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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은 거창하게/식물

[취미생활은 거창하게]일산 식물가게 '푸르다'에 다녀와 보았다

by 집너구리 2022. 4. 17.

'푸르다'는 최근에 생긴 식물 가게이다.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 '그랜트의 감성'에서 두 편의 동영상에 걸쳐서 소개된 내용을 보고 흥미를 가지게 되어 인터넷에서 이리저리 찾아보았는데, 마케팅에 퍽 열심이신 듯 바이럴 포스팅이 정말 많이 나왔다. 새로 개업한 가게에서 열심히 마케팅을 하고자 하는 것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지만, 주된 판매품이나 가게의 전반적인 분위기 등 내가 정작 알고 싶은 정보보다는 '누구와 같이 가서 이렇게 예쁜 식물을 사 왔다!'는 류의 흐름으로 전개되는 비슷비슷한 내용의 문서들만 계속 읽고 있자니 다소 답답해졌다. 마침 일산 쪽에 갈 일이 생겨, 도대체 어떻게 되어 있는 가게인지 한번 구경을 가 보기로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손님을 한 명이라도 더 방문하도록 유도한다는 관점에서 봤을 때는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담당자 양반, 제법이다.

 

가게 부지 안으로 들어가면 건물이 두 동 있다. 왼쪽은 인테리어 컨셉트를 잡을 수 있도록 화분 등을 팔고 있는 공간이고, 오른쪽은 식물과 토분을 팔고 있는 비닐하우스이다. 사장님이 분재를 오래 하셔서 기본적으로는 분재원의 역할도 겸하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비닐하우스로 들어가는 문 앞에는 멋지게 수형이 잡힌 분재들이 여럿 진열되어 있었다. 다른 가게와 구분되는 '푸르다'의 정체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곳이라고 하겠다. 비닐하우스 문 오른편에 서 있는 안내 입간판을 한 번 훑어보고 안으로 들어간다.

 

 

고양에 있는 화원들을 이곳저곳 다녀와 본 경험으로 따져 보자면,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정갈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다양한 품종을 조금씩 데려다 놓고 판다는 느낌. 통로가 좁지 않아서 두 사람이 천천히 돌아다니면서 둘러보기에 충분하다. 입구 근처에는 흔히 볼 수 있는 관엽식물이나 야생화류를 주로 전시해 놓고, 왼쪽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차 희귀 식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구성이다.

 

이렇게 흔히 볼 수 있는 야생초들이나 집에서 하나씩들은 키우는 고사리류들 등이 놓여 있기도 하고, 사진으로 굳이 찍지는 않았지만 몬스테라나 히메 몬스테라(라피도포라 테트라스페르마) 등 우리에게 익숙한 입문용 관엽식물들도 구비되어 있다.

조금 더 들어가면 나무류나 덩치 큰 아스파라거스도 눈에 띈다. 율마는 집에서 이미 두 그루를 죽여 봤기 때문에 크게 욕심은 나지 않지만, 형광빛이 도는 저 연둣빛 이파리를 보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여우꼬리처럼 늘어지는 아스파라거스도 예쁘다. 아스파라거스는 이 녀석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이렇게 화분에 식재되어서 완성품으로 팔리고 있는 식물들도 있었다. 화분 가격이 포함되어 그런지 가격은 제법 비싼 편이다.

 

아카시아와 소포라, 콜로키아 등 오세아니아산 식물도 전시되어 있다. 호주 식물이 확실히 힙해 보이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키우기가 다소 까다롭다는 점도 늘 발목을 잡는다. 볕이 잘 드는 베란다라도 없지 않고서야 키우기가 영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볕도 잘 안 들고 바람도 잘 안 드는 우리 집에서 마오리 소포라가 잘 자라 주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기적이나 다름없다.

 

아카시아 존을 지나 조금 더 들어가면 보통의 화원에서 찾아보기 힘든 관엽식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필로덴드론류나 마란타과의 식물들은 이름은 많이들 알려져 있지만 막상 화원에서는 구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야말로 조인폴리아 같은 큰 화훼단지에 가지 않는 한 대량으로 판매되는 것을 보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최대한 다양한 품종을 조금씩이나마 가져다 놓으려고 노력한 티가 났다. 식물들의 상태도 하나같이 괜찮은 편이다. 알로카시아 실버드래곤이나 필로덴드론 플로리다 고스트, 크테난테 루베르시아나, 필로덴드론 실버메탈, 칼라데아 퓨전 화이트 같은 녀석들이 옹기종기 진열되어 있는 모습이 귀엽기 짝이 없다. 베고니아는 종류가 많지 않지만, 의외로 중품 정도의 필로덴드론류가 제법 준비되어 있어서 다소 놀라웠다. 제일 재미있는 것은 '무늬 송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정말 송편같은 이파리를 가진 괴상한 식물이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호야 임브리카타Hoya imbricata'라는 식물이라고 한다. 호야속의 식물들은 정말 제각기 너무 다르게 생겨서 도통 적응이 안 된다.

 

막다른 곳에는 포토존 비슷한 곳이 있다. 여기 있는 식물들은 제법 대품으로 멋있게 키워진 녀석들이 많다. 여느 화원에서는 물론이고 당근마켓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몬스테라 핀나티파르티타(시암 몬스테라)도 두 포기나 있고, 무늬 몬스테라나 일반 몬스테라도 엄청나게 큰 잎 크기를 자랑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실제로는 처음 본 필로덴드론 파스타짜넘인데, 언뜻 사람 얼굴같이도 생긴 위압적인 주름잎이 무척 멋있었다.

