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문기

[방문기] 서울시 마포구 '코니 카페'

by 집너구리 2022. 8. 28.

성산동 일대에 산 지 3년이 넘어간다. 마포구 중앙도서관을 종종 들르곤 하는데, 우연한 기회로 이 근처에 가성비가 무척 좋은 카페가 하나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것이 거의 2년도 더 전의 일이다. 내가 시간이 되면 카페가 문을 닫거나, 카페가 열어 있어도 내 동선에 안 맞아 못 가는 일이 이어졌다. 그러다 어제가 되어서야 마침내 내 동선과 카페가 여는 시간이 딱 맞아떨어지기에, 한번 방문해 보기로 하였다. 마포구청역과 가좌역 사이 그 어드메, 중앙도서관 바로 뒤에 있는 '코니 카페'이다.

요즘 카페가 워낙 어디든 있다고는 하지만 코니 카페는 한적한 주택가 한구석에 갑작스럽게도 존재하고 있다. 그것도 나름대로 존재감이 강한 외견을 하고 있다. 벽돌로 쌓아올린 화단에 고춧대와 분꽃 같은, 오래 전에 살던 고향의 아파트에 심겨져 있던 것과 같은 식물들이 듬성듬성 심겨져 있다. 어쩐지 정겨운 느낌이다. 앞에 웬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한 분이 느긋하게 앉아서 바람을 쐬고 계시다가, 내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호닥닥 쫓아 들어오셨다. 이 분이 카페 주인이신 모양이다.

전반적으로 요즘 물가를 생각하면 퍽 메뉴 가격들이 싼 편이다. 하다못해 에스프레소도 한 잔 마시려면 삼천 원 정도는 내야 하고 라떼쯤 되면 오륙 천원 정도는 족히 되는 세상인데, 가장 비싼 에이드류가 사천 원 남짓, 커피류는 숫제 사천 원을 넘기지 않는 가격이다. 대신 메뉴 종류가 퍽 단촐한 편이다. 커피류는 다섯 종류, 그 외의 음료는 잎차와 밀크티, 핫초코, 에이드류가 전부. 빵도 스콘 두 종류만을 팔고 있다. 메뉴에는 없지만 가게에 에스프레소 머신은 있기 때문에, 히든 메뉴로서 에스프레소를 부탁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추측해 보기는 하지만, 그건 확실치 않다. 사실 굳이 에스프레소를 시켜서 먹어 보고자 하는 생각도 딱히 들지 않는다. 이 가게의 주력이라고 하면 뭐니뭐니해도 핸드드립이기 때문이다.

 

다섯 시 오십 분을 살짝 넘긴 시각, 이미 집에서 콜드브루 커피를 우유에 타서 아침점심 두 잔이나 내려 먹은 상태다. 세 잔째 커피라니 이렇게 카페인 중독자 같은 짓을 하기란 참 오랜만이다. 쾌청하기 짝이 없는 바깥을 기분 좋게 걷고 온 상태라, 이 기분을 계속 가져가고 싶어서 상쾌한 느낌의 에티오피아 한 잔을 주문했다. 따뜻한 것으로. 처음 가는 동네 카페에서는 일단 따뜻한 커피를 부탁하는 것이 습관 아닌 습관이다. 어중간하게 커피 취미를 가지고 있는 탓이기도 한데, 가장 기본적인 방법으로 내린 커피를 마셔 보면 대강의 느낌이 오기 때문이다. 커피를 주문하고 계산을 한 뒤, 창 밖이 내다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아 내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리기로 한다.

뭐라고 할까, 무척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의 감성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듯한 인테리어다. 예전에 어머니가 베란다에서 식물 키우기에 한참 몰두했을 무렵 우리 집에도 있었던 모양새의 고풍스러운 도자기 화분에 제각기 큼지막한 식물들이 심겨져 있고, 사뭇 오래 되어 보이는 탁자와 의자, 심지어는 누군가 치는지도 알 수 없는 업라이트 피아노까지. 희한할 만큼 친근하다. 카페라기보다는 차라리 누구 아는 사람 집에 놀러 온 것 같은 느낌이다.

