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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세계 성당 방문기

[세계 성당 방문기] 06. 호주 시드니 대교구 세인트 메리 대성당

by 집너구리 2022. 10. 2.
성모 마리아 대성당
Saint Mary's Cathedral
등급 주교좌성당(대성당)
소재지 St Marys Rd, Sydney NSW 2000 Australia
관할 천주교 시드니 대교구
찾아가는 길 시드니 메트로 '세인트 제임스St James' 역에서 도보 5분
미사 시간 링크 참조

호주에서 가장 주요한 천주교 성당이자 가장 오래 된 성당들 중에 하나이기도 한 이곳은 시드니 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인 '세인트 메리 대성당'입니다. 시드니 시내에는 커다란 공원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특별한 규모를 자랑하는 시드니 왕립식물원과 뉴사우스웨일스 주립미술관, 그리고 하이드 파크를 연결하는 선상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습니다. 탁 트인 공원 너머로 하늘을 찌를 듯한 첨탑들이 솟아 있는 웅장한 성당이 서 있는 모습은 제법 훌륭한 구경거리입니다.

 

호주의 전신인 뉴사우스웨일스 식민지가 세워지고 나서 가장 먼저 설립된 가톨릭 성당 중 하나인 세인트 메리 대성당은, 그러나 지금의 모습을 이루기까지 상당히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주교좌 성당을 처음으로 건립하기 시작한 것이 1821년, 경당으로서 건립된 이 교회는 1835년 대교구가 설정되면서 주교좌 성당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865년의 화재로 첫 성당 건물은 완전히 불타 사라졌고, 1868년에 다시 새 성당을 위한 주춧돌을 놓은 이래로 완공되기까지 무려 60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게다가 성당 남쪽(위 사진에서 오른쪽)의 대첨탑은 2000년에야 완성되었고, 이로써 약 140년 간의 장대한 공사가 완료된 셈입니다. 우리가 흔히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인간 근성의 상징이라고 이야기하고는 하지만, 여기도 제법 만만치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인트 메리 대성당에 미사를 드리러 도착한 것은 저녁놀이 막 지기 시작할 무렵이었습니다. 6월 초의 시드니는 늦가을에서 초겨울 정도의 날씨, 해도 빨리 집니다. 다섯 시 반쯤 도착했는데 벌써 서쪽 하늘이 뉘엿뉘엿합니다.

뉴사우스웨일스 미술관에서 걸어 내려오게 되면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이하는 성당 부속 건물이 '챕터 홀Chapter Hall'입니다. '챕터chapter'라고 하면 한국식 영어교육을 받은 뇌로는 '여름성경학교 열리는 건물인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만, 본래 이런 서양식 성당에 부속건물로 붙어 있곤 하는 회당을 일컬어 이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챕터'라는 영어 단어가 '사제단'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는데, 말인즉슨 챕터 홀은 사제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물이라는 뜻이 됩니다. 하기는 신부님들이 모여서 회의를 할 일도 있을진대 그것을 무조건 예배당 안에서 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땅거미가 차차 내려앉는 시간, 성당 곳곳에도 어둠을 밝혀 주는 전깃불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백열등의 색과 저녁 노을, 그리고 호주의 오래 된 건축물들 특유의 적황색 벽체가 상당히 잘 어우러집니다. 사람이 많이 돌아다니지 않는 거리라 그런지 사위는 조용하고, 주위를 오가는 것은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신자들 정도입니다. 바로 길 한두 번만 건너면 밤의 화려한 시드니 도심이 펼쳐지는 곳이지만, 여기 있으니 마치 외부 세계로부터 단절된 듯한 느낌이 듭니다. 서구권 나라의 도심 한복판에서 한국 산사에 왔을 때의 느낌을 받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우리는 성당 뒤쪽으로부터 들어왔기 때문에, 입구를 바로 찾기 어려웠습니다. 성당 건물을 끼고 크게 돌아서 걷다 보니 이렇게 성당 안내도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대성당과 챕터 홀에 덧붙여 부속 학교, 수도원, 교구청 건물 등이 눈에 띕니다. 반 바퀴만 더 돌면 입구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루 종일 걸어 다리가 조금 아프기는 하지만 힘내 봅니다.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 아래로 성당 건물이 장엄하게 빛납니다. 여러 가톨릭 성당을 다녀 봤지만, 이렇게 큰 건물은 새삼스레 처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뾰족뾰족하게 솟아 있는 고딕 리바이벌풍의 첨탑이 예전에 다녀왔던 자카르타 대성당의 그것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한 바퀴 돌아보고 나서 안으로 들어갑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자 처음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역시나 거대한 규모의 예배당과 북쪽 벽에 붙어 있는 제대입니다. 명동성당도 그렇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 세워진 고풍스러운 성당들은 여전히 벽 쪽에 제대가 붙어 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습니다. 고딕 느낌이 물씬 나는, 예수와 다른 성인들의 성화를 그려 장식한 벽제대가 퍽 아름답습니다. 끝에서 끝이 어디인지조차 가늠이 안 될 만큼 넓은 성당입니다. 일단 미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습니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관습의 차이가 하나 눈에 띕니다. 한국인 가톨릭 신자들은 성당에 들어가서 제대를 향해 인사를 할 때 보통 동아시아식 전통에 따라 고개를 꾸벅 숙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호주의 신자들은 다들 한쪽 무릎을 꿇는 식으로 인사를 합니다. 이것을 '궤배Kneeling'라고 합니다. 미사를 드리는 과정에서도 인사를 할 일이 있으면 보통 다들 궤배를 합니다. 주위를 돌아보니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는 것은 우리밖에 없습니다. 지역에 따라서 조금씩 전통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새삼스레 직접 보니 신기합니다. 

