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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하야시야 히코로쿠 이야기

by 집너구리 2021. 3. 27.

라쿠고 이야기를 기묘하게도 꾸준히 적게 된다. 한국에는 워낙 팬이 적다 보니,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어도 이야기할 만한 상대가 없어 별 수 없이 이렇게 글로나마 적어 두며 적적한 마음을 푸는 것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에 이미 노령으로 세상을 떠난 라쿠고가가 있다. 그러나 그의 별세 이후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젊은 라쿠고 팬들은 아마 그의 말투나 행동거지에 대해 마치 직접 본 듯이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어떻게? 그 답은 스승이 돌아가실 무렵의 나이에 거의 가까운 연령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맹렬히 활동하고 있는 그의 제자가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살아 있는 제자로 인해 돌아가신 스승이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셈이다.

 

라쿠고가의 이름은 시간에 따라 종종 변하곤 한다지만, 그의 이름은 개중에서도 퍽 자주 바뀐 셈이다. 태어날 때의 이름은 오카모토 요시岡本義, 처음 입문할 때 스승에게 받은 이름은 산유테이 후쿠요시三遊亭福よし, 사형과 일문의 총수 자리를 놓고 다투던 시절의 이름은 초카로 바라쿠蝶花楼馬楽, 가장 오랫동안 그를 대표하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던 이름은 하야시야 쇼조林家正蔵, 만년에 스스로 지어 마지막으로 알려진 이름은 하야시야 히코로쿠林家彦六. 이외에도 두세 개의 이름이 있지만, 오늘날 그를 가리켜 부르는 이름은 '8대 하야시야 쇼조' 내지는 '하야시야 히코로쿠'의 두 가지이다.

 

5대 초카로 바라쿠 시절의 하야시야 히코로쿠(1895-1982).

 

사진만 봐도 깐깐하고 똑 부러질 것 같이 생긴 이 영감님이야말로 쇼와 시대의 라쿠고 명인 중 한 사람으로, 특히 괴담의 명수로서 이름이 높은 이야기꾼이었다. 그는 늘상 느릿느릿한 말투로 이야기했지만 특유의 카리스마로 분위기를 휘어잡는 데 능했으며, 스스로 생각하기에 필요없다고 생각되는 대목은 자연스럽게 생략하면서도 흐름을 절묘하게 조종하여 이야기에 깊이를 더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괴담의 명수라고는 하나 라쿠고의 진면목인 골계 이야기(우스꽝스러운 이야기)도 능숙하여, 평소의 그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능청스러운 표정과 말투로 좌중을 폭소로 몰아넣기도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벌써 40년도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난 영감님을 덕질할 건덕지가 무엇이 있느냐고 한다면, 하야시야 히코로쿠라는 인물 자체가 파도 파도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히코로쿠에 얽힌 에피소드 중 대부분은 그의 제자들과 동료들이 라쿠고나 방송, 책 등의 매체를 통해서 풀어낸 이야기들로부터 비롯된다. 메이지 시대에 태어나 쇼와 시대까지 일본의 격동기를 살아가면서도 그는 옛 에도 시대의 풍취를 잃지 않았고, 이른바 '시타마치(에도 시대의 서민 거주지)의 꼬장꼬장한 이야기꾼 영감님'의 대명사로 지금껏 통하고 있다. 80 남짓한 평생 동안 일본의 격동기를 한몸으로 살아낸 탓에 신문물을 접할 일도 많았고, 이야기꾼이 되고서 죽을 때까지 "이야기꾼은 이야기의 세계 속에서 살며 부를 탐하지 않아야 한다"며 평생을 에도 시대풍의 집단주택인 '나가야'에서 살면서도 의외의 개방성을 보여 주는 일들이 많았다.

 

이렇게 흥미로운 인생을 살았던 그의 이야기들을 오늘날까지 가장 활발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제자가 바로 일본 최장수 예능 프로그램 <쇼텐笑点>의 고정 출연자 하야시야 키쿠오林家木久扇이다. 처음 내제자로 들어가 후타츠메(라쿠고가의 단계 중 두 번째로 높은 지위)가 될 때까지 스승의 시중을 들었던 그는, 가장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스승을 지켜보며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모으고 일부 각색하여 그의 대표작 <히코로쿠전彦六伝>을 만들었다.

