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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은 거창하게/식물

[취미생활은 거창하게] 남사화훼단지 '예삐플라워아울렛'에 다녀와 보았다

by 집너구리 2022. 3. 14.

안성을 다녀오는 길에, 평소에는 너무 멀어서 엄두도 나지 않았던 용인 쪽 화훼단지도 다녀올 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산 하나만 넘어가면 용인이니까. 남사화훼단지로 검색하니 이름 짜한 아울렛이 서너 개 나온다. 그 중에 안성에서 그나마 가장 가까운 예삐플라워아울렛으로 가 보기로 한다. 고양 쪽은 덩치 큰 화훼 아울렛이 근방에 여러 개씩 몰려 있다기보다는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다는 느낌인데, 용인은 몇 블록 가면 새로 아울렛이 나타나는 느낌이다. 

 

일견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길을 자동차로 달리다 보면 어느덧 길가에 띄엄띄엄 대형 비닐하우스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그러던 중 갑자기 엄청난 규모의 화훼 아울렛이 떡하니 나타난다. 여기가 예삐플라워아울렛이다. 이렇게 크다고? 양재동 화훼시장을 자주 다녔지만, 양재동 가/나동을 다 합친 것과 비슷하거나 조금 크지 않나 싶다. 차를 대어 놓고 안으로 들어간다. 이런 아울렛은 요새는 보통 혼자서 카트를 끌고 다니면서 원하는 식물이나 자재를 담아다가 결제하는 시스템이다. 문 열고 들어갔는데, 정말정말 크다.

 

바깥에서 봤을 때도 정말 크다는 생각은 했는데, 안으로 들어와 보니 정말 많은 식물들이 한도끝도 없이 진열되어 있다. 눈에 익은 관엽식물이나 나무들도 많이 있고, 봄이 된 만큼 꽃들도 상당히 많이 있다. 이런 가든센터형 아울렛에는 보통 이른바 '흔둥이'라는 통칭으로 불리는 흔한 식물들이 많이 있게 마련인데, 은근히 기대치 않았던 친구들도 있다. 이렇게 많은 수채화고무나무라니. 고양 화훼농협만큼은 아니더라도 호접란도 제법 있고, 무엇보다도 철쭉 종류가 정말 다양하다.

 

운향과 나무들은 어딜 가나 하나씩 있는 것 같은데, 이 녀석은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이렇게 가느다란 나무에서 저렇게 무식하게 큰 열매가 맺히는 것이 신기하다. 꽃을 하나씩 물고 있는 스파티필름도 있고, 따글따글한 식물들도 있다. 만지면 복슬복슬한 포메라니안 머리 같은 감촉이 들 듯한 저 파릇파릇한 식물의 이름은 '천사의 눈물'이란다.

 

아직 3월밖에 채 되지 않았는데, 수국도 벌써 종류가 다양하다. 개중에는 영하 25도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안내판이 붙은 녀석도 있다. 모양새가 예쁘다면 오히려 저런 친구들을 사다가 실외에 내놓고 반쯤 잊어버린 채 키우는 것도 좋을 듯하다. 겹꽃으로 예쁘게 핀 친구들도 있었는데, 무려 품종명이 '댄스 파티'다. 

 

그건 그렇고, 예삐플라워아울렛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식물 소개멘트들일 것이다. '황금목'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생판 처음 보는 나무에 적힌 소개 멘트가 여간 골때리지 않는다. 유통에서 황금목이라고 적어 두었는데 왜 황금목인지는 잘 모르겠다나. 이렇게까지 솔직할 일인가? 벌써 고양이 주먹만하다는 킹스베리 딸기 모종 소개글을 보면 혹하기 십상이고, 상태가 좋은 멜라노크리섬에는 아예 '지금 사 가면 계 타신 겁니다'라는 홍보 문구가 붙어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요새 당근에서도 저 정도로 상태 좋은 멜라노크리섬은 저 가격에 구하기 쉽지 않긴 하다. 질석에 붙어 있는 안내 문구는 친절하기까지 하다. 멘트 작성자의 알 수 없는 매력 때문에라도 뭔가 하나쯤은 사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된다.