아무리 오래 전에 세워진 고풍스러운 성당일지라도 요즈음은 다 현대화가 되어 있습니다. 세인트 메리 대성당도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네 명동성당도 그랬고, 가오슝의 주교좌 성당도 그랬지만, 여기저기에 스피커와 텔레비전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미사가 이루어지는 동안, 제대에서 멀리 있어 잘 보이지 않는 위치에 앉아 있는 사람이라면 이 텔레비전이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세인트 메리 대성당은 워낙 넓은데다가, 토요일 저녁 여섯 시 미사쯤 되면 이 성전을 가득 채울 만큼 사람이 많이 모이지도 않습니다. 성당 봉사자들이 여기저기에 서 있다가, 너무 멀리 떨어져 앉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싶으면 앞쪽으로 당겨 앉으라고 일일이 안내해 줍니다. 이것도 한국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미사는 나이가 많이 든 꼬부랑 할아버지 신부님이 집전했습니다. 한 시간 가량의 미사가 끝나고 나서 성당을 본격적으로 구경하려 하는데, 신부님이 우리 부부에게 다가와 대뜸 말을 걸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혹시 한국에서 오신 분들인가요?" 아니 어떻게 우리가 한국인인 줄 아셨지? 알고 보니 이 신부님, 부산교구에서 한참 계시면서 사목하셨다고 합니다. 한국인들은 언제고 제대나 성체에 인사를 할 때 고개를 꾸벅꾸벅 잘들 숙이기 때문에 구분이 간다나요. 별 생각 없이 '아 문화적 차이구나' 하고 넘어갈 뻔했던 인사 예절의 차이가 이렇게 복선으로 돌아올 줄이야. 한동안 즐겁게 이야기한 뒤, 신부님은 일이 있으셔서 먼저 떠나시고, 우리는 성당을 좀 더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여기는 신랑nave의 양 옆에 붙어 있는 십자가의 팔에 해당하는 좌측 '익랑transept'부입니다. 고딕식의 성당은 보통 십자가 모양으로 구성되어 있고, 십자가의 몸통이 되는 '신랑'의 양 옆에 위치합니다. 우측 익랑에 위치한 부속 경당은 '아일랜드 성인 경당'입니다. 트리엔트 미사에서 다수의 사제가 한번에 미사를 집전해야 할 때에는, 사제 한 명당 반드시 제대 한 대가 필요했습니다. 오늘날 명동성당에도 이러한 흔적이 남아 있지만, 그러한 전통으로 인해 오래 된 성당에는 이렇듯 여러 성인들을 위해 봉헌된 경당 형태의 벽제대가 위치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왜 아일랜드 성인일까요? 추측하기로는, 뉴사우스웨일스 식민지가 막 개척되기 시작할 무렵 영국에서는 이런저런 크고작은 죄를 지은 사람들을 뉴사우스웨일스로 보내어 식민지 개척에 동원하고는 했는데, 그 때 아일랜드 출신의 가톨릭 신자들이 다수 끌려와 여기에서 천주교 커뮤니티를 이루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당시는 마침 아일랜드 대기근이 위세를 떨치던 시대이고, 아일랜드 전체를 지배하던 영국은 먹고 살기 힘들어서 창고를 털었다든지 빵을 훔쳤다든지 하는 소소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도 관용 없이 중범죄로 취급하여 호주로 유형을 보내곤 했습니다. 이 때 형성된 아일랜드인들의 천주교 공동체의 명맥이 이렇듯 아일랜드 성인을 위한 벽제대의 형태로 이어지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입니다.