 

관엽식물 구역을 돌아보고 나서 반대쪽으로 향하면 이번에는 분재 구역이 펼쳐져 있다. 분재가인 이 곳 대표님이 전공을 살려서 구현해 놓은 다양한 분재들이 눈길을 끈다.

 

큼지막한 분재들뿐만 아니라 손바닥보다도 더 작은 화분에 담긴 다양한 식물들도 눈에 띈다. 이쪽은 관엽식물 구역보다는 덜 습하다는 느낌이 든다.

 

스프링골풀이나 벌레잡이제비꽃, 다육식물들이나 대극과(Euphorbia) 식물들이 이렇게 자그마한 포트로 팔리고 있기도 하다. 벌레잡이제비꽃은 생각보다 종류가 제법 다양하다. 대극과는 학명인 '유포르비아'라는 이름으로 불리거나 '연필선인장', '청기린' 등의 유통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파리가 없고 다육질인 생김새는 선인장스럽게 생기기는 했지만 외려 포인세티아(Euphorbia pulcherrima, '가장 아름다운 유포르비아'라는 뜻)에 더 가까운(!) 종류이다.

 

옆으로 조금만 더 이동해 보면 그야말로 여기서부터는 분재와 부작란의 향연이다. 손바닥보다 더 작은 청짜보 분재들부터 시작해서, 작달막한 키에서 화려한 꽃을 피운 오얏나무나 돌 위에 붙어 자라는 석곡, 거대한 고목을 작게 축소해 놓은 듯한 멋진 소사나무 분재들 등 화분 하나하나가 거의 작품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었다. 가게라기보다는 차라리 식물원에 온 것 같은 기분으로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한참을 구경했다. 결국 손바닥만한 청짜보 한 개를 한참 동안 고른 끝에 하나 구매해서 돌아온 것은 덤이다.

 

물론 화훼 자재도 갖춰져 있다. 살짝 구색 맞추기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는 한데, 그래도 분재용 자재들인 난석이나 적옥토 같은 것들은 준비되어 있다. 그보다도 더 볼만한 것은 한켠에 자리잡은 토분 진열장이다. 양쪽으로 끝이 잘 안 보일 만큼 늘어서 있는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토분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집에서 보통 쓸 만한 사이즈의 토분들은 물론이고 엄청난 사이즈의 녀석들도 준비되어 있어서 이런 큰 토분들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제법 어필할 만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닐하우스동에서 나와 건너편의 주황색 건물로 넘어가면, 여기는 주로 화분들을 팔고 있다. 나름대로 플랜테리어의 일부분으로서 다양한 형태의 화분을 제시하기 위한 공간인 모양이다. 제각기 다른 사이즈의 토분들과 세라믹 화분들이 팔리고 있는데, 아직 영 좋은 줄 모르겠는 빈티지 토분들도 좀 준비되어 있다. 여기에서 가장 나의 눈길을 끈 것은 마치 접시처럼 생긴 분재화분과 시제품 제작 과정에서 나온 하자품 토분들이다. 납작한 화분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보니 이렇게 예쁘게 생긴 납작 화분들을 보면 홀린 듯이 구매하게 된다. 결국 색이 입혀진 하자품 토분들을 두 개 구매했다. 이 녀석들은 나중에 벌레잡이제비꽃을 번식해서 키우거나, 아니면 걷잡을 데 없이 번식하고 있는 천손초들을 좀 담아서 키울까 싶다.

 

메인 홀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이곳의 시그니처 토분들을 전시해 둔 공간이 있다. 제법 모양이 다채롭고 크기도 다양한 것을 보니, 유명한 몇몇 국산 토분 업체들처럼 나름대로 브랜드화하고자 하는 모양이다. 가격이 퍽 비싸서 구매는 단념했지만. 사장님의 컬렉션이지 싶은 다채로운 분재 화분들도 눈에 띈다. 하나하나 들고 살펴보는 것조차 조심스럽지만, 하나같이 예스러운 멋이 있다.

 

전반적으로 나름대로의 철학을 가지고 꾸며진 화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문용 식물에서부터 희귀식물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분재가 왜 사람을 그토록 홀리는지도 여실히 느끼게 되었다. 미니 청짜보 분재에 이르러서는 감탄마저 나왔을 정도다. 분재를 더 많은 이들에게 보급하고자 하는 어떤 의지마저 느껴진달까.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라는 점이야 감안하겠지만 직원들이 상대적으로 분재에 대한 지식이 적어서 뭔가 물어보려면 사장님을 잡고 물어보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직원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해 주려고 노력했고, 친절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질적인 정보를 물어보기에는 다소 아쉬웠달까. 모처럼 여기서 데려온 청짜보 친구를 오래오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 입장에서 드리는 의견이니 관계자 분께서 보시더라도 부디 참작해 주시기를. 식물 쇼핑하기 딱 좋은 요즘 같은 시절에 한번 구경삼아 들르면 좋을 법한 곳이다. 구경만 하기는 아까우니 그래도 하나씩 식물이나 화분도 사게 되는 것이고 뭐 그런 게 아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