 

 

 

하야시야 키쿠오는 특유의 얼간이 캐릭터 이외에도 놀라울 만큼 성대모사에 능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의 성대모사 능력 중 가장 훌륭한 것이 바로 스승 히코로쿠의 성대모사이다. <히코로쿠전>을 공연하며 그가 보여주는 히코로쿠 흉내를 보다가 히코로쿠 본인의 라쿠고 영상을 보게 되면 도무지 누가 히코로쿠이고 누가 키쿠오인지 알 수 없을 수준이다. 이 글에서 앞으로 이야기할 히코로쿠의 에피소드들 중 다수는 <히코로쿠전>을 통해 제자 키쿠오가 늘상 이야기하는 것들이다.

 

명인들의 자존심 싸움

하야시야 히코로쿠의 일문인 '하야시야'는 에도 라쿠고의 양대 파벌 '야나기파柳派'와 '산유파三遊派' 중 야나기파에 속하지만, 히코로쿠가 라쿠고의 세계에 입문한 젊은 시절 그는 산유파 계열의 제자였다. 당시 사형이었던 인물들 중 한 사람이 훗날 라쿠고계의 대표적인 명인이자 '라쿠고협회 분열소동'의 중심 인물이 된 6대 산유테이 엔쇼6代目三遊亭圓生였다. 엔쇼와 히코로쿠는 당시 라쿠고계의 대표적인 앙숙이었는데, 엔쇼가 산유테이 일문의 총수가 받는 이름인 '엔쇼'를 물려받을 당시 히코로쿠가 '사형이 6대 엔쇼로서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대놓고 극딜을 시전해 버리기까지 할 정도였다. 그러나 당시의 노인네들이 다 그랬듯이(?) 만나기만 하면 서로 으르렁대기 바빴음에도 불구하고 엔쇼가 먼저 퇴근할 때면 히코로쿠가 늘 '추우니까 따뜻하게 입고 댕기슈'라는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고 하며, 서로가 있는 자리에서는 곧 죽어도 서로의 재주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다른 이들을 상대로는 서로가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후일 엔쇼가 죽었을 때, 모두의 예상과는 반대로 히코로쿠는 옛 사형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기 위해 유족과 함께 화장터를 찾았고,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작가 세키야마 카즈오에게 "이렇게 훌륭한 명인은 두 번 다시 나오지 않을 테니, 선생님께서는 부디 저 양반에 대해 많이 칭찬을 좀 해 주십시오."하고 당부했다.

 

빌린 이름은 반드시 돌려주어야

히코로쿠가 가장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이름인 '하야시야 쇼조'는 하야시야 일문의 총수만이 받을 수 있는 이름인데, 여기에는 긴 사연이 있다. 입문은 산유파로 했지만 중간에 우여곡절을 거쳐 야나기파의 총수였던 3대 야나기야 코산의 제자가 되었고, 스승이 은퇴하면서 사형인 4대 초카로 바라쿠 문하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후 야나기파 총수의 이름인 '야나기야 코산'의 5대째를 누가 이을 것인지를 두고 사제와 경쟁하였으나 패배하고 대신 얻은 것이 당시 비어 있었던 '하야시야 쇼조'의 자리였다.

전대인 7대 쇼조는 아들 하야시야 산페이를 두고 일찍 죽은 상황이었는데, 히코로쿠(당시 5대 초카로 바라쿠)는 7대 쇼조의 아내와 그 아들 산페이의 동의를 얻어 '단 1대 동안만 '쇼조'라는 이름을 빌려 쓰고, 산페이가 장성하면 이름을 돌려준다'는 약조를 한 뒤 스스로를 8대 쇼조로 칭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산페이가 장성하여 폭소계의 다크호스로 떠오르며 유명세를 타자 그의 어머니는 약속대로 '쇼조'라는 이름을 아들에게 돌려줄 것을 요청했고, 8대 쇼조도 흔쾌히 그러마고 하였다. 그러나 산페이는 "선생님께서 쓰고 싶으실 때까지 이름을 계속 쓰십시오"라고 쇼조에게 정중히 요청했고, 쇼조는 이를 받아들였으나 마음 속에는 꾸준히 부채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안타깝게도 하야시야 산페이는 50대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8대 쇼조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고, 그의 사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8대 쇼조는 늦었지만 약속대로 이름을 산페이의 집안에 돌려주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자신은 감명깊게 본 영화 속 한 인물의 이름을 따 스스로를 '하야시야 히코로쿠'로 칭하였다. 히코로쿠가 별세하기 1년 남짓 전의 이야기이다.

