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맞이하여 아내가 회사 근처에서 발견했다는 스시 오마카세 가게를 예약했다고 한다. 마침 세밑 휴가도 냈으니 즐겁게 식사하기 딱 좋은 날이다. 시간에 맞춰서 상암동에 있는 '스시 토와'를 찾았다. 정해진 시간까지 찾아가야 했기 때문에 추위를 뚫고 잰걸음으로 걸어 겨우 시간에 맞췄다.
서울의 오래된 주택가 한구석에 갑자기 도쿄 골목길에 있을 법한 스타일의 가게가 나타난다. 원래 세워 놓는 것인지 아니면 연말이라 카도마츠 느낌을 내기 위해서 세워 놓은 것인지 모를 향나무 화분이 포인트. 일본어로 '영원'이라는 뜻의 가게 이름과 튼튼히 오래오래 사는 침엽수의 이미지가 잘 어울린다.
안으로 들어가면, 간접조명으로 불을 밝힌 정갈하고 꾸밈없는 스타일의 가게 내부가 눈에 들어온다. 우리 말고도 다른 손님들이 있었기에 가게 내부는 촬영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환풍구에 걸린 산타 인형이나 테이블에 장식된 스노우볼 등이 절제되면서도 귀여운 느낌을 준다. 머리를 박박 깎은 젊은 요리인이 운영하는 가게인 듯, 그가 익숙하게 우리를 자리로 안내한다. 처음에 준비되어 있는 것은 딱 마시기에 좋은 온도의 옅은 녹차. 은은한 향이 머리와 입 속을 깔끔하게 해 준다. 이제부터가 식사의 시작이다. 여기서부터는 사진이 주가 되고, 설명은 부차적으로 조금만 달고자 한다.
처음 나오는 것은 참치 초절임이다. 참치 특유의 기름기가 초간장과 어우러져 산뜻한 맛이 난다.
초밥으로서 처음 나오는 것은 아부리(토치로 살짝 그을리듯 구운 것)된 지중해농어다.
농어는 기본적으로 살이 부드러운 생선인데,
아부리하여 살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인가? 하는 추측을 해 본다(잘 모르지만).
간장을 살짝 발라서 주는데, 무척 고소한 맛이 난다.
돔은 평소에도 무척 비싸서 잘 구하기 어려운 생선인데,
이렇게 초밥으로 먹게 되니 사뭇 감회가 새롭다.
찰지면서도 특유의 향이 두드러진다. 맛있어.
나는 한치 회를 제법 좋아하는 편인데, 횟집에서 하도 낚인 적이 많아 내 발로는 좀처럼 가지 않는다.
탱글탱글한 한치의 식감이 유자 제스트와 잘 어울린다.
아내는 한치회의 식감을 좋아하지 않는다고는 하나, 유자향을 곁들이니 좀 괜찮다고 했다.
가리비는 펄을 먹지 않기 때문에 회로도 자주 먹는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처음 먹어 보았다.
살짝 바닷내가 올라오는데, 익었을 때의 관자와는 달리
부드럽고 혀에서 녹아드는 맛이 나서 다소 놀라웠다.
'꼬치고기'라는 생선을 먹어 본 적이 있는가? 적어도 나는 없다.
바닷가에서 낚시로 주로 잡히는 생선이고, 일본에서는 자주 먹는 종류라고 한다.
독특한 향이 나면서 무척 고소한 느낌이다.
초석잠이란 볼 때마다 저게 어딜 봐서 풀뿌리인가 싶은 생김새이다.
초절임이어서 아삭하고 상큼하니 생선구이와 잘 어울린다.
한 번 칼집을 넣어서 구운 삼치구이는 단단한 살이 입 안에서 천천히 부서지는 맛이 별미이다.
예전에 대학 다닐 적에는 학교 근처의 생선구잇집에서 종종 먹곤 했는데,
그 이후로는 정말 오랜만에 먹는 것이다.
초밥집에 가서 참치를 못 먹고 지나칠 수는 없지.
레드와인 간장으로 숙성시킨 붉은살이다.
역시 참치라고나 할까, 사르르 녹아내리는 맛이 일품이다.
삼치의 취식 방법이 정말 다양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해 주는 일품이었다.
초밥을 먹으러 다닌 경력이 일천한지라 이런 초밥은 처음이다.
구워서 먹어도 맛있는데, 이렇게 초밥으로 먹으니 또 다른 방향으로 맛있다.
단단한 느낌은 그대로이되, 더 탱글하다고나 할까.
김간장은 처음 먹어 보는 형태의 소스인데 제법 감칠맛이 올라온다.
아귀 간을 어떻게 참아요.
언제 어디서 먹더라도 맛있는 것이 아귀 간이다.
하물며 이걸 간장에 절여서 와사비와 함께 밥에 비벼 먹는다고 하면
이게 바로 밥도둑이다.
먹다 보면 그릇에 아귀 간이 약간 남을 수밖에 없게 되는데,
그것이 못내 아쉬워 젓가락으로 득득 긁어먹게 된다.
궁상맞아 보일지라도 맛 앞에서는 솔직해야 한다.
사실 내가 이제까지 먹어 봤던 회 중에 가장 맛있었던 것을 골라 보라면
고등어회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것이다.
회로 먹으면 정말 맛있지만 선도 유지가 어려워 좀처럼 서울에서는 먹기 힘든데,
아부리를 했다지만 이렇게 기름지고 살살 녹는 고등어회로 쥔
봉초밥을 먹을 수 있다니 그저 즐겁다.
(김은 토요스의 하야시야노리텐에서 떼어 오는 것을 쓰는 듯하다.
한국 김과 얼마나 다를지는 알 수 없지만, 김 자체는 퍽 맛있었다.)
마지막 식사거리는 청어로 국물을 낸 소면.
튀긴 청어 껍질을 몇 조각 얹어 준다.
가쓰오부시 국물에만 익숙한 입맛인데,
청어 국물은 더욱 기름지고 묵직한 맛이 난다.
마지막에 코 안쪽을 살짝 치고 가는 청어 특유의 구수한 향이 일품.
후식으로는 딸기 젤라또가 나왔다.
이것은 살짝 평범한, 시판용 젤라또의 느낌.
여행을 마음대로 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비교적 부담 적은 런치 메뉴로 이렇게 깔끔하면서 훌륭한 퀄리티의 오마카세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한 장점이다. 사장님이 퍽 젊은데도 제법 자신감 있게 초밥을 쥐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른 점심으로 찾아갔음에도 가게 자리가 꽉 차 있었던 만큼, 저으기 인기 있는 가게인 듯하다. 네이버에서 예약도 받고 있으니 좋은 질의 초밥을 먹으며 기분을 내고 싶은 점심 시간에 한번 들러 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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