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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181003 Jakarta

3년이 지나서야 쓰는 가루다 인도네시아 비즈니스 클래스 체험기

by 집너구리 2021. 6. 27.

자카르타를 다녀온 지가 어느덧 3년째인데도 여전히 자카르타 여행기가 많이 있지를 않아서, 그냥 자카르타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보고 느끼고 경험했던 몇 가지 경험들을 적어 보고자 한다. 신변잡기가 주를 이루겠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은 선택이다.

 

우리 회사에서 출장을 갈 적에는 보통 각 지역마다 정해져 있는 기본 여행경비라는 것이 있다. 해당 경비 안에서 항공권을 구입하게 되는 것인데, 단거리인 일본의 경우에는 김포-하네다 셔틀에 들어가는 전일본공수(ANA) 왕복 비즈니스 클래스를 탈 수 있는 경우도 제법 있지만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운이 좋아야 왕복 중 한 편에 비즈니스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가 끝나고 출장이 재개되면 한동안 비행기값이 비쌀 게 뻔하므로 비즈니스 클래스는 언감생심이 되겠지만, 그래도 그 전에 비즈니스 클래스를 여러 번 타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는 점만큼은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자카르타로 출장을 다녀올 때는 가루다인도네시아 비행기를 이용했다. 대한항공과 같은 스카이팀 소속이자 인도네시아의 플래그 캐리어로, 따라서 스카이팀이 진을 치고 있는 인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출국하게 된다. 비행기를 예약할 때 사내 여행사 직원이 "비즈니스 클래스 티켓을 출입국 둘 중 한 편에 적용할 수 있는데, 어느 걸로 하시겠어요?"라고 물었다. 팀 동료들과 논의한 끝에, 출장을 끝나고 돌아올 때는 밤 비행기이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할 테니 입국할 때 비행기로 하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결론적으로 그 선택은 성공적이었다.

 

'슬라맛 잘란'!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어로 '즐거운 여행 되세요'라는 뜻의 인삿말이다.

수카르노 하타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작은 혼란이 있었다. 우리는 라운지에서 푹 쉴 요량으로 출발하기 네 시간쯤 전에 공항에 도착했는데, 가루다 인도네시아 창구에 갔더니 "출발하기 두 시간 전부터 티켓을 발권해 준다"는 것이다. 아니 그럼 비즈니스클래스 탑승객들은 라운지에서의 여유를 얼마 즐기지도 못한 채로 탑승해야 한다는 소린가? 같이 있던 팀원 셋 중에서 그나마 영어가 좀 되는 사람이 나여서, 일단 다른 사람들은 벤치에 앉아 있기로 하고 내가 상황을 좀 더 알아보기로 했다. 다행히도 머지않아 티켓 구입 창구의 직원에게서 "가루다인도네시아 비즈니스 클래스 승객들은 창구가 다르니까 그리로 가서 물어보세요!"라는 안내를 듣고 찾아가 보니, 정말 비즈니스 클래스 창구가 한참 떨어진 곳에 따로 있었다. 창구로 다가가서 "언제언제 출발하는 인천행 승객인데, 비즈니스 클래스 수속하는 데가 여기가 맞죠?" "지금 접수해도 들어갈 수 있죠?"라고 여러 번 다짐을 받은 뒤 비로소 팀원들을 불러 다 같이 수속하러 갈 수 있었다.

 

이리로 들어가면 가루다 인도네시아 항공 라운지로 이어진다.

면세점을 좀 돌아보면서 기념품을 산 뒤, 항공사 라운지로 향했다. 티켓 체크를 마친 뒤 긴 통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가면 비로소 라운지가 나온다. 김포공항 스타얼라이언스 통합라운지의 다소 남루한 듯한 모습이나 인천공항 제1터미널의 중역실 같은 고급스럽고 묵직한 느낌의 인테리어와는 달리, 이곳은 제법 밝으면서도 왁자한 느낌을 주었다. 그야말로 인도네시아답달까. 라운지가 무척 좁고 긴 느낌이어서, 저 안쪽으로 한참 가면 텅 빈 의자들이 잔뜩 늘어서 있고 길게 누워서 잠을 자고 있는 외국인들도 왕왕 보였다.

항공사의 연혁에 따른 로고와 승무원복의 변천사를 전시해 두었다. 제법 세련됐다. 자사의 항공기 모형을 전시해 두기도 했다. 아마 파는 듯하다.

항공사 라운지에 가면 으레 있는 자사 항공기의 모형(돈을 내면 동일 종류를 살 수 있지만 더럽게 비싸다) 같은 것이 벽면에 전시되어 있는 데 더불어, 흥미롭게도 가루다인도네시아 항공의 역사에 따라 변화해 온 로고와 승무원복의 이력을 사진으로 전시해 둔 포토월 비슷한 것이 있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인도네시아 특유의 스타일을 살리면서도 제법 세련되고 댄디하게 디자인했다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지금도 가루다인도네시아의 승무원복은 퍽 맵시 있는 편이다.

 

다채로운 뷔페음식!

