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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은 거창하게/덕질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3.0+1.0)을 봤다

by 집너구리 2021. 8. 15.

(이 글은 최대한 스포일러를 배제하면서, 오로지 필자의 감상으로만 작성된 글입니다.)

 

말 그대로이다.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3.0+1.0)을 봤다. 마침내 공개된 부제는 Thrice upon a time.

 

아마존 프라임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마지막 신극장판인 에반게리온:Q로부터 9년이 지나 나온 작품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Q의 혼란 속에서 자그마치 9년을 보냈다. 관객뿐만 아니라 안노 히데아키 감독도 스스로 다소 혼란스러웠을 9년이었으리라. 올초 일본에서 마침내 개봉했을 당시, 득달같이 영화를 보고 온 일본인들이 하나같이 득도한 듯한 반응을 보이던 것이 오히려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던 기억이 있다. 도대체, 무엇을 보고 왔기에 이런 반응들밖에 하지 않는 것일까? 언제나 그렇듯, 답은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다. 오로지 한국에 개봉되거나 공개될 날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 전부였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서 세계 공개를 확정지었다는 스튜디오 카라의 발표는 그래서 더욱 반가웠다. 요즘 같은 시기에 일본에 가는 것은 언감생심이요 극장에 가는 것마저 두려운 마당에, 인터넷으로 집에 앉아서 신극장판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뻤다. 마침 재택근무 덕분에 회사에서 가져온 카리스마 대빵큰모니터도 있으니, 이제 8월 13일만을 주구장창 기다릴 뿐이다.

 

한 번도 쉬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영화를 다 봤다. 그야말로, 포스터에 적혀 있는 그대로다. 

"안녕, 모든 에반게리온. さようなら、全てのエヴァンゲリオン。"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일단은 생각나는 대로 스포일러를 건드리지 않는 한에서 감상을 적어 보기로 한다.

 

1.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부분에서 구극장판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End of Evangelion, EOE>의 향기가 강하게 났다. 연출부터 이야기 전개까지 모두 다. '에바의 끝'이라는 주제의식을, 1997년 EOE를 만들 적의 안노 히데아키와 2020년대에 3.0+1.0을 만들 적의 안노 히데아키가 서로 다르게 완성시켜 냈다는 느낌. 새삼스레 1997년의 안노와 2020년대의 안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 와닿았다.

 

2. 이전의 신극장판 3개 작품(<서>, <파>, <Q>)에서도 늘상 쓰였던, 동요를 활용한 연출이 이번에도 건재하다.

 

3. 아니나 다를까 기독교적인 메타포는 보면 볼수록 끝도 없이 나온다. 특히 특정 장면에서 어떤 노래가 같이 흘러나올 때에는 정말 감탄했다. 

 

4. 안노 감독이 나름대로의 결말을 내기 위해서 노력한 티가 두드러지는 작품이었다. 각 캐릭터들의 세세한 행동의 차이도 그렇고, 결말의 차이도 그렇고. 다만 거기에 100% 납득했느냐 하면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아, 끝났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은 부정할 수 없고, 그 점은 정말 마음에 든다.

 

5. 와, 이 인물이 여기서 이렇게 된다고? 싶은 부분들이 정말 많다. 확실히 Q보다는 친절하긴 한데, 그래도 여기서 이 인물이 이렇게? 싶은 부분들이 많았다. 

 

6. 나는 TVA 때부터 흔들리지 않는 아스카파로 지금까지 살아 왔고, 여기에 자긍심을 가져 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먼저 3.0+1.0을 본 오타쿠 지인이 나더러 "하... 님도 제가 왜 '아스카...아스카!!!' 하지 않고 '아스카... 아스카...' 그러는지 알게 될 거예요."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나도 그저 "아스카... 아스카..." 만을 부르짖는 오타쿠가 되고 말았다.

 

7. 거의 반 년 간을 에바 관련 내용이 적힌 인터넷 페이지에는 들어가지조차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스포일러를 배제하면서 살다가, 이제 신극장판을 다 보고 나서 여기저기 들락거려 보니 (물론 호평도 많지만) 혹평들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어떤 관점에서 그렇게 평하고 있는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나도 공감하는 포인트들이 있다. 그러나 1990년대 말에 TVA와 구극장판이 나왔을 때 사람들이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대해 했던 말들과, 현 시점에 이르러 그 작품들이 평가받는 방향은 상당히 다르다. 신극장판 네 편의 평가도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은 물론 없기는 하지만, 그리고 내 나름대로도 마음에 드는 부분과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어쨌든 안노 감독의 작품은 다소 시간이 지나야 조금 더 명확한 평가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점점 확신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8. 그래도 마지막 장면은 좀 에고이스트 같았어요, 안노 감독님.

 

9. 미장센이나 전투 장면은 아니나다를까 무척 훌륭했다. 이게 기술력인가 싶을 정도. 중간에 다소 물음표를 띄울 만한 부분도 있기는 했지만, 그 부분이 과연 '대충' 만들었다고 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10. 문제의 사다모토 요시유키가 완전히 강판되고 총작화감독을 <아이돌 마스터> 애니메이션 감독을 맡았던 니시고리 아츠시가 담당했는데, 과연 니시고리답다고 느낄 만한 부분들이 산재해 있다. 그의 팬이라면 미소지을 만한 부분들이 곳곳에 숨어 있으니 참고하시길.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 등의 총작화감독을 맡아 한국 팬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타나카 마사요시도 참여한 바 있다는데, 누가 봐도 타나카가 그렸다 싶은 부분이 한 컷은 나와서 퍽 반가웠다.

 

11. 이 한 마디는 꼭 하고 싶다. 주제의식은 신극장판이 더 마음에 들지만, 미학적으로는 구판이 더 좋았다. 

 

12. 그래, 끝났다. 이것으로 에바는 완전히 끝났다는 느낌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