 가능했지만, 일단은 도대체 저 조선국시라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기 때문에 한번 그쪽을 시켜 보기로 한다.
개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라 한산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식사는 제법 빨리 나왔다. 조선국시는 뚝배기에 담겨 나온다! 무척 뜨거우니 조심해서 먹는 것이 좋다. 부추김치로 끓인 슴슴한 느낌의 김치된장국 안에 소면이 말아져 있다. 뚝배기는 열을 오랫동안 유지하기 때문에 일단 빨리 덜어서 각자 그릇에 옮겨 놓는다. 반찬은 김치와 김장아찌, 무장아찌, 그리고 멸치볶음이 조금씩 나온다. 김밥이든 국수든 간에 그리 반찬이 중요한 음식은 아니다 보니, 곁들여 먹을 수 있을 만큼만 내 주는 모양이다.
조선김밥에는 시래기 느낌이 나는데 시래기 맛은 아닌 독특한 맛의 나물이 들어 있다. 질기지 않고 무척 향긋한 맛이 난다. 다른 김밥과 차별화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지 싶다. 무슨 나물일까 궁금해서 나중에 사장님한테 여쭤보니 '꽃나물'이라는 나물이라는데, 나도 이 나이 치고는 나름대로 나물깨나 먹어 봤다고 자부하는데도 영판 처음 들어 보는 나물이다. 찾아보니 '삼잎국화나물'이라고도 부른단다. 국화과의 나물인데 이파리가 삼잎같이 생겨서 그렇게 이름지어진 모양이다. 다른 김밥 속재료와 잘 어우러져 퍽 맛있다. 오뎅김밥에는 와사비가 들어 있다. 아내가 본 블로그 글에 의하면 콩비지랑 같이 먹었을 때 궁합이 장난 아니라는 듯하다. 물론 그냥 그대로 먹어도 맛있다.
조선국시가 퍽 독특하다. 왜 굳이 '조선'이라는 이름을 쓰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된장 베이스의 육수에 김치가 들어갔으니 그야말로 조선의 맛이기는 하다. 독특하게도 부추김치를 쓰고 있는데, 묵은지 느낌이 나고 무척 괜찮다. 뚝배기에 펄펄 끓는 채로 나오기 때문에 아까 말했듯 면이 붇기 전에 최대한 빨리 건져 먹어야 한다. 물론 남은 국물은 김밥이랑 같이 먹으면 훌륭하다. 맥주와 같이 파는 이유를 알 만하다. 해장으로 먹기에는 정말 딱인 맛이다.
김밥이건 국수건 워낙에 간편식이다 보니 식사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음 목적지인 '부빙'이 열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일단 북촌 근방의 다른 곳들을 좀 둘러보다가 열두 시 반쯤 되어 슬금슬금 가게 앞에 도착했다.
안국역 2번 출구에서 가회동성당 방면으로 쭉 북상하다 보면, 가회동사무소 주차장 안쪽으로 빼꼼하니 보이는 '부빙'이라고 쓰인 네온사인 간판이 있다. 그리로 들어가면 그리 크지 않은 가게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아직 영업 전이라 가게 앞에 서서 기다리는데, 사장님인 듯한 남자가 스툴 몇 개를 들고 나와 가게 앞에 펼치며 앉으라고 자리를 권한다. 고마운 일이다. 한 십여 분을 기다렸을까, 오후 한 시에 가게가 문을 연다. 자리를 잡고 미리 골라 둔 메뉴를 시킨다.
메뉴는 계절마다 바뀌는 모양이다.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인지라 쑥 빙수와 참외 빙수가 눈길을 끈다. 진짜 곰 머리는 아니지만 벽장식마냥 달아 둔 곰인형 머리가 인상적이다.
가게 안은 전반적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어서 구경하는 맛이 난다. 주로 북극곰을 주제로 해서 이것저것 꾸며 놓으셨다. 일본 본토 최남단인 카고시마에 가면 그 지역의 특산물인 이른바 '시로쿠마 빙수'라는 것이 있는데, 텐몬칸 거리의 '무쟈키'라는 가게에서 북극곰 얼굴마냥 꾸민 연유빙수를 팔기 시작하면서 카고시마의 명물이 된 음식이다. 무쟈키 본포에 가면 정말로 얼음 빙氷 자가 쓰인 천을 두르고 있는 북극곰 박제가 전시되어 있는데, 어쩌면 거기에서 영감을 받으셨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박제보다는 이렇게 아기자기하게 장식해 두는 게 그래도 귀엽다는 느낌이다.
빙수는 인원 수만큼 시켜야 한다고 하여 각각 한 그릇씩을 주문했다. '부빙'은 가회동 말고도 부암동에도 지점이 있는데, 각 지점별로 파는 빙수의 종류가 조금 다르다고 하니 참조할 것. 전반적으로 우유얼음으로 팥앙금을 싼 뒤 그 위에 다시 우유얼음을 올린 형식이다.
'팥빙수'라는 이름의 빙수는 재미있게도 연유 같은 것을 더 뿌리는 게 아닌, 고소한 콩가루를 솔솔 얹어서 내 준다. 따지고 보면 인절미 빙수와 비슷한 느낌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쪽이 더 입에 맞았다. 얼음 자체가 달기는 하지만, 의외로 그렇게까지 달지 않은 팥앙금과 고소한 콩가루의 조화가 훌륭하다. 호지차 빙수는 상상하던 맛 그대로. 고소하면서 진한 호지차 향이 입안에 기분 좋게 퍼진다. 나는 녹차도 좋아하지만 호지차도 퍽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무척 즐겁게 맛보았다. 새삼 우지에 갔을 때 잔뜩 사 와서 쟁여 두고 회사에서 늘상 달여 먹었던 호지차 생각도 나고. 건강쑥쑥 빙수는 이름답게 쑥 시럽을 활용한 빙수인데, 흥미롭게도 그 위에 부드러운 크림을 얹은 뒤 식용 네잎클로버까지 살짝 올려 두었다. 장식미로서는 더할 바 없다. 크림은 다소 쌉쓰레할 수도 있는 쑥 맛을 부드럽게 감싸 주지만, 쑥맛을 무척 좋아하는 나로서는 살짝 넘치게 배려받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쑥얼음 그대로만 해도 퍽 맛있기 때문이다. 네잎클로버 장식은 처제가 먹었는데, 그냥 풀맛이란다.
'부빙'은 계절별로 메뉴를 자주 바꾸는 듯, 한켠에 있는 냉장고에는 지금까지 손님들에게 대접한 바 있는 다양한 종류의 빙수들 사진이 쫙 붙어 있다. 무려 서른아홉 가지! 이름이 한국어와 일본어의 두 가지 언어로 되어 있는 것이 이채롭다. 비주얼은 일본식 카키고오리 같기는 하지만 맛은 한국식 우유빙수인, 독특한 느낌의 가게였다. 눈과 입이 모두 즐거웠던 곳이어서, 다음에는 부암동 쪽 점포에도 한번 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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