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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기

[방문기] 서울시 종로구 '통인동 커피공방'

by 집너구리 2021. 10. 3.

요즘 날씨가 좋아 종로에 자주 간다. 아주 주말마다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 시절 휴강만 하면 득달같이 종로로 달려가 하루종일 길거리를 헤매며 돌아다니던 때 이래로 가장 자주 다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다만 대학 시절과의 차이점이라면 주로 종로 거리 주변을 돌아다니던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지역만 종로구면 어디든 딱히 상관없다는 느낌에 가까워진 것이 아닐까. 종로 거리에도 갔다가, 인사동 앞도 지나 봤다가, 안국동 근처를 헤매다가 극우 유튜버들을 잔뜩 맞닥뜨리기도 해 봤다가 하는 식이다. 

 

최근에는 서촌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직단 근방에서 못 보던 커피집 하나를 발견했다. 사직로 앞은 매년 뻔질나도록 드나드는데, 이렇게 본격적으로 커피 용품을 취급하는 가게가 있었던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내가 본격적으로 커피에 빠진 것이 작년 말쯤인데, 사람이란 제가 관심이 없는 것에는 놀라울치만큼 신경을 쓰지 않는 존재이므로 어쩌면 그 전부터 있던 것을 내가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통인동 커피공방'이라는 이름인데, 어디서 들어 본 것 같기는 한 이름이다.

 

 

서촌 길을 걷다 보면 5분 간격으로 동이 휙휙 바뀌는 경험을 하게 마련인데, 따지고 보면 '통인동 커피공방' 건물도 통인동에 위치해 있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곳은 필운동이다. 추측하건대 원래 이 가게가 처음 문을 열었던 위치가 통인동이겠거니 싶다. 뒷길로 5분만 들어가면 누하동을 지나서 바로 통인동으로 갈 수 있으니, 안산 한복판에 '마포식당' 같은 이름을 달고 영업하는 느낌과는 천양지차다(물론 어디까지나 예시일 뿐이다).

 

 

가게의 유리문은 전부 개방되어 있어 안으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거대한 로스터기이다. '공방'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곳에서 커피를 로스팅해 판매하는 모양이다. 그 옆으로는 큰 진열장이 있는데, 주로 드리퍼와 드립 서버가 종류별로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가장 메이저한 하리오/칼리타/클레버는 물론이고 고노 드리퍼까지 있어서, 고르는 즐거움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달까, 드립커피를 위한 필터도 산더미처럼 쌓아 두고 팔고 있었다. 일반적인 종이 필터는 물론이고, 융드립을 위한 융 필터와 손잡이도 1-2인분과 3-4인분을 모두 준비해 두어, 뒤적뒤적해서 그럴싸한 것을 사기에는 제법 괜찮아 보였다.

 

원두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다양한 싱글오리진 원두는 물론이고, 이곳 특유의 블렌딩 원두인 듯한 '경복궁의 봄' 같은 원두들도 있었다. 이렇게 예쁜 패키지에 이름까지 '경복궁의 봄'이면 이거는 사라는 얘기지. 솜사탕과 매화의 향이 난다고 하는데, 내려 보고 나서 얼마나 맞아들어가는지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싱글오리진도 한 팩 살까 싶다가, 아무래도 어라운지 원두여권이 눈에 아른거려 일단 보류하는 것으로.

 

 

그러나 그보다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이곳저곳 구석에 뭉텅이로 쌓여 있는 모카포트 바스켓이었다. 아니 얘네가 왜 여기서 나와? 제법 용량이 되어 보이는 모카포트 바스켓이 한 무더기 쌓여 있는가 하면, 기둥 진열대에서는 우리가 늘상 불 때문에 태워먹고는 하는 모카포트 손잡이와 꼭지, 그리고 필터와 고무 패킹 등이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집에서 쓰고 있는 모카포트들이 하나같이 슬슬 부품 갈 때가 되었기 때문에 직원에게 내가 갖고 있는 모카포트 사이즈의 패킹이나 필터 등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안타깝게도 대용량 포트 부품밖에 없다고 한다. 좋다 말았네.

 

 

달랑 원두 한 팩만 사서 나가려다가 '커피공방'이라는 이름값이 어느 정도일지 문득 궁금해져, 차가운 카페라테 한 잔을 테이크아웃으로 주문했다. 쌉쓰름하지만 고소한 에스프레소에 우유가 잘 어울리는, 묵직한 맛이었다. 내 기준에서는 맛있어서 거의 한번에 죽 빨아들여 버리고 말았지만, 다른 사람들 입맛에는 다소 강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울 시내의 제법 큰 커피용품 가게에는 나름대로 다 발을 들여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처럼 작은 규모로 커피용품을 파는 가게는 사실 서울 어디에든 있지 않을까 하는 방향으로 생각의 방향을 선회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커피도 괜찮고 용품 종류도 생각보다 다양해서, 종로를 오가는 길에 한번씩은 들러서 슥 한 번 둘러보고 커피 한 잔 사서 나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