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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18

[중국없는 중화권 투어] 0. 시작하며 나는 해외 여행을 퍽 자주 다니는 편이다. 해외 여행을 취미로 자주 다니는 사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데, '되도록 다양한 나라와 다양한 지역을 다니는 사람'과 '비슷한 나라나 지역을 여러 번 다니는 사람'이 그것이다.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정리해 둔 폴더 목록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새삼스레 깨달았다. 나는 확실하게 후자다. 회사에서 고인물의 증표로 두 번째로 받은 리프레시 휴가도 벌써 소진해야 할 시기가 다가온 어느 날의 일이다. 아주 당연하게도 이번 리프레시 휴가에도 여행을 가는 흐름이 되었다. 문제는 어디를 가느냐다. 추석을 끼면 결과적으로 열흘 좀 넘게 휴가를 쓸 수 있는 상황이라 유럽도 선택지에 은근슬쩍 넣어 봤지만, 비행깃삯을 확인하고는 바로 선택지에서 제외했다. 나도 나폴리 길거리에서 피자.. 2023. 10. 10.
대만유람기 2019 (20) : [9일차/최종화] 8박 9일 간의 대만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잘 된다 싶으면 꼭 마지막에 일이 틀어진다 청춘물 애니메이션을 보면 꼭 나오는 장면이 합숙 아니면 방학 여행이다. 신나게 놀거나 피땀눈물 흘려가며 연습한 뒤 마지막에 집에 돌아가는 장면에서 리더격의 인물이 빼놓지 않고 하는 대사. "집에 돌아갈 때까지가 여행/합숙이야!" 흘러가듯 지나가지만 빠지면 뭔가 섭한 이 대사를 정말로 여행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곱씹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전날 잔뜩 지친 몸에 맥주를 반 캔이나마 부어넣은 탓에 취기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와 정말 죽은 양 잠을 자다가 아침 알람 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라듯 일어났다. 아침 여덟 시 기차를 타고 타오위안으로 올라갈 요량으로 맞춘 알람 시간이 새벽 여섯 시쯤, 맥을 못 추는 아내를 아슬아슬한 시간에 깨워서 식사를 하러 갔다. 타오위.. 2021. 6. 20.
대만유람기 2019 (19) : [8일차] 도심 속의 휴양지 치진 섬 돌아다니기, 생각보다 훌륭했던 조개박물관과 반가운 이들과의 저녁 식사, 가오슝 주교좌성당으로 마무리한 여정의 끝자락 가오슝의 발상지, 도심 속의 휴양지 치진 섬으로 구산 페리를 타고 10분 남짓 나가면 치진 섬이다. 하마싱 철도문화원구에서 서쪽 바닷가를 바라보면 바로 내다보이는 길쭉한 막대기 같은 섬으로, 지도를 보면 마치 가오슝 앞바다를 쭉 가로막고 있는 방파제처럼 보이지만 엄연히 자연섬이다. 그리고 가오슝의 기반이 된 어촌 마을이 처음 생겨나기 시작한, 말하자면 가오슝이라는 도시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원주민들도 많이 살지 않던 이 곳에 처음 도달한 한족 가족들이 동네 원주민들의 이름을 따서 '따꺼우'라고 이름붙인 작은 어촌 마을이 지금의 치진 섬 북부에 위치했고, 이 지역의 가치에 주목한 청나라와 그 뒤를 이어 지역을 점령한 서양인들, 그리고 일본인들이 이어서 도시를 개발하면서 지금의 대만 제2의 도시 가오슝으.. 2021. 6. 19.
대만유람기 2019 (18) : [8일차] 가오슝의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옌청지구와 보얼 예술특구를 둘러보고 치진 섬으로 가오슝의 오래된 미래, 옌청鹽埕의 보얼예술특구駁二藝術特區 전날처럼 두둑하게 식사를 한 뒤 오늘은 귤선을 타고 다소 멀리까지 나가 보기로 한다. 멀리까지라고 하더라도 서쪽으로 달랑 세 정거장 가서 옌청푸鹽埕埔 역에 내릴 뿐이다. 어제에 이어 날씨는 무척 좋다. 말인즉슨 덥다는 뜻이다.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낮의 거리를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걷는다. 지하철 출구에서 점차 서남쪽으로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건물들이 점차 낮아지고, 더 낡아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면 이상한 것이 아니다. 옌청푸역 근방은 1989년의 대화재로 한번 다 타 버린 시가지를 재건한 것이지만, 본래 이곳은 약 300년 간 항구로 활용되며 가오슝의 중심가로 기능해 왔던 곳이기 때문이다. 한국인 관광객들의 후기에는 보통 옌청푸역에서 출발해서 이 .. 2021. 6. 13.