 

내가 내 집에 들어가겠다는데

 

히코로쿠는 열정적으로 지방 공연을 다니곤 했는데, 한번은 조금 멀리 출장을 갔다가 비행기를 타고 하네다 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무척이나 비행기의 착륙이 지연되어, 히코로쿠를 태운 비행기는 하네다 공항 상공을 몇 번씩이고 빙글빙글 돈 다음에야 비로소 활주로에 착륙할 수 있었다. 바로 창 아래에 도쿄 만이 훤히 보이는데 착륙을 못 하다니! 히코로쿠는 무척 화가 났다.

"내가 내 집 현관 문턱까지 왔는데 못 들어가게 하는 법도가 어디 있느냐!"

이 한 마디를 남긴 히코로쿠는 그 이후로 지방 공연을 다닐 때 다시는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 대신 신칸센을 타고 다녔는데, 꼭 한 시간은 먼저 역에 도착하는 습관이 있어 제자들이 늘상 말렸음에도 "무슨 일이 있을지 어떻게 아느냐"는 한 마디로 제자들을 매번 물먹이곤 했다.

 

나는 포로가 아니다

 

옛날 이야기를 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에도 시대부터 내려온 나가야에 평생을 살았던 히코로쿠이지만, 그는 의외로 서양 문물을 퍽 즐겼던 모양이다. 아침은 반드시 잘 구운 토스트에 잼을 발라 커피와 함께 먹었고, 출타할 적에는 영국 신사마냥 멋들어지게 차려 입고 꼿꼿한 자세로 돌아다녔다고. 누군가와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가 길어질 것 같으면, "저희 집에 가서 커피라도 한 잔 하시지요"라고 권하곤 했다.

하루는 제자 키쿠오(당시 이름은 '키쿠조')가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빵을 자르고 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히코로쿠가 한 마디를 던졌다. 

"얘 키쿠조, 빵 가운데 가장 훌륭한 부분이 어느 부분인지 아느냐?"
"빵 가운데 훌륭한 부분이요? 그야 가운데의 부드러운 부분이 아니겠습니까?"
"예끼 이놈, 아니다. 잘 들어라. 예전 러시아의 포로 수용소에서는 말이다, 포로들 가운데 감시하는 놈들을 소수 뽑아서 서로를 감시하게 했다. 이때 식사로 빵을 나눠 주는데, 이 감시하는 놈들은 빵 껍질을 깎아 말랑한 부분은 다른 포로들에게 주고 딱딱한 부분은 제들이 먹었다. 이렇게만 들으면 제놈들이 무슨 대단한 인격자인 줄 알겠지만, 그렇지 않다. 말랑한 부분은 소화가 잘 되기 때문에 더 빨리 배를 곯는다. 그러나 딱딱한 껍질 부분은 소화가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오랫동안 배를 곯지 않고도 버틸 수 있다. 그러니 빵의 가장 훌륭한 부분은 껍질이라 이 말이다."

이 이야기에 감명을 받은 키쿠조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빵의 껍질 부분을 정갈히 잘라 잼을 발라 스승에게 커피와 같이 갖다 드렸다. 이것을 본 스승 히코로쿠, 파들파들 떨며 키쿠조를 노려보며 일갈했다.

"이놈 키쿠조, 나는 포로가 아니다!"

 

위문 공연

다이토 구청 바로 옆에 사는 명인을 높으신 분들이 그대로 둘 리가 없다. 대대로 다이토 구청장들은 취임할 때 히코로쿠에게 인사를 오곤 했고, 때로는 그에게 이런저런 부탁을 하러 찾아오기도 했다. 한번은 구청장이 히코로쿠에게 이런 부탁을 하러 왔다.

"선생님, 이번에 요 옆 동네에서 축제를 하는데, 그 일환으로 근방에 있는 양로원에 위문 공연을 좀 열려고 합니다. 외람되오나 선생님께서도 꼭 한 번 와 주실 수 있을까요?"

