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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191005 Taiwan

대만유람기 2019 (2) : 대만? 중화민국?

by 집너구리 2019. 10. 20.

  먼저 용어 정리를 좀 할 필요가 있겠다.

 

  '대만臺灣, Taiwan'이란 사실 나라 이름이 아니고 지역 이름에 가깝다.

  대만 섬을 현재 실질적으로 영유하고 있는 나라의 이름은 '중화민국中華民國'이다. 아마도 90년대 초반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은 세계지도에서 '자유중국'이라는 이름이 쓰인 쬐끄만 섬을 본 기억이 있으리라. 뚜껑을 열어 보자면 그 당시의 '자유중국'도 딱히 '자유'롭지는 않은 나라였지만, 어쨌든 요즈음은 '자유중국'이라는 이름 자체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힌 지 오래인 듯하다.

 

청천백일만지홍기

  중화민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 된 민주공화국이다. 

  1947년 이전까지만 해도 중화민국은 지금의 중국을 지배하고 있었으나, 국공내전에서 국민정부가 중국공산당에게 패배한 이후 대만으로 옮겨 오면서 지금처럼 대만 섬과 부속 도서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냉전 시기 한동안 중화민국은 국제 사회에서 정통 중국 정부로서의 지위를 누려 왔지만, 1971년 UN에 중화인민공화국이 가입하는 과정에서 쫓겨나다시피 UN에서 탈퇴함으로써 그마저도 상실하게 되었다. 중공의 영향력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중화민국과의 수교를 단절하는 국가(일본의 침략에 같이 맞서 싸웠던 대한민국을 포함해서)가 많아진 끝에, 오늘날의 중화민국은 엄연히 국체를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해외에서 제대로 된 나라 취급을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중공의 치사한 압박으로 인해 자기 나라 국기도 해외에서 맘껏 내걸지 못하는 설움을 풀고 싶기라도 한 듯이, 대만의 거리는 온통 국기인 청천백일만지홍기靑天白日滿地紅旗로 가득하다.

 

  '대만'이라는 지역의 역사는 이보다 조금 더 복잡하다.

  대만 섬은 원래 중국의 역사와는 크게 관련이 없는 곳이었다. 오랫동안 이 곳은 한족과는 다른 원주민들의 터전이었으나, 대항해시대 네덜란드인들이 오늘날의 타이난에 들어오면서 세계사의 무대 전면에 등판하기 시작한다. 곧 네덜란드인들은 당시 명나라 부흥 운동을 벌이고 있던 정성공鄭成功과 한족들에 의해 쫓겨났고, 정성공의 정씨 왕국도 얼마 가지 않아 청나라에 편입되면서 대만청치시기臺灣清治時期가 시작된다. 청나라의 지배는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해 대만을 할양받아 가면서 종지부를 찍고, 이 때부터 대만은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게 된다.

  일제 강점기 조선과 달리, 대만은 비교적 온건한 통치 하에 놓여 있었다고는 한다. 그 탓인지 대만 거리를 거닐다 보면 유독 일본어 간판이 눈에 많이 띄고, 대만 어디를 가든 일본인 관광객이 있으며, 심지어 자기네랑 비슷하게 생겼는데 중국어나 대만어를 못 알아듣는 외국인이다 싶으면 일단 일본어로 말을 걸고 보는 분위기가 있다. 그러나 대만이라고 일본 제국의 탄압과 차별이 없었던 것은 아니며, 이에 저항하는 독립운동가들도 많았다고 한다. 다만 국제무대에 등판한 이후로 한번도 대만 고유의 세력에 의한 국가를 가진 적이 없었다 보니, 일제 강점기 또한 이전의 다른 외래 정권들과 큰 차이가 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일본이 물러난 이후로 이 지역은 중화민국 국민정부의 지배 하에 놓였으며,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국민정부가 1947년 12월에 대만으로 옮겨오면서 대만은 나라 이름이 아니면서도 묘하게 나라 이름 대신 쓰이는 지역명이 되었다. 이러한 복잡한 역사로 인해, 대만에서는 오늘날에도 '중화민국'이라는 국체 자체를 달갑게 여기지 않고 '대만'이라는 이름으로 나라를 다시 세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먼딩에 당당히 걸려 있는 독립파의 상징 '대만공화국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