대만유람기 2019 (17) : [7일차] 가오슝에서의 하루, 재미보다는 미미美味에 치중하다 방만큼이나 훌륭한 저스트슬립 가오슝 스테이션 호텔의 조식 예정에 없이 훌륭한 방에서의 하룻밤 이후, 우리는 낙관적인 마음을 갖고 조식 뷔페로 향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방이 훌륭했던 데다가 호텔 카페의 과자류도 맛있었던 만큼, 조식도 최소 평균 이상의 퀄리티를 선보이지 않겠느냐고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지레짐작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조식 뷔페는 상당히 충실한 구성을 하고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중국식 메뉴에 비해 양식 메뉴가 좀 더 많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상당히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덕분에 생각지도 못하게 아침 식사를 다소 배불리 먹고 말았다는 게 함정이긴 했지만. 메이리다오 지하철역에서 시작하는 시내 관광, 2% 부족한 용호탑과 제법 흥미로웠던 공자묘 대만의 대도시 가운데에서는 가장 남쪽에 위치한 .. 2021. 6. 6.
대만유람기 2019 (14) : [5일차] 철덕의 천국 장화의 원형차고지, 가오메이(고미)습지의 아름다운 노을과 밤의 타이중 궁원안과 철덕의 성지 장화 원형차고지, 그리고 뭔가 애매한 음식 로우위안 춘수당 버블티를 마시며 설렁설렁 타이중 역으로 걸어가는 길은 여전히 더웠다. 타이중이라는 거점도시에 도착하기는 했지만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타이중 시내보다는 주위의 다른 지역들을 조금 더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그 첫 번째 발걸음이 향한 곳은 국철 타이중 역에서 구간차(완행열차)로 20분 남짓 걸리는 도시 '장화彰化'였다. 한국에서도 잘 알려져 있(지만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는 유명한 대만 영화 의 배경지이자, 철덕들에게는 아시아에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원형차고지가 소재한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사실 장화행을 결정할 때 아내는 큰 감흥이 없었지만, 철도를 좋아하는 내가 아내에게 꼭 한 번 가 보고 싶다고 이야기하여 성사된 것이나 다름없.. 2021. 5. 16.
대만유람기 2019 (11) : [4일차]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단수이 벌써 넷째 날이라니 믿겨지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는 거짓말처럼 맑았고, 아니나 다를까 더웠다. 그러나 이렇게 더울 때일수록 즐기는 온천이 그야말로 각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오늘은 온천에 가기로 한 날이다. 타이베이 수도권에서 오롯이 보낼 수 있는 마지막 하루의 시작은 단수이신이선 지하철을 타고 종점까지 가야 만날 수 있는 이국적이면서도 고즈넉한 동네 단수이淡水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주걸륜의 피아노 실력과 계륜미의 청순미가 폭발했던 대만의 유명한 청춘 영화 의 촬영지로 익히 알려져 있으며, 역사적으로는 스페인과 네덜란드, 영국과 정씨 왕국 등 다양한 세력들이 저마다 개척항구로 활용했던 파란만장한 지역이기도 하다. 그에 걸맞게 이 지역에는 지금도 서양식 건물과 중화식 건물, 그리고 일본식 .. 2021. 3. 28.
대만유람기 2019 (10) : [3일차] 압도적인 국립고궁박물원과 의문의 밤산책, 그리고 훌륭했던 발 마사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대만유람기를 적기 시작한 이후로 벌써 열 번째 글이다. 글은 열 개나 쌓였는데 아직도 사흘차이고, 심지어 아직 타이베이 근교에서 벗어나지도 못했다. 앞으로도 두어 개의 글을 더 쓸 때까지는 타이베이 근교에서 계속 체류할 예정이다. 그래도 글을 쓰면서 새록새록 여행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만큼은 반가운 일이다. 여권에 출입국 도장을 찍어 본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도대체 이놈의 역병은 언제쯤 가라앉는단 말인가. 하루빨리 모든 것이 예전으로 돌아가 이번에는 대만 동부 유람을 가 볼 수 있게 된다면 소원이 없겠다. 국립고궁박물원国立故宮博物院, 찬란한 중화문화의 진수 드디어 벼르고 별렀던 그곳, 국립고궁박물원으로 향한다. 우육탕면도 배부르게 먹었겠다, 발걸음도 가볍게 둥먼東門 역에서 다시 .. 2021. 3. 7.