소위 말하는 '에도 토박이' 답게 삐뚤어진 것을 싫어하고 부탁을 받으면 거절하지 못하는 성정을 가진 히코로쿠는 좋은 일을 한다는데 마다할 수 없다며 그러마고 했다. 며칠 뒤 양로원 위문 공연에 다녀온 스승을 키쿠조가 맞이하러 나갔는데, 길목에서 만난 스승은 무척이나 화가 나 있었다. 이유를 묻는 키쿠조에게 히코로쿠가 던진 말.

"다 나보다 젊은 것들뿐이잖느냐!"

이 때 히코로쿠의 나이는 이미 80대였다.

 

 

희한한 초콜릿

 

쇼와 시대의 거장답게 히코로쿠는 많은 제자를 두었고, 그 밑으로 또 제자들이 들어와 명절이나 기념일이 되면 히코로쿠의 좁아터진 나가야 셋방은 제자들로 우글우글하곤 했다. 키쿠조는 이 때를 우스꽝스럽게 표현해, "제자들이 오면 대접해야 하니 스승님과 사모님은 마당으로 나와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회고한다.

한번은 히코로쿠의 생일이 되어 제자들과 사손들(제자의 제자)이 모두 히코로쿠의 나가야 셋방에 모였다. 다들 스승님께 생일 선물을 드리는데, 제자들이 선물을 고르느라 부담될까 봐 히코로쿠가 내린 엄명이 "천 엔 이상의 선물은 절대 받지 않겠다"였다. 이 말을 들은 히코로쿠의 첫째 제자의 제자, 그러니까 히코로쿠의 사손인 슌푸테이 코아사春風亭小朝가 떠올린 선물은 아몬드 초콜릿이었다. 당시에는 아몬드 초콜릿이 시장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인데, 가격도 그리 부담되지 않는데다가 새로운 문물이니 서양 문물과 군것질거리를 좋아하는 히코로쿠에게는 제법 괜찮은 선물거리가 될 것 같았다. 

과연 히코로쿠는 선물을 받고 신기해했는데, 아무래도 아몬드에 초콜릿이 코팅되어 있다 보니 본 적도 없는 타원형의 희한한 초콜릿이라 한참을 노려보다가 입에 넣고 오물오물 턱을 움직였다. 좌중이 대스승의 표정을 주목하고 있는 가운데, 히코로쿠는 한참을 우물거리다가 입 속에 손을 넣고 초콜릿 코팅이 다 빠진 아몬드 알맹이를 꺼냈다. 그것을 또 한참 노려보더니 히코로쿠가 내뱉은 한 마디.

"이놈 코아사야, 이 초콜릿에는 씨앗이 있구나!"

 

임자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히코로쿠의 대기실에는 수많은 팬들이 찾아와 선물을 주곤 했다. 한번은 히코로쿠의 오래 된 팬 중 한 사람이 그에게 신기한 물건 하나를 안겨 주었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

"쇼조 선생, 내가 이번에 한국엘 놀러 갔다 왔거든요. 거기서 김치라는 걸 먹어 봤는데, 뭔가 생선 냄새랑 마늘 냄새가 많이 나고 시뻘거니 맵긴 한데 짭조름하니 술안주로는 제격이겠더라고요. 그래서 선생 생각이 나서, 맥주랑 같이 안주로 드시라고 한 번 사와 봤으니 드셔 보세요. 뭐가 많이 묻어 있더라도 원래 그런 거니까 그냥 그대로 드시면 됩니다. 씻거나 그럴 필요 없어요."

이 이야기가 있었던 시절이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이니, 일반적인 일본인들에게 김치는 무척 생소한 음식이었을 테다. 어쨌든 손님이 외국에서 사온 귀한 물건이라니 감사히 받아 들고 돌아온 히코로쿠는 아내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여보 임자, 내 목욕탕엘 좀 다녀올 건데, 이거 손님이 준 김친가 뭔가 하는 음식이라오. 이따가 목욕탕 갔다 와서 맥주랑 같이 먹게 준비 좀 해 주시게. 그대로 대접에 담아서 주면 되니까."

이 말을 남기고 히코로쿠는 동네 목욕탕으로 훌쩍 사라졌고, 아내는 술상 준비를 하기 위해 그 김치라는 물건을 열어 보았겠다. 별안간 아찔할 정도로 강렬한 젓국 냄새와 마늘 냄새가 그의 코를 찔렀다. 

"에그머니나, 이게 뭐람?"

