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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은 거창하게/식물

(내 멋대로 변형해 본) 봉심기(였던 것)로 호접란과 나도풍란 분갈이하기

by 집너구리 2022. 5. 2.

지난 주에 그린하트클럽에 갔다가 사장님에게 '봉심기'라는 개념을 처음 들은 뒤로, 이번에 사온 호접란과 나도풍란을 분갈이할 때 봉심기를 한번 해 봐야겠다 싶어서 이런저런 자료 조사를 했다. 가장 참고를 많이 한 것은 오랫동안 난을 쳐 오신 분인 듯한 이 분의 블로그였다.

 

요지는 '뿌리로 수태를 감싼 뒤 다시 뿌리를 수태로 감싼다'는 것이다. '봉심기'라는 표현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산봉우리처럼 심는다'고 하여 '봉峯심기'인가 싶기도 하다. 일단 찾아본 내용을 바탕으로 대강의 시도를 해 보기로 한다. 

 

먼저 수태를 물에 불린다. 제일 좋은 것은 뉴질랜드산 스파그눔 이끼로 만든 수태이고, 구하기 쉬운 칠레산 수태를 쓰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다만 칠레산 수태는 잔가지 같은 불순물이 많으므로, 이런 것을 참을 수 없어하는 사람이라면 뉴질랜드산 수태를 사는 것이 좋겠다. 최소한 30분 정도는 물에 불리는 것이 좋으나, 가장 좋은 것은 하루 내내 물에 불리는 것이라고도 한다.

 

새로 사온 호접란들도 전날부터 과산화수소수를 희석한 물에 뿌리를 담가 놓는다. 난초를 많이 치는 분들은 식물활력제를 여기에 같이 섞어서 담가 놓는다고도 하는데, 나는 그런 것을 갖고 있지는 않으니 그냥 하이포넥스를 한 방울만 떨궜다. 이렇게 해서 담가 놓은 난초 뿌리에 붙은 수태는 다음 날이 되면 뜯어내기 쉽게 잘 불어 있다. 최대한 깔끔하게 기존의 수태를 모조리 털어내 주자.

 

다음으로는 수태를 털어낸 난초의 상한 뿌리를 제거한다. 만져 보았을 때 딱딱하고 심지가 느껴지는 뿌리는 최대한 살리고, 마치 빈 주머니마냥 푹 들어가는 뿌리들은 상한 뿌리이므로 소독한 가위 등으로 잘라 준다.

 

다음은 토분 아래에 망이나 분재 철사를 깔고 그 위에 수태를 이불처럼 깔아 준다. 이때 토분은 물빠짐 구멍이 넓을수록 좋다고 한다. 만약 물빠짐 구멍을 넓히고자 한다면, 화분도 물에 오랫동안 잠가서 물을 잘 먹게 한 다음 끌 같은 도구를 대고 망치로 살살 두들겨서 조금씩 넓혀 주는 것이 좋다. 망이나 분재 철사는 바닥에서부터 난초가 붕 뜰 수 있도록 굽혀서 끼워 주도록 하자.

 

이제 물에 불린 수태를 한 줌 정도 쥐어서 가볍게 짠 다음, 뿌리 안쪽에 넣어 준다. 뿌리 사이의 통기성을 좋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수태를 꼭 쥐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만든 구체를 토분 안에 넣어 준 뒤 위에 이불 비슷하게 수태를 다시 한 번 둘러 주고 깔끔하게 정리해 준다. 이때 줄기와 가장 가까운 쪽의 뿌리는 수태를 완전히 덮어 주기보다는 살짝 열어 주는 것이 좋다. 다 두른 이불수태를 정리할 때 이른바 '수태칼'이라는 나무칼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는데, 역시 취미의 세계는 넓고 깊다.

 

 

이렇게 두 개의 새 난초들을 정확하지 않은 형태나마 봉심기 비슷하게 분갈이해 주었다. 예전에는 주로 바크와 하이드로볼을 섞어서 식재해 주었었는데, 이렇게 수태로 심어 주는 것도 새로 공부를 한다는 느낌으로 해 보니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착생란이란 이렇게 한 번 식재해 주면 오랫동안 분갈이를 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사니, 어쩌면 다른 식물보다도 관리하기 쉽고 재미있는 취미일 수도 있겠다. 이래서 고랫적부터 사람들이 난초 치는 걸 그리도 재미있어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