사람이 많아서 앉을 자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는 점만 제외하면 퍽 훌륭한 라운지였다. 나처럼 먹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으로서는 뷔페가 다채롭게 준비되어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었다. 인도네시아 음식과 양식은 물론이고 동북아시아계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죽이라든가 서양인들이 환장할 팝콘, 각종 음료류 등도 잘 되어 있었고 맛도 나쁘지 않았다. 과일이 좀 더 시원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만이 살짝 남을 뿐. 재미있게도 '파스타 스테이션'이라고 해서 파스타를 삶은 뒤 토핑을 얹어 먹을 수 있게 되어 있는 코너가 있었는데, 구성은 아무리 봐도 셰프가 붙어 있어야 할 것 같은데도 이 앞에 아무도 안 서 있어서 아쉽게도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는 채 파악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또 냉장고에 있는 캔맥주를 꺼내서 먹을 수 있게 되어 있었는데, 한 사람당 캔 수가 제한되어 있었는지 어땠는지 잘 기억은 안 난다. 아무튼 빈땅은 정말 맛있었다. 태국의 창이라든지 인도네시아 빈땅이라든지, 동남아시아는 맥주를 참 잘 만드는데 왜 이걸 사 들고 올 생각을 못 했는지 정말 천추의 한이다.

저녁 대신으로 토스트와 파파야 몇 점, 샐러드 등을 먹었다. 빈땅 많이 사 올걸!

탑승 시간이 다가오면 슬슬 자리를 털고 일어나 탑승구로 향한다. 비즈니스 클래스 탑승객은 일반 탑승객과 다른 입구로 들어간다. 나는 운이 좋게도 창가 자리를 받아 퍽 신이 났다. 다리를 쭉 뻗고 아무렇게나 앉아서 비행을 즐기다가 자고 싶을 때 누워서 푹 잘 수 있다는 점이 비즈니스 클래스의 좋은 점인데, 여기 또한 그러기 딱 좋은 공간이었다.

 

 

탁상 패널은 아무래도 원목은 아니라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제법 넓은 공간을 자랑한다. 170 남짓의 키에서는 다리를 뻗어도 공간이 남는다.
팔걸이를 열면 헤드폰이 있고, 팔걸이 위 보조탁상을 열면 컨트롤러가 있다. 의자와 조명은 보조탁상 아래 터치스크린으로 조절한다.
웰컴 드링클로 암바렐라 주스라는 것이 나온다. 물론 생수도 한 병 준비되어 있다. 보조탁상 안쪽 덮개를 열면 콘센트가 있다.
어메니티는 단촐한 편이다. 귀마개, 스킨, 로션, 치약, 칫솔, 빗, 립밤, 안대. 립밤 생김새가 제법 독특하다.

의자에 앉아 이것저것 만져 보고 열어 보면서 즐거워하고 있을 때 승무원이 다가와 웰컴 드링크라면서 뭔가 상큼한 녹색의 주스 한 잔을 따라 주었다. 뭐냐고 물어보니 '끄동동(kedongdong)' 비슷한 이름을 댔는데, 인도네시아말이라 당최 무슨 과일을 가리키는지 알 수 없었다. 다행히도 의문은 곧 다른 승무원이 와서 건네 준 기내식 메뉴판을 보고 풀렸다. '암바렐라(ambarella)'라는 이름의 과일이란다. 마셔 보니 과연 상큼하긴 한데, 약간 밍숭밍숭한 듯도 하고 새큼한 듯도 하고 영 알 수 없는 맛이었다. 사과와 셀러리를 살짝 섞어 둔 것 같은 그런 맛이랄까. 한국 사람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계열의 과일인 듯한데, 나중에 듣자하니 이 동네 사람들은 제법 잘 먹는 과일 종류라고 한다.

 

조선말 메뉴 이것보단 잘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메뉴판은 앞 반절은 영어, 뒷 반절은 한국어로 되어 있었다. 외국어에 하도 지쳐 버린 탓에 영어 쪽은 대충대충 읽고 넘겼는데, 한국어 메뉴의 퀄리티가 장난이 아니다. 강제 개행되어 부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문장하며, 어쩐지 무슨 영어 표현을 집어넣고 번역기를 돌렸는지 대강 짐작이 가는 메뉴 이름들, 무엇보다도 사람을 화나게 하는 굴림체까지, 이쯤되면 완전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완벽히 괴이쩍은 생김새의 메뉴들이었다. 웃긴 건 그래도 이해가 아예 안 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인사말이나 메뉴판 하단의 주의사항 같은 것들은 생각보다 앞뒤가 맞는 한국어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강 한국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인도네시아인 직원에게 검수를 맡겼지만 다소 애매하게 마무리된 느낌이랄까. 아무리 뜻만 통하면 된다지만, 적어도 플래그캐리어 항공사의 비즈니스 클래스 메뉴판을 이렇게 만드는 건 그다지 좋은 이미지를 주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외국에 나가서 한식 먹는 것을 정말로 싫어하기 때문에, 아침 메뉴는 한식과 인도네시아식이 준비되어 있다는 말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인도네시아식을 골랐다. 맛있어 보이는 구성이기도 했고. 후식으로 나오는 커피는 싱글 오리진이라 원두를 고를 수 있다고 하길래, (당시만 해도) 커피숍 타이쿤 게임을 하던 가락을 살려 그나마 들어 본 이름인 '만델링'으로 요청했다. 그러고 나서는 비행기가 이륙하는 광경을 창 밖으로 지켜보면서 다소간의 감상에 빠졌다가, 11시가 넘은 시간이 되기도 해서 일단은 잠을 청하기로 했다. 의자를 쭉 뻗으면 발까지 걸치고 잘 수 있어 사실상 침대에서 자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어두운 기내에서 담요를 듣고 이어폰을 꽂고 있자니 잠은 금방 찾아왔다.

