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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은 거창하게/식물

AIP(에이프)커피에 다녀와 보았다

by 집너구리 2023. 1. 7.

연말이야말로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간이다. 하루 날을 잡아 차를 빌렸다. 사실 나는 운전하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저에게 차량과 시간을 주신다면 틈날 때마다 몰고 다닐 자신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오전에는 부천에 새로 생겼다는 식물카페인 '에이프'에 방문했다가, 오후에는 김포에 있는 이원난농원에 다녀오는 동선을 짰다. 부천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기 때문에, 출근 시간을 살짝 피해서 나왔더니 오픈 시간을 조금 넘긴 때에 잘 도착했다. 평소에 네이버 블로그에서 '뱅갈의 정글' 블로그를 구독하고 흥미롭게 읽고 있던 덕에, 주인장이 온실 운영에 이어 연말에 식물카페까지 개업한다는 이야기도 거기에서 접했다. 궁금하니까 가 볼 수밖에 없잖아.

에이프 커피가 위치한 곳은 부천 끝자락의 다소 외진 골목이다. 부천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광명 천왕동이라고 하면 설명하기가 더 쉬울 수도 있다. 대로를 타고 가다가 중간에 시골길 비슷한 곁길로 빠져서 얼마 가지 않으면 바로 동네에서 가장 깔끔한 인상을 주는 벽돌 건물 하나가 나타난다. 흰색과 녹색 기조의 외장 인테리어가 눈길을 잡아끈다. 간판은 따로 없지만 문간에 몬스테라 델리시오사의 잎 모양을 형상화한 로고가 붙어 있고, 그 앞에 녹색의 반투명한 입간판이 하나 서 있다. 누가 봐도 식물과 관련된 곳이라는 느낌이 든다. 녹색과 흰색 기조인 것은 무늬종 식물의 생김새에서 따 온 것일까?

카페에 들어왔으면 음료를 시켜야지. 차나 한 잔 할까 싶었는데, 아무래도 카페면 커피를 한 번 마셔 봐야겠다는 변덕이 생겨 플랫 화이트를 한 잔 주문했다. 한국에서 플랫 화이트를 제대로 하는 카페는 찾기 어려운데, 메뉴에 올라와 있는 것을 보니 호기심이 동했다. 보다시피 흥미롭게도 마지막 메뉴로 '럭키박스 코인'이라는 것이 있다. 오천 원을 내면 코인을 두 개 받을 수 있는데, 이걸 이따가 재미있는 데에 쓸 수 있다.

전반적으로 인테리어는 미니멀리즘을 극도로 추구한 것 같은 느낌이다. 방문한 날이 개업한 지 고작 사흘 째 날이었다는 점도 한몫 했겠지만, 가게 안은 흰색과 회색으로 아주 깔끔하게 꾸며져 있다. '식물카페'라는 말을 듣고 방문을 결의했을 때에는 뭔가 울창하게 우거진 식물들로 가득 찬 공간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식물카페'라는 말 중 '식물'보다는 '카페'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식물이 아예 없다고 하면 식물카페라는 이름이 다소 빛바랠 터, 직접 전시해 놓은 듯한 대품 식물들도 멋들어진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몬스테라 알보의 모습은 압도적이다. 마치 폭포처럼 쏟아지는 듯한 아름다운 무늬 잎들이 볼거리다. 조금 더 구경할 만한 식물들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이제 막 개업한 곳이니 이제부터 슬슬 공간이 채워질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아까 커피와 함께 결제한 코인 두 개는, 카페 중앙쯤에 있는 가챠퐁 기계에서 사용할 수 있다. 코인을 놓고 뽑기를 해서 나온 티켓을 카운터에 가져다 주면 티켓에 적힌 상품으로 교환해 주는 시스템이다. 머그컵과 티 코스터 같은 일반적인 경품뿐만 아니라, 다양한 희귀식물들도 확률상으로는 뽑을 수 있는 것인 모양이다. 이런 뽑기 추첨에는 나름대로 운이 좀 있는 편이라 부푼 꿈을 안고 돌려 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머그컵과 티코스터가 나왔다. 그래도 안에 작은 멘토스가 같이 들어 있어서, 운전할 때 혹시라도 졸리면 먹을 간식 값은 굳었다 싶었다.

가챠퐁 기계 오른쪽에는 주인장이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서 열심히 어필하던 식물 판매선반이 있다. 편의점 냉장고처럼 생긴 매몰 선반 안에 가격표와 이름표가 붙은 식물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는데, 가격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다가 무엇보다도 식물 상태가 무척 건강해 보여서 흥미롭게 구경했다. 주인장이 운영하는 회사는 본디 안스리움류, 그 중에서도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고가의 희귀 안스리움 컬렉션으로 유명한데, 아니나 다를까 펠티제룸(A. peltigerum)이나 베이치아이(A. veitchii) 같은 쉽게 구경하기 어려운 녀석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몇 포트씩 판매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요즘 식물 구매를 줄이고 용돈을 아끼고 있기 때문에 식물을 구매하지는 않았지만, 여기가 조금 더 다양한 식물로 채워진다면 구경하는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들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는 생각했던 것보다는 약간 진하다는 느낌이었지만, 개업한 지 사흘밖에 안 된 가게라는 점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강배전된 원두를 쓰는 듯 묵직하고 쌉싸름한 맛이다. 한 잔 하면서 오전 시간의 나른함을 쫓기에는 제격이다. 경품으로 받은 머그잔과 컵받침도 제법 괜찮은 느낌이다. 특히 컵받침이 상당히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다. 델리시오사 버전과 아단소니 버전의 두 가지가 있는 모양인데, 개인적으로는 아단소니 모양이 조금 더 취향이다(그냥 아단소니 자체가 내가 좋아하는 모양새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전반적으로 준비를 열심히 한 인상이지만, 여기에서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는 조금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느낌을 받은 방문이었다. 가챠퐁 기계라는 생각지도 못한 요소는 즐거운 경험이었으나, '식물카페'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것들 - 전시 식물이라든지, 판매하고 있는 식물이라든지 - 이 조금 더 늘어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이제 막 시작이니, 더욱 나아지고 발전할 수 있는 여지만 남아 있는 셈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건승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