시뻘겋게 무쳐진 배추가 자작한 국물 속에서 강렬한 냄새를 풍기고 있으니, 김치라는 음식을 생판 처음 본 일본 할머니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남편의 당부는 간 데 없고, 뭔가 상한 것이 아닌가 싶어 그는 김치를 꺼내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었다. 양념기가 가시고 조금 냄새가 덜해진 것 같다 싶자, 대접에 담아서 차디찬 맥주병과 함께 찻상에 올려 두었다.

이윽고 히코로쿠가 잔뜩 기분이 좋아진 채로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까 이야기했던 김치를 찾자, 아내는 툇마루에 둔 찻상을 가리키면서 "당신이 말한 대로 준비해 놨어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찻상을 들여다보니, 빨갛던 김치는 온데간데 없고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간 절인배추 한 포기만 덩그마니 대접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아니 임자, 김치가 왜 이렇게 된 거야?"
"아유 말도 말아요. 무슨 냄새가 그렇게 심하게 나는지, 씻어내느라 고생했지 뭐유."

손님이 준 귀한 음식을 이렇게 만들어 놓다니! '삐죽이 히코로쿠'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히코로쿠는 화가 나면 기묘하게도 이야기꾼의 버릇이 더욱 강해지곤 했는데, 꼭 전통 시가조인 5/7/5조로 이야기하는 버릇이 그것이었다. 가뜩이나 혈압이 높아 늘 파르르 떨고 있는 그의 입술이 더욱 심하게 떨렸다.

"야이 할망구, 자네는 이 김치를, 씻었으렸다...? 그럴 거면 차라리, 마파두부도 씻어 처먹지...!"

 

 떡에 곰팡이가 피는 이유

일본에는 12월 말부터 1월 초에 집안에 엄청나게 크고 동그랗고 딱딱한 '카가미모치鏡餅'라는 떡을 장식해 두는 풍습이 있다. 히코로쿠의 집에서도 늘 새해가 되면 카가미모치를 장식해 두곤 했는데, 독립해서 나간 제자들이 늘상 스승 댁으로 제 이름이 적힌 카가미모치를 부쳐 주곤 하는 통에 히코로쿠의 좁아터진 집은 1월에는 큼지막한 떡들로 가득하곤 했다. 도저히 처치곤란이다 보니 천장에 달린 선반에 이 떡들을 올려놓고 보관하고 있었는데, 얄궂게도 떡을 보관한 선반 바로 아래 바닥에는 화로가 놓여 있었고, 이야기꾼은 목 관리를 잘 해야 하다 보니 늘 그놈의 화로에 주전자를 올려놓아 물을 하루 종일 끓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증기가 계속 떡 밑에 닿게 되고, 결국 떡 바닥 부분은 도저히 저게 먹을 게 맞나 싶을 만큼 곰팡이들이 파티를 벌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렌지색인 부분도 있고, 녹색인 부분도 있고, 분홍색인 부분도 있고... '이야, 진짜 어마어마하다' 라는 생각을 하며 멀거니 천장의 떡곰팡이들을 쳐다보고 있던 제자 키쿠조에게 히코로쿠가 말했다.

"너 마침 잘 됐다. 눈썰미가 좋구나. 저 떡들을 전부 꺼내서 국이나 끓여 먹자꾸나."

보지 말 걸 그랬다고 속으로 투덜거리며 키쿠조는 떡을 전부 꺼내 툇마루에 늘어놓았다. 그러고는 사모님에게 받은 부엌칼로 곰팡이가 든 부분을 깎아내기 시작했는데, 워낙 덤벙거리는 성격인 젊은 제자가 잘 들지도 않는 부엌칼로 서툴게 떡을 깎아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스승 히코로쿠도 걱정이 된 듯, 파들파들 떨면서 마치 토슈사이 샤라쿠의 인물화에라도 나올 법한 표정과 포즈로 키쿠조의 하는 양을 지그시 노려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스승의 뜨거운 시선을 견디지 못해, 뭐라도 이야기해야겠다는 압박감을 느낀 키쿠조가 스승에게 말을 꺼냈다.

"스승님, 저기, 떡에 곰팡이가 많이 꼈는데요. 곰팡이는 왜 끼는 건가요?"
"너 지금 나한테 질문한 게냐?"
"(꿀꺽) 예, 떡에 곰팡이가 많이 꼈는데요. 곰팡이는 왜 끼는 건가요?"