 

하늘에서 본 자카르타의 마지막 모습은 아름답고 뿌얬다. 얼마나 먼지가 많으면 먼지 권이 보이냐고.
이륙한 지 얼마 안 돼서 받은 간단한 핑거푸드. 관자구이에 연어알을 얹은 듯하다.

 

한 서너 시간 정도 잔 것 같은데 승무원이 나를 깨워서 아침을 먹겠느냐고 물었다. 비몽사몽 간에 그러마고 했더니, 애피타이저부터 시작해서 코스로 차근차근 요리를 날라 왔다. 애피타이저로는 오렌지주스에 빵과 크림치즈, 잼, 요구르트, 생수와 생과일이 나왔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도 빵이 제법 맛있어서 크림치즈에 잼과 함께 허겁지겁 먹었다. 과일 요구르트는 내 입에는 살짝 달았고, 과일들은 내 입에는 살짝 밍밍했다. 그래도 잘 익은 구아바만큼은 맛있었다.

 

본 코스로는 안남미로 지은 밥에 구운 계란, 닭고기 큐브 조림과 감자 요리가 나왔다. 인도네시아 요리 아니랄까 봐 새우칩과 삼발 소스도 곁들여 나왔다. 인도네시아 음식이라고는 나시고랭과 미고랭, 사떼 정도밖에 모르는(이 시점에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게 정확히 무슨 요리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인도네시아 출장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는 제법 괜찮은 한 끼였다. 양도 부담 없었고, 무엇보다도 인도네시아 특유의 깨꾸름한 향신료 맛이 기분좋게 혀와 코를 자극하는 느낌 한 순간 한 순간이 아깝기만 했다. 잘 오기 힘든 나라이다 보니 더욱 그 아쉬움이 더한 듯했다. 마지막으로 나온 커피 또한 부드러우면서도 깊은 맛이 무척 훌륭했다. 

 

아침을 깨우는 상큼한 오렌지 주스와 제법 견실하게 나오는 애피타이저.
계란구이와 닭고기 조림에 감자를 곁들인 마지막 인도네시아식 요리. 커피도 맛있었는데 초점이 날아갔다.

 

밥을 먹으니 서너 시간밖에 자지 못해서 피곤에 절어 있던 의식이 점점 깨어나기 시작했다. 핸드폰을 잠시 만지작거리며 다리를 쭉 뻗고 누워 있자니 마치 소가 되어 버리기라도 할 듯한 느낌이 들었다. 승무원에게 물어보니 곧 있으면 착륙한다기에 일단은 잠들지 않고 좀 더 놀면서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의자 등받이를 바로세운 뒤 책을 좀 읽다가 창 밖을 내다봤는데, 벌써 아침해가 제법 떠오른 시간이었다. 그야말로 '구름의 바다'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몽글몽글한 구름들이 비행기 아래로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란 정말 질리지 않을 만했지만, 이 광경을 열심히 구경하기에는 내 뒤의 기내가 너무나도 어두웠기 때문에 창문 가리개를 잘못 올렸다간 많은 이들에게 민폐를 끼칠 듯했다. 결국 얼마 구경하지 못하고 다시 창문 가리개를 내린 뒤 책이나 마저 읽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기는 대기권으로 접어들었고, 곧 인천에 무사히 착륙했다.

 

구름이 숲처럼, 협곡처럼, 호수처럼 지형 비슷한 무언가를 이루면서, 끝없이 펼쳐져 있다. 흰빛 암석으로만 가득한 행성이 이런 느낌일까.

 

인도네시아가 자랑하는 플래그캐리어 항공사인 만큼 수카르노 하타 공항에서의 라운지도 훌륭했고, 기내 서비스와 기내식도 상당히 괜찮았다. 무엇보다도 제법 오래 걸리는 비행편인 인천-자카르타 노선을 오감에도 전혀 좀이 쑤시거나 혈액순환 문제로 고통받지 않는 상태에서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훌륭했다. 다만 그놈의 한국어 메뉴판만 어떻게 좀 해 주면 정말 완벽하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자면, 이코노미 클래스의 서비스도 나름대로 괜찮으니 혹시라도 인도네시아에 갈 적에 가루다인도네시아를 타게 되더라도 너무 걱정에 가득 찰 필요는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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