측랑aisle의 모습입니다. 고딕 양식의 성당은 이런 식으로 측랑이 기둥과 벽으로 중앙부의 신랑과 구별됩니다. 지붕의 하중을 측랑의 벽과 나눠 질 수 있도록 아치 형태로 얹힌 구조물인 플라잉 버트리스flying buttress의 모습이 확연합니다. 측랑 벽에는 하나같이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밤이 아니라 낮에 왔었다면 더욱 아름다운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을 텐데 다소 아쉽습니다. 대신에 흥미롭게 볼 만한 것은 '십자가의 길' 성화입니다. 천주교 성당에는 예수의 고난을 묵상할 수 있도록 총 14단계로 구성된 성화 혹은 장식을 전시해 두었습니다. 문맹률이 높던 시절에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의 고난기를 효과적으로 알려 주기 위해서 고민했던 여러 시도들 중의 하나입니다. 집채만한 그림이 화려하게 장식된 덧집 속에 담겨 걸려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웅장함과 장엄함이 느껴집니다. 다른 여러 성당들에 비해서는 비교적 최근에 세워진 성당이지만(세인트 메리 대성당은 대략 명동성당과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으니까요), 예술적으로는 상당히 구경할 거리가 많습니다.

 

성당의 중심부인 신랑nave, 그 중에서도 중앙 복도의 한가운데에 서서 앞, 뒤, 옆으로 성당을 돌아봅니다. 어둠 속에서 조명만으로 드러나는 웅장한 성당의 실루엣을 보고 있자면 압도되는 느낌이 듭니다. 고고히 빛나는 한가운데의 제대, 정갈한 느낌의 후면 출입구, 그리고 천장의 아름다운 격자무늬를 한 자리에 서서 돌아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신랑 정중앙의 천장에는 '시드니'의 'S'를 형상화한 듯한 중앙 장식과 동정 마리아를 상징하는 백합 문양fleur-de-lis, 그리고 푸른 바탕에 장식된 여러 별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푸른 바탕의 별은 아마도 오스트레일리아의 국기 문양, 그리고 성모 마리아의 이명이기도 한 '바다의 별mari stella'을 형상화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여기는 무슨 의미를 가진 공간인지, 그 때도 알지 못했고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왼쪽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문장이, 그리고 오른쪽에 시드니 대주교의 문장이 있는 것을 보니 무언가 상당히 권위가 있는 공간인 것 같습니다만, 확실하지 않습니다. 

고딕 리바이벌 양식의 성당이라도 오히려 찾아보기 어려운 장식물들이 있는데, 바로 '헤드스톱headstop'입니다. 이 장식품의 이름을 예전에는 '가고일'로 알고 있었는데, 자료조사를 하다 보니 이게 '헤드스톱'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문이나 창문의 위쪽 문틀에 달린 장식아치의 양 끝에 달려 있는 사람 머리 모양의 장식물입니다. 실물로는 처음 보았습니다. 미묘하게 기괴한 느낌이 드는, 흥미로운 물건들입니다. 모두 다른 모양을 하고 있으니 이런 고딕 양식의 건물에 들어갈 일이 있다면 한번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겠네요.

이건 남측에 작게 붙어 있는 익랑에 위치한 세례대입니다. 이렇게 좀 오래 된 성당에 오면 꼭 이렇게 화려하게 장식된 세례대가 있어서, 이걸 구경하는 재미도 있어요. 지금은 평시라 굳게 닫혀 있지만, 세례식이 있는 날이면 아마도 여기에서 세례가 이루어지겠지요. 문이 열려 있다면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보고 싶었는데, 다소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이 성당에서 가장 감명깊었던(?) 부분 중 하나. 모든 호주의 성당들이 다 이런 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세인트 메리 대성당에서는 기부금이나 헌금을 비접촉결제로 낼 수 있습니다. 2019년에 이미 이런 설비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신용카드나 오팔 카드를 대면 정해진 일정 금액이 결제되는 식입니다. 이 사진은 '십자가의 길 재정비를 위한 헌금'을 모집하기 위해 준비된 비접촉결제기입니다. 한국 성당이라면 아마 현금을 담을 수 있는 통이 위치해 있었겠지요. 미사 중 예물헌금을 드릴 때에도, 사람들 사이로 헌금 바구니가 도는 것은 한국과 동일합니다. 물론 헌금 바구니에 현금을 넣을 수도 있지만, 간단히 카드를 대면 딱 호주 달러로 5달러가 결제되는 식입니다. 현금을 가지고 다니는 일이 점점 줄어드는 요즘 세상에 신자들로서도 정말 편리하기 짝이 없는 지불 방식입니다. 이런 것은 하루빨리 한국에도 도입해 주면 좋을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