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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세계 성당 방문기

[세계 성당 방문기] 05.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대교구 자카르타 대성당

by 집너구리 2021. 10. 18.

 

성모승천 대성당
Gereja Santa Perawan Maria Diangkat ke Surga
등급 주교좌성당(대성당)
소재지 Jl. Katedral No.7B, Ps. Baru, Kecamatan Sawah Besar, Kota Jakarta Pusat, Daerah Khusus Ibukota Jakarta 10710 
관할 천주교 자카르타 대교구
찾아가는 길 자카르타 통근전철 주안다(Juanda) 역 도보 5분
모나스(Monas)에서 도보 7분
미사 시간(2020년 기준) 평일 오전 06:00, 오후 06:00
토요일 특전 오후 06:00
일요일 오전 06:00, 07:00, 09:00, 11:00, 오후 05:00, 07:00

 

 

자카르타 돌아다니기, 2018년 10월

생각난 김에 이제까지 다녔던 도시 중 가장 흥미로웠던 곳인 자카르타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누구나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 봤을 자카르타는 인도네시아의 수도이다. 인도네시아는 수

sankanisuiso.tistory.com

 

이 글을 쓸 때 간략하게 적었던 자카르타 대성당의 이야기를 좀 더 해 보고자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무슬림이 많이 사는 나라인 인도네시아에서도 천주교 신자의 비중은 일본의 그것보다는 퍽 높은 편입니다. 네덜란드 이전에 인도네시아에 도래했던 포르투갈인의 전도로 천주교가 전래된 이래 명맥이 유지되고 있으며, 순다 열도의 몇몇 섬들이나 서티모르 지방의 경우에는 숫제 천주교가 주류 종교의 위치를 점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수도 자카르타가 위치한 자바 섬은 예나 지금이나 이슬람교의 교세가 워낙에 강성합니다. '국교는 없지만 신앙 유무의 자유는 없는' 독특한 나라인 이곳 인도네시아에서 모든 국민은 자기 신분증명서에 이슬람교/불교/개신교/천주교/유교/전통신앙 중 한 가지를 믿고 있다고 적어야만 하는데, 말석이나마 천주교와 개신교가 이 종교들에 포함되고 있기는 합니다.

 

자카르타 대성당은 자카르타 대교구의 주교좌입니다. 본래 186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지만, 대지진으로 한번 무너졌다가 1890-1900년대에 걸쳐 재건됐습니다. 명동성당이 지어진 것이 1890년대이니 대강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셈입니다. 둘 다 고딕 리바이벌 양식으로 지어진 만큼 내부 구조도 퍽 유사합니다. 다만 명동과는 달리 투각된 세 개의 첨탑이 하늘을 찌르듯 솟아 있어 더욱 웅장한 느낌을 줍니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모스크인 '이스티클랄 모스크(독립사원)'와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도 볼거리입니다. 멋모르는 외지인이 보기에는 싸움이나 나지 않을까 퍽 두려운 일인데, 인도네시아인들은 이렇게 대성당과 대사원이 마주보고 있다는 사실을 나름대로의 자랑거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인도네시아의 건국표어 '다양성 속의 통일Bhinneka Tunggal Ika'을 가장 잘 나타내 보이는 하나의 상징적인 장소라고나 할까요. 개신교 국가였던 네덜란드의 통치 아래 탄압받던 천주교가 자연스레 인도네시아 독립운동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곳은 이른바 '인도네시아 독립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왼쪽은 이스티클랄 모스크, 오른쪽은 자카르타 대성당. 세 개의 첨탑이 두드러진다.
파사드와 첨탑.

적벽돌 외벽으로 되어 있는 명동성당과 달리, 자카르타 대성당의 외벽은 회벽으로 되어 있습니다. 다녀 본 오래 된 성당들 가운데에서는 도쿄 치요다의 칸다 성당과 유사한 느낌을 줍니다. 성당 정문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이 성당의 주보성인인 성모 마리아의 상이 조각되어 있고, 문 위에는 루카복음 1장 48절의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Beatam me dicent omnes generationes'라는 구절이 고딕체로 새겨져 있습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의 문안인사를 받고 이에 답하는, 이른바 '마리아의 노래'의 한 구절입니다.

 

(좌) 성당 내부에 붙어 있는 누군가를 기리는 푯말. (중) 고풍스러운 성수대. (우) 내부로 들어가는 문. 인도네시아말로 '미세요'라고 써 있다.

