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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기

[방문기] 서울시 서대문구 '로라Rora'

by 집너구리 2022. 8. 21.

머리를 싸매던 프로젝트가 마침내 일단락된 7월 초의 어느 날, 간만에 일찍 일을 마무리한 덕에 조금 멀리까지 외식을 하러 갈 여유가 생겼다. 아내가 예전부터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던 이탈리아 식당 '로라Rora'로 향한다. 뇨끼를 잘 하는 가게라는 소식이다. 다른 파스타면 몰라도 뇨끼는 집에서 해 먹기가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감자를 찌고, 으깨고, 다시 밀가루를 섞어서 반죽하고, 또 그걸 삶는 일련의 과정이 너무 번거롭기 때문이다. 때문에 뇨끼를 잘 하는 집이 있다고 한다면 아무튼 한 번 방문해서 먹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아무리 요리를 좋아한다지만 역시 남이 해 주는 밥을 먹고 싶을 때가 누구나 있기 때문이다.

 

증산역에서 불광천을 한 번 건너서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간판 없이 차양만 내걸려 있는 가게 하나가 눈에 띈다. 이 가게가 그 가게가 맞는지 확인할 방도는 외창에 붙어 있는 타이포체의 'Rora'라는 상호명뿐이다. 평일 저녁 일곱 시라는 살짝 늦은 시간에 도착했지만, 그래도 사람이 엄청 많지는 않았다. 때에 따라서는 줄을 설 정도로 붐빈다고 하는데, 날씨가 워낙 더워서 그런가, 운이 좋은 듯하다.

 

특이하게도 가게를 양쪽으로 분리해서, 한쪽은 주방 겸 직원 공간으로 쓰고 있고, 한쪽은 식사 공간으로 쓰고 있다. 인테리어는 모던하면서도 따뜻한 느낌. 문 밖에 있는 무화과나무부터 시작해서 가게 안에도 나무가 몇 그루 있는 것이 이채롭다. 딱 한 가지, 바깥에 세워 놓은 메뉴판이 전부 로마자로 되어 있는 것만큼은 아쉬웠다. 로마자를 읽고 뜻까지 완벽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무슨 음식을 팔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 않을까.

 

다행히도(?) 메뉴에는 한국어도 표기되어 있다. A4 용지에 인쇄되어 나오는데, 계절에 따라 메뉴가 조금씩 달라진단다. 듣기로는 겨울에는 단호박 뇨끼가 나온다고! 방문한 때는 여름이라서 그런지 상큼한 느낌의 바질크림소스로 만든 뇨끼가 나온다고 한다. 바질크림소스 뇨끼 한 접시는 일단 확정이고, 한참을 메뉴를 붙잡고 고민하다가 까르보나라에 크림을 넣지 않는다는 말을 믿어 보기로 했다. 물론 크림 까르보나라도 그럭저럭 괜찮은 메뉴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크림 없이 정말 달걀과 관찰레,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를 써서 만드는 까르보나라는 여간 만나기 어려운 메뉴이기 때문이다.

 

로라에서는 커피를 비롯한 음료류도 파는 모양인데, 재미있게도 식탁에 비치되어 있는 감미료가 전부 무열량 감미료다. 종류도 네 가지나 되는데, 성분이 다 조금씩 달라서 더 흥미롭다. 포장지를 늘어놓고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윽고 올리브유를 곁들인 식전 빵이 나온다. 폭신폭신하고 따뜻하다. 식사빵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질감과 고소함. 올리브유를 찍어 먹으니 향이 퍽 좋다. 한식집의 수준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김치를 먹어 보면 되듯, 양식집의 수준을 가늠할 때에는 빵만한 것이 없다. 이 정도면 조금은 기대해 볼 만한 듯하다.

 

바질크림소스를 곁들인 구운 감자 뇨끼
유기농 달걀, 관찰레, 페코리노 로마노,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로 만든 까르보나라

잠시 기다리니 본식 메뉴인 뇨끼와 까르보나라가 나왔다. 일단 뇨끼부터 한 입. 씹는 식감이 어느 정도 있는, 쫄깃한 느낌의 뇨끼 반죽이 제법 괜찮다. 바질과 마늘의 향기가 은은하게 나는 크림소스와 같이 먹으니 뇨끼의 부드러운 식감과 바질의 코를 찌르는 향긋함이 잘 어우러진다. 퍽 괜찮은 한 끼 식사. 얇게 썰어 올린 치즈와의 조합도 좋다. 이 정도면 가끔씩 생각날 때 와서 한 그릇씩 먹으면 좋을 듯하다. 추천할 만하다.

 

다음은 까르보나라. 크림이 잔뜩 들어가 질척한 느낌마저 주는, 일반적인 한국 양식당에서 내어 주는 까르보나라와는 달리 기본에 충실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치즈와 관찰레가 베이스인 소스이다 보니 기본적으로 한국 사람 입맛에는 살짝 간이 세게 느껴질 순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소스에 충실하게 감싸진 면의 맛 자체는 훌륭하다. 살짝 설익은 듯 심이 살아 있는 이 정도가 나로서는 딱 맛있게 느껴진다. 오히려 소스가 조금 더 꾸덕꾸덕한 느낌이었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 이 정도면 괜찮은 맛이지 않나 싶다.

 

밥 하기 귀찮은, 아니 사실 만사가 귀찮은 여름 저녁에 아내와 즐거운 식사 한 끼를 하기에는 딱 좋은 느낌의 식당이었다. 겨울에는 단호박 뇨끼를 판다고 하니, 그 때도 한 번 와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