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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시피

(여러모로 망한) 쑥개떡 만들기

by 집너구리 2022. 5. 2.

결론부터 이야기해서, 왜 나의 쑥개떡 만들기가 여러모로 망했는가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 레시피 글을 쓴답시고 시작해 놓고서 사진을 제대로 찍지 않음

- 가루 재료를 헛씀

- 물 조절을 잘못함

- 쑥을 얕봄

 

무슨 이야기인지 찬찬히 되짚어 보기로 하자.

 

일의 발단은 양쪽 본가로부터 동시에 햇쑥을 받은 것이었다. 아내의 본가에서 얻어온 쑥은 잘 씻어서 모두 된장국에 넣고 쑥된장국을 끓여 먹었는데, 문제는 나의 본가에서 보내 주신 쑥이었다. 또 된장찌개나 된장국을 더 끓이기도 애매하고, 부침개로 부쳐 먹자니 예전에 아내의 본가에서 보내 주신 대량의 냉이와 이번에 내 본가에서 쑥과 함께 보내 주신 미나리를 모두 부침개로 소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결국 이 많은 쑥을 무르기 전에 해치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쑥개떡 아니면 쑥버무리밖에 없는데, 오히려 쑥버무리는 생각보다 가루와 쑥, 설탕의 양을 적절하게 조절하기가 쉽지 않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쑥개떡 만들기에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쑥개떡 만드는 법을 여쭤봤다. 놀랍게도 쌀가루보다는 밀가루를 쓰는 것을 추천받았다. 쑥을 잘게 썰고 짓이겨서 가루와 뜨신 물, 설탕을 조금씩 넣어 가면서 되직한 정도를 맞춘 뒤, 반죽해서 찌면 된단다. 생각보다 간단한데? 한번 도전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는데.

 

 

<재료(절대로 이 비율로 하지 말고, 참조만 할 것)>

 

쑥 380g

쌀가루(혹은 밀가루) 250g

설탕 70g

따뜻한 물(약 80도) 200g

 

 

1. 일단 쑥을 깨끗이 씻고, 소금을 1작은술 넣고 끓인 물에 1-2분 데친 뒤 물기를 뺀다.

 

사진을 찍는 것을 날름 잊어먹었다. 아무래도 까마귀 고기를 모르는 새 먹은 모양이다.

쑥은 최대한 어린 순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시든 줄기나 흙이 묻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처음에는 식초 한 숟갈 정도를 섞은 물에 1분 정도 담가 두었다가 흐르는 물에 잘 씻어 준다.

시금치나물을 만들 때와 비슷한 느낌으로 씻고 다듬어서 데친다고 생각하면 딱 좋다. 물기는 꼭 짜 준다.

 

 

2. 쑥을 잘게 썰고 짓이겨서 준비한다.

 

이 부분에서 두 번째 패착을 저지른다. 별 생각 없이 믹서기를 꺼내서 쑥을 다 쑤셔넣고 돌리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어린 새순이라고 해도 쑥은 쑥이다. 생각보다 퍽 질기기 때문에 믹서기 날에 잘게 잘리기보다는 믹서기 날축에 낑겨 들어가기를 선택하는 녀석들이 더 많다. 덕분에 실제로 갈리는 시간보다 날축에 걸린 쑥줄기를 풀어내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

결국 5분 만에 포기하고 쑥을 전부 꺼내서 가위질하기 시작했다. 얼추 가위질해서 크기를 줄여 놓은 쑥 녀석들을 조금씩 절구에 넣고 짓이긴다. 이렇게 하면 쑥이 퍽 부드러워지고, 향이 더 터지는 느낌이 든다. 사실 처음부터 우리 모친은 이렇게 쑥을 짓이기라고 했었다. 역시 부모님 말씀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요렇게 잘 뭉개 준다. 가위질을 조금 더 할 걸.

 

3. 가루와 설탕, 따뜻한 물을 조금씩 넣어 가며 익반죽한다.