 

현관으로 들어서면 하나하나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는 장식물들이 눈에 띕니다. 사람이 많아서 자세히 구경하면서 찍기는 다소 어려웠지만, 작은 게시판이나 심지어는 성수대에도 첨탑이 달린 고풍스러운 장식을 달아 둔 것이 재미있습니다. 인도네시아 말로 '미세요dolong'라고 적혀 있는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합니다. '미세요'라고 적혀 있는데도 바깥쪽으로 당겨져 있는 것을 보니, 한국 사람이나 인도네시아 사람이나 '미세요/당기세요' 표지를 무시하는 건 매한가지인 모양입니다.

 

성당의 내부. 상당히 넓고 웅장하다.

유럽인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은 탓인지는 몰라도, 자카르타 대성당은 안이나 밖이나 아시아의 성당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유럽 어딘가의 고풍스러운 성당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원색 칠하기를 좋아하는 대만의 성당이나 어딜 가든 꼭 한복 입은 성인의 성화를 걸어 두는 한국의 성당, 무색무취하고 현대적인 느낌의 일본 성당과는 또 다른 느낌입니다. 삐죽삐죽한 고딕 스타일의 덧집이 웅장하게 달려 있는 세 곳의 제대와 프레스코로 그려진 십자가의 길 벽화, 열대의 저녁 하늘에서 새어나오는 빛이 수줍게 들어오는 스테인드글라스 창까지, 오히려 '인도네시아 고유의 색채'를 찾기는 다소 어렵습니다. 어찌 보면 유럽식 성전 건축의 진수를 일부나마 맛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할까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서구권 국가인 호주마저 비행기로 열 시간은 족히 가야 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오히려 가까운 편입니다.

 

프레스코 양식으로 그려진 '십자가의 길' 벽화 시리즈.
가운데 기준으로 왼쪽에서 본 중앙 제대(내진과 후진 부분).
측랑의 아치와 신랑 천장의 볼트. 전형적인 고딕 스타일이다. 2층은 예배 공간이 아닌 천주교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미사 시간이 거의 다 된 시점이라 미사에 참가하거나 아니면 나가서 독립사원을 둘러보거나 하는 두 가지의 선택지가 주어졌습니다. 자카르타에서 자유일정을 소화할 수 있는 첫날이자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에, 기왕 온 김에 독립사원을 마저 둘러보고 가고 싶어 미사는 패스하기로 하였습니다. 대신 최대한 많은 것을 담으려 노력했는데, 수박 겉 핥기 식으로 둘러보다 보니 영 건진 것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독특한 것 두 가지를 발견하였기에 기록해 둡니다.

 

예배당 남쪽 끝의 '피에타'상.

 

예배당 문을 들어서면 바로 맨 오른쪽 뒤 구석에,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미술에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봤을 법한 느낌의 조각상이 서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시체를 성모 마리아가 안고 슬퍼하는, '피에타'상입니다.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이 워낙에 유명하기는 하지만, '피에타'라는 주제 자체는 미켈란젤로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작업해 왔고 지금도 작업되고 있는 주제입니다. 자카르타 대성당의 피에타 상도 무수히 많은 피에타 상들 중 하나겠지요. 재미있게도 이 앞에 기도초를 봉헌할 수 있는 공간과 함께, 아이를 안은 어머니들이 그렇게들 많이 기도를 하러 와 있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자카르타 대성당의 피에타 상이 이 지역의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젊은 어머니들의 기도처'로 유명한 모양입니다.

 

자카르타 대성당의 강론대.

 

또 하나는, 1905년에 설치된 이래로 그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이곳의 강론대입니다. 목재로 만들어진 작품인데, 가장 아래층 계단에 새겨진 지옥의 형상으로부터 점차 계단을 타고 올라가 가장 높은 곳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상징적인 형태의 물건입니다.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요즘에는 거의 보지 못하게 된 물건이라 무척 이채롭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명동에도 비슷한 시기인 1915년경에 이런 강론대가 설치되었다고 하는데, 이미 1979년에 모종의 이유로 철거되어 지금은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만 당시 강론대의 천개(지붕)만은 명동의 주교좌 위에 부착되어 있는데, 유독 주교좌 위가 화려하게 장식된 천장으로 덮여 있는 데는 이유가 있는 셈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