 

보랏빛을 띤 파란색의 예쁜 꽃을 다글다글 피우는 로벨리아는 물론이고, 각종 베고니아와 마란타류 식물들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퓨전화이트와 퓨전옐로우가 아무렇지도 않게 많이 놓여 있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아쉽게도 베고니아는 내가 좋아하는 느낌의 잎을 가진 녀석들이 많지는 않았다. 역시 베고니아가 땡길 때는 더그린가든센터다.

 

흔히 볼 수 있는 관엽식물들인 셀렘 종류도 있고, 한때 엄청난 몸값을 자랑했지만 지금에야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칼라데아 오르비폴리아도 많이 준비되어 있다. 둥근(orbi) 잎(folia)이 귀엽기는 하지만, 칼라데아 종류는 응애가 꼬이기도 쉽거니와 특히 오르비폴리아는 미친 듯이 커진다고 해서 애써 마음을 떨쳐낸다. 바로크 벤자민도 있었지만 사진 찍기를 까먹었다. 이렇게 구경을 하다가 보면 엄청난 크기의 애니시다 나무나 율마 같은 것들도 버젓이 가격표를 달고 팔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큰 나무들도 사 간단 말야? 사람보다 더 큰 집채만한 애니시다는 놀랍게도 한 그루에 5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우리집에서 크고 있는 애니시다는 언제쯤 저만큼 클 수 있으려나. 글을 쓰다가 잠깐 고개를 돌려 식물선반 위에 있는 애니시다를 흘긋 봤는데... 그냥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

 

여기도 화분을 정말 많이 팔고 있다. 특히 토분의 종류가 다양한데, 국산인데도 값이 저렴한 친구들이 많다. 아담한 크기의 토분들을 몇 구입하기로 한다. 요새 실린더형 토분이 조금 필요했는데 잘 되었다.

 

계산대 옆으로 넘어가면 더부살이하고 있는 듯한 식물 부스들이 몇 있다. 화분에 예쁘게 식재되어 있는 선물용 식물들도 많이 있고, 아예 분갈이를 전문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부스도 있다. 여기서 한 블럭(?) 더 넘어가면 미친 듯한 다육식물의 향연이 펼쳐진다. 아마도 이렇게 다육식물을 많이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을 것이다. 다육식물이라는 것이 본디 기하학적인 로제트 형태로 땅딸막하게 자라나면서 점차 세를 불려 나가는 식으로 커지는데, 그런 기하학적인 형태를 한 다육식물들이 수천 개 단위로, 아니 수만 개가 아닐까 싶은 단위로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자니 어떠한 압도되는 느낌마저 든다. 아마도 다육식물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천국이나 다름 없으리라. 

 

물론 분재를 빼놓으면 섭하다. 소나무나 명자나무 등의 분재도 준비되어 있다. 분재는 식물 키우기 취미를 어느 정도 한 뒤에 비로소 조금씩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친척 중에 은퇴하시고서 분재 사업으로 재미를 좀 보신 분이 계셔서 은근히 흥미를 끊임없이 가지고 있는 분야이다. 기실 돈을 벌 수 있다는 건 부차적인 것이고, 그냥 분재는 바라만 보고 있어도 어떠한 경건한 느낌마저 들기도 한다. 이렇게 제한된 환경에서 이렇게 아름답게 나무를 가꾼다는 것이란 정말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이리라. 좋아하는 식물 유튜버 중 하나인 <그랜트의 감성>에서 채널주님이 분재화원에 찾아간 에피소드가 올라온 일이 있었는데, 분재계만의 독특한 문화들을 조금씩이나마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던 기억이 난다.

 

평일 낮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봄이 오는 덕인지 아울렛을 찾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온통 이곳저곳이 꽃으로 가득한 봄의 꽃시장은 스스로가 식집사의 길로 접어든 이래로 처음 겪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그 어느 곳보다도 활기차고 즐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집이 조금만 더 넓어진다면 봄에 꽃시장 놀러가는 재미가 더 있을 텐데, 하는 다소 얼빠진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