 

사실 위에 대략적인 가루, 설탕, 물의 양을 적어놓기는 했지만, 나는 원래 부침개, 수제비 등의 반죽은 정말 감에 의지해서 하는 편이다. 문제는 떡 반죽은 처음 하는 건데도 하던 대로 대강 맞춰 가면서 하다가 농도 맞추기에 살짝 실패했다는 점이다.

 

어머니가 조언한 대로 밀가루를 쓰는 대신, 집에 얼마 남지 않은 찹쌀가루를 처리하겠다는 일념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었던 것도 패인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찹쌀가루를 넣고 반죽했더니, 물을 먹은 찹쌀가루가 엄청나게 끈적끈적해지며 미친듯이 부피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수제비 반죽이나 빵 반죽에 익숙한 나로서는 물성이 완전히 다른 찹쌀가루가 영 적응이 되지 않았고, 한참을 치댄 끝에야 비로소 반죽을 할 수 있을 만한 정도의 덩어리가 만들어졌다. 그래도 반죽 농도가 낮고 찐득찐득하게 달라붙은 것은 완전히 잡지 못했다. 모친에게 사진을 찍어서 보내드렸더니 쓱 보고서는 "가루를 너무 많이 넣었구만" 하고 한 소리를 들었다. 한 술 밥에 배부르겠느냐만은.

 

어떻게든 반죽의 형태로 빚어낸 나에게 치얼쓰.

 

4. 반죽을 조금씩 떼어서 납작하게 빚는다.

 

이때 반죽은 동글납작하게 만드는데, 납작하면 납작할수록 좋다. 어머니의 원래 레시피대로 밀가루로만 반죽했다면 단단하고 차진 반죽이 되었겠으나, 쥐뿔도 모르는 게 '떡은 쌀로 만들어야 제맛이지!' 하면서 멋대로 찹쌀가루로 반죽했다가 끝까지 고생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다. 반죽이 완성되었을 때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 일단 플라스틱 통에 랩을 깔고 빚어낸 반죽을 켜켜이 쌓아 냉장고에 보관하기로 했다.

어떻게든 떡의 모양새는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5. 냄비에 찜기를 깔고 물을 넣고 끓인 뒤, 면포를 깔고 그 위에 떡을 얹어서 10분 정도 찌고 5분 정도 뜸을 들인다.

 

소금을 1작은술 정도 넣고 물을 끓인 것까지는 좋았는데, 멍청하게도 면포를 까는 과정에서 불을 끄지 않은 탓에 면포를 다소 태워먹었다. 정석대로라면 면포를 두 장 써서, 찜기 위에 한 장을 깔고 나머지 한 장은 냄비 뚜껑 아랫부분을 싸매는 것이 맞다고 한다. 찜기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수증기가 냄비 뚜껑에 닿아 액화되어 떨어지면 떡이 질척해질 수 있으므로, 냄비 뚜껑에 맺힌 물방울을 흡수하기 위해 그렇게 한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내게는 면포가 한 장밖에 없어 찜기 위에만 한 겹을 깔았는데, 그마저도 태워먹었으니 이걸 어쩌면 좋담. 다행히도 떡은 잘 쪄졌다.

 

사진이 흐릿해 보이는 것은 수증기 때문이다. 진짜다.

 

6. 잘 쪄진 떡은 찬물에 바로 담갔다가, 참기름을 발라 먹거나 보관한다.

 

뭐 바로 먹을 것이 아닌 떡은 참기름을 바르지 않고 그대로 보관한다고는 하는데, 나는 나중에 떼기가 너무 어려울 것 같아 그냥 일괄적으로 참기름을 발랐다. 두세 장은 바로 먹을 수 있도록 꺼내 놓고, 나머지는 전부 통에 담아 냉동보관하였다. 먹고 싶을 때마다 조금씩 꺼내서 자연해동해 먹으면 되는데, 개인적으로는 약불에 구워 먹는 게 더 나았다.

 

어떻게든 떡의 몰골과 맛을 갖추는 데 성공하기는 했지만, 많은 숙제를 남긴 요리였다. 다음에는 얌전히 어머니가 알려 준 대로 밀가루를 써서 단단히 반죽해 쪄내기로 하자. 아무튼 맛은 있었으니까, 결과 올라잇 아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