대만유람기 2019 (9) : [3일차] 땡볕이 내리쬐는 낮 타이베이 시내 관광 셋째 날이 밝았다. 어제와 다름없이 아침을 먹으러 갔다. 오늘의 아침은 대만식 오믈렛과 베지 버거. 우리가 묵었던 게스트하우스는 이렇게 중정을 가운데 두고 여러 개의 건물에 걸쳐 둘러싸여 있는 형태이다. 왼쪽 유리문을 지나면 바로 우리 부부가 썼던 방이 있다. 이 사진은 공동샤워실 옆에서 찍었는데, 이 책상에 사람들이 간간이 앉아서 자기네들끼리 떠들곤 했다. 셋째 날인 이날은 멀리까지 관광을 하러 나가지는 않기로 했다. 아내는 몰라도 나는 대만이 처음인 만큼, 적어도 타이베이에 오면 누구든지 들른다는 곳들은 한번씩 가 보고 싶었고, 아내도 내 의견을 존중해 주었기에 이루어진 일정이었다. 대신 국립고궁박물원을 일정에 넣은 만큼, 오전에는 일정을 최소화하고 오후 나절은 통으로 박물원에 투자하기로 했다. 중화.. 2021. 2. 28.
대만유람기 2019 (8) : [2일차] 복닥복닥한 스펀과 등불이 아름다운 지우펀, 그리고 건조기지옥 스펀十分, 하늘을 나는 천등만으로는 묘사가 부족한 마을 흔히 스펀이라고 하면 이른바 '예스진지' 투어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게 마련이다. 예류지질공원, 스펀, 진과스, 지우펀의 네 지역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이 네 곳은 대중교통으로 찾아가기에는 워낙에 열악한 곳에 위치해 있다 보니 택시 투어 등으로 다녀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부부의 이번 신베이 투어의 주 목적은 앞에서 이야기했던 허우퉁이었기 때문에, 허우퉁에서 기차로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 스펀과 지우펀만 다녀오는 것으로 하기로 했다. 허우퉁 역에서 기차를 타고 20분 정도를 가면 스펀 역이다. 그렇게 멀지는 않은 거리인데 이렇게 오래 걸리는 이유는, 기차가 보통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는데다가 철로가 깎아지른 낭떠러지 위를 아슬아슬하게 지.. 2021. 2. 7.
대만유람기 2019 (7) : [2일차] 국부사적관, 타이베이 역에서 고양이마을 허우퉁까지 타이베이국부사적관臺北市國父史蹟館, 쑨원의 자취를 기리는 공원 까오지에서 배불리 밥을 먹고 느긋하게 걸어 타이베이 역으로 향했다. 허우퉁으로 가는 일반열차 시간까지는 아직 조금 여유가 있어서, 그 동안에 무얼 할까 고민하던 차에 타이베이 역 바로 앞의 교차로 근방에 작은 공원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40분 정도 시간이 비니, 여기서 20분 정도 거닐면서 시간을 때우다 출발해도 기차 시간에는 맞겠다 싶었다. 로마자 표기만 봐서는 대체 무슨 박사를 기념하는 공원인가 싶겠으나, Sun Yat-sen이란 신해혁명의 주도자이자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모두에서 국부로 추앙받는 쑨원孫文 박사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Yat-sen은 그의 자 '일선逸仙'을 광둥어식으로 읽은 것이다. 어쩐지 공원 문 앞에 웬 낯이 익은 콧.. 2020. 4. 21.
대만유람기 2019 (6) : [2일차] 조식, 장안천주당, 까오지 동파육과 소롱포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조식 어제 밤 늦게까지 뽈뽈거리고 돌아다닌 탓인지, 이튿날 아침에는 제법 느지막하게 일어났다. 아내가 잠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조금 일찍 침대에서 기어나와 대충 씻고 조식을 주문하러 1층으로 내려왔다. 무료로 주문할 수 있는 아침식사 메뉴는 주로 대만식 오믈렛과 토스트 종류였다. 대만식 오믈렛이라는 게 별 게 아니고, 계란과 야채를 섞어서 스크램블드 에그 비슷하게 만든 다음 그걸 또띠야로 싼 느낌의 요리였다. 오믈렛 하나 만들 때에도 충실하게 대만식 향신료를 뿌려 놓아서, 생긴 건 서양식 요리인데 대만의 향이 아낌없이 나는 이채로운 아침 식사였다. 토스트는 뭐, 평범하다면 평범한 프렌치 토스트였는데, 퍽 맛이 괜찮았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제법 수준이 높은 요리들이어서, .. 2019. 1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