 

가게 안을 한 바퀴 돌아보고 있는 사이에 사장님이 커피를 내리기 시작한다. 손놀림은 느긋하지만 물 흐르듯. 물을 받아다 끓이고, 원두통에서 원두를 꺼내 계량한 뒤 그라인더에 넣고 갈고, 예열한 컵 위에 드리퍼를 올려놓고 종이 필터를 얹는 부분까지 구경한 뒤, 계속 지켜보고 있자니 사장님께 부담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마침 창가 옆으로 큼지막한 식물들이 나름의 내부 정원 또는 구획 울타리 비슷한 느낌으로 놓여 있길래 이 녀석들을 구경하기로 한다.

 

호접란을... 흙에서 키워...? 꽃까지 피웠어?

개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세 촉 정도 심겨져 있던 호접란이었는데, 놀랍게도 일반적인 밭흙에 심겨져 있었다! 호접란 같은 착생성 난초는 일반적인 흙에서 키우면 과습이 와서 죽기 딱 좋은 상태가 되기 때문에 초보자들뿐 아니라 난초를 무척 오래 키운 분들도 흙이 아닌 바크나 난석, 수태 등에 붙이다시피 해서 키우는 경우가 많다. 근데 여기 있는 호접란들은 전부 흙에 심어져 있는데다가 상태도 퍽 괜찮았다. 알고 보니 식물 고수이신 걸까. 사장님과의 내적 친밀감을 조금씩 올려 가고 있는 도중에, 사장님이 다 된 커피를 가져다 주셨다.

 

받침과 잔의 무늬가 다른 것까지 어쩜 이렇게 '집에서 내린 커피'의 느낌이 물씬 풍긴담. 커피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가시면서 사장님이 한 마디 덧붙이신다. "우리 집 커피 맛있어요, 한 번 드셔 보세요." 그 말에 이끌리듯 향기를 한 번 맡아 본다. 꽃향기 비슷한 기분 좋은 향기가 나는 에티오피아 원두 특유의 느낌이 잘 살아 있다. 한 모금 입에 머금는다. 혀를 데일 정도로 뜨겁지도 않고, 그렇다고 한 입에 다 털어넣을 수 있을 만큼 식어빠지지도 않은, 향과 맛을 음미하기 딱 좋은 정도의 온도. 그 다음으로 느껴진 것은 향이었다. 커피가 물론 쓰다지만, 쓴맛 이전에 은은하게 코와 입을 감싸는 꽃향기랄까, 과일 향기랄까, 상큼한 향이 그보다 먼저 올라온다. 직감이 온다. 이건 맛있는 커피다. 마트를 들렀다 집으로 돌아가 저녁을 차려야 하는 상황만 아니라면, 빵 한 조각까지 같이 시켜 놓고 천천히 음미하고 싶을 만큼 퍽 괜찮은 커피다. 괜히 그렇게 자신감 넘치는 표현을 쓰신 것이 아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맛있는 한 잔이다.

 

여름 더위가 한풀 꺾여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맑은 토요일 오후, 콧바람을 한껏 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렇게 맛있는 커피를 만나기까지 하니 기분은 최고조에 달한다. 마음 같아서는 이런저런 다른 음료나 스콘도 도전해 보고 싶지만, 집에 사랑하는 아내가 있으니 밥을 해 주러 돌아가야 한다. 그래도 맛나게 내려 주신 커피에 대한 최소한의 답례로 10분 정도에 걸쳐 최대한 천천히 커피를 음미한 뒤, 사장님께 빈 컵을 갖다 드리면서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맛있는 커피였네요. 잘 마셨습니다." 라고 한 마디를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는다. 빈말이 아니니 더욱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사장님이 마스크 너머로 푸근하게 웃으시며 "맛있으셨어요? 감사합니다. 또 놀러 오세요." 라고 화답하신다. 여유만 있다면야 흔쾌히 그러고 싶다. 커피 한 잔 하면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는 것도 좋겠다.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하고 가게를 나온다. 하늘은 티없이 맑다. 맛있는 커피 한 잔을 마셨으니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지. 장을 봐야 할 것들은 많지만 발걸음은 더할 나위 없이 가볍다. 눈 뜨고 있어도 코를 베어 간다는 서울이라지만 이곳 성산동에는 이렇듯 아직 괜찮은 가게가 퍽 많다. 건강하시고 번창하시길. 또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