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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기

[방문기] 서울시 마포구 '씨엔티마트'

by 집너구리 2021. 9. 4.

평일에 오랜만에 휴가를 내었다. 말이 휴가지, 밀린 금융 관련 일이나 묵혀 두고 있던 집안일을 처리하기 위한 휴가였다. 하려고 했던 일들 리스트를 체크해 가면서 하나하나 처리하고 나니, 시계는 오후 세 시 반을 막 넘긴 뒤였다. 콧바람도 좀 쐬고 늘 가는 제로웨이스트 가게인 '알맹상점'에도 들를까 싶어 합정동으로 향했다(알맹상점에 대한 글도 언젠가는 쓰지 싶다). 모아 둔 재활용 쓰레기와 유리병, 그리고 안 쓰는 물건들을 갖다 준 뒤 필요한 물건을 몇 개 샀다. 알맹상점을 나와서는 홈플러스에 잠깐 들렀다가(합정동에 오면 매양 돌아가는 흐름이 이렇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퍼뜩 씨엔티마트에나 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씨엔티마트가 뭐 하는 곳인고 하면, 집에서 가장 가까운 커피용품 전문점이다. 인터넷 쇼핑몰도 오래 전부터 제법 크게 하고 있는 모양이다. 평소에 나는 원두나 커피용품이 필요할 때면 강 건너 선유도의 어라운지를 주로 찾곤 한다. 거리로 따지면 씨엔티마트가 훨씬 가깝지만, 영업에 영 의욕이 없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가게 자체를 평일 9시경부터 6시경까지만 열기 때문이다. 직장인이라면 도저히 가 볼 엄두를 내지 못할 영업시간이다. 딱히 그곳에서 뭘 살 생각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생각난 김에 다녀오는 그런 느낌이다.

 

 

여름의 끝자락인데도 비가 퍽 왔다.
전경.

드라마 <라이브>의 배경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경찰 지구대인 홍익지구대 맞은편 골목길로 들어가서 쭉 걷다 보면 '영진종합시장'이라는 간판이 붙은, 딱 봐도 오래 되어 보이는 건물 한 채가 나타난다. 1층은 상가로, 2층 이상은 아파트로 되어 있는 전형적인 6-70년대식 주상복합 아파트인데(마포구에서는 이렇게 오래 된 아파트들이 불쑥불쑥 골목에서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씨엔티마트는 이 건물 1층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적당히 안으로 들어간다.

 

 

다소 작고 허름한 느낌의 가게이지만, 준비되어 있을 것은 다 준비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특히 어라운지와 다소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점으로, 이런저런 카페용 재료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패키지로 포장된 차 티백이나 라테 믹스, 시럽이나 음료 등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다만 가격표는 없다. 여기는 사실 어딜 둘러봐도 가격표가 없다. 궁금하면 점원에게 가서 물어봐야 한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다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용품들이 많이 나열되어 있다. 카페용 상품들도 많지만, 홈카페용으로 쓸 수 있는 물건들도 제법 있다. 특히 '이곳은 커피용품 가게'에서 딱 한 번 보고 그 뒤로는 어디서도 실물을 보지 못했던 핸드 로스터가 여러 종류 준비되어 있다. 도자기로 된 것도 있고, 수망으로 된 것도 있고. 폐가 좋지 않기도 하고 껍질 날리는 걸 감당하기도 어려울 것 같아서 엄두는 못 내고 있지만, 그저 구경하는 것을 즐기는 느낌이다. 샷잔이나 계량컵도 많이 준비되어 있어서 급하게 필요할 경우 여기서 살 수 있을 듯하다.

 

로비라고 하기에는 다소 애매한, 트인 공간 건너편으로 건너간다. 여기에는 다양한 홈카페용 용품들이 준비되어 있다. 드리퍼나 커피포트, 콜드브루 메이커나 가스 버너 등이 즐비하다. 쉽사리 찾기 어려운, 독특하거나 오래 된 커피용품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일본에서 들여온 듯한 휴대용 커피 그라인더, 도대체 언제 수입했는지 모를 도자기제 칼리타 커피 포트,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가스 버너, ... 그 와중에도 특히 이채를 발하고 있는 것은 의외로 다양하게, 하지만 어쩐지 모르게 오래 된 느낌이 풀풀 나는 모카포트 상자들이다. 전에 홈카페 관련 글을 적으면서 소개했던 무카 익스프레스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는 비알레띠공업 홈페이지에서도 이미 사라진 제품인 모카크렘 포트까지 있다. 도대체 언제 들여놓은 걸까 싶어서 점원에게 넌지시 물어보니, 여기 사장님도 몇 년 전에 야심차게 수입했지만 사들이는 사람이 그다지 없었던 모양이다.

 

의외로 충실하게 물건이 준비되어 있는 곳이지만, 일단 영업시간이 주중 낮에 치중되어 있다는 것이 다소 안타깝다. 일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시간에 맞춰서 찾아오기 쉽지 않다. 가격표가 하나도 붙어 있지 않는 것도 어떻게 된 일인가 싶다. 요새 가격표 없이 장사하는 가게가 어디 있겠냐만은, 놀랍게도 여기 있다. 그러다 보니 매번 직원에게 물건을 들고 가서 가격을 물어봐야 해 여러모로 번거롭다. 평일 낮에 시간이 남으면 구경 갈 만하기는 하지만, 쇼핑의 편의성을 얼마나 도모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