그러자 스승 히코로쿠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키쿠조에게 일갈했다.

"얼빠진 놈. 얼른 처먹지 않으니 그렇지!"

 

 

제일 맛있는 닭꼬치

 

하루는 심심했던 스승 히코로쿠가 키쿠조에게 말을 꺼냈다.

"얘 키쿠조, 너는 제일 맛있는 닭꼬치가 무엇인지 아느냐?"
"아 예, 저기 마루노우치나 이런 데 가면 팔더랬죠. 양념 살살 발라서 구워 먹으면 맛있죠."
"아니다, 제일 맛있는 닭꼬치란 건 말이다, 치바의 소토보 지방에 가야 먹을 수 있느니라."

소토보면 치바현의 해안 지대다. 궁금해진 키쿠조가 스승에게 물었다.

"소토보요? 거기 뭐 독특하게 요리하는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그렇다마다. 소토보에서는 말야, 닭을 그냥 잡아서 살을 발라 구워먹는 것이 아니다. 먼저 닭을 바닷가에 풀어놓고 벌레를 잡아먹으면서 자라게 한 뒤, 살아 있는 닭을 잡아서 모가지만 밖으로 빼놓고 모래사장에 묻는다. 그런 뒤 그 바로 앞과 뒤에 대고 모닥불을 피우지."
"아이고, 그러면 뜨겁겠네요. 닭도 못할 짓이네요."
"그럼, 뜨겁다마다. 그렇게 되면 닭이 열기 때문에 목이 영 말라서 버틸 수가 없게 된다. 무언가 마실 것을 찾아서 모가지를 쭉 빼고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보게 되면, 그때 밥그릇에 간장과 술을 섞어 닭의 모가지 앞에 갖다 둔다. 그러면 닭이 환장을 하고 그걸 들이키는데, 술이 들어가니 점점 혼미해지다 정신을 잃게 되지. 그렇게 되면 간장 기운과 술기운이 닭고기 전체에 들게 되고, 기절한 닭을 꺼내다가 털을 뽑고 도리를 쳐서 구워 먹으면 맛있으렷다."
"세상에, 그런 방법이 있군요. 스승님은 정말 아는 것이 많으십니다. 그래서 그 닭꼬치는 얼마나 맛있습니까?"

이에 히코로쿠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내 알 바겠느냐. 한 번도 못 먹어 봤느니라."

 

누가 좀 쟤들에게 알려 줘

 

하루는 키쿠조가 스승의 심부름으로 우체국에 속달우편을 부치고 돌아오는데, 거실에서 무언가 왁자한 소리가 났다. 들여다보니 스승 히코로쿠가 흑백 텔레비전을 큰 소리로 틀어놓고 열심히 텔레비전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뒤에서 조심스럽게 다가가 살펴보니, 텔레비전에서는 농구 시합을 하고 있었다. 키쿠조가 입문했을 때부터 이미 호호 할아버지였던 스승님이 웬일로 젊은 애들이나 하는 농구를 저렇게 열심히 보고 있나, 하고 그는 의아해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요새 요세에는 젊은 관객들도 많이 오니까, 젊은이들도 재미있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이런저런 공부를 하시는 게로군. 우리 스승님은 역시 훌륭하시다니까!'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스승님이 텔레비전을 뚫어저라 쳐다보며 이런 말을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거, 누가 좀 저 친구들한테 귀띔해 주면 좋을 텐데."

혼란해진 키쿠조는 스승에게 말을 걸기로 작정했다.

"스승님, 우체국 다녀왔습니다. 옆에서 보고 있었는데, 뭘 알려줘야 한다는 말씀이세요?"
"아, 그래, 키쿠조로구나, 고생 많았느니라. 너도 이리 와서 텔레비전을 좀 보려무나."

스승 히코로쿠는 연신 텔레비전 속 농구 선수들을 가리키며 키쿠조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 텔레비전 안의 젊은 애들이 공을 집어서는 그물에 넣고, 공을 집에서는 그물에 넣고 있지를 않느냐? 도대체가 저 그물에는 바닥이 없어서 계속 새는 줄을 모르는 게야."

 

이 외에도 기상천외한 에피소드들이 끊임없이 나올 만큼 정말 유쾌한 노인네였던 히코로쿠이지만,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