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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은 거창하게/식물

망원동 'OOMF'의 점포정리 세일에 다녀와 보았다

by 집너구리 2022. 11. 8.

계기는 정말 우연히 발견하게 된 인스타그램 스토리였다. 어찌 보면 평범한 식물가게의 점포정리 공지였지만, 위치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우리 집에서 정말 가까운 거리인데? 이 동네에 이런 가게가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마포구청역 앞에 있는 'OOMF'라는 가게인데, 가게를 급하게 옮기게 되어 그 전에 일단 식물 정리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노가든도 그렇고 요새 묘하게도 불가항력적으로 가게를 빼야 하는 상황에 처한 식물가게들이 퍽 있다는 느낌이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 동네에 이런 훌륭한 가게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한 번 가 보기로 한다.

귀여운 얼굴 모양의 간판이 붙어 있는 이곳이 'OOMF'이다. 마포구청역 6번 출구로 나와서 조금만 더 걸으면 바로 마주할 수 있다. 이름이 독특해서 인스타 피드를 뒤져보면서 의미를 찾아봤는데, 'One Of My Favorites' 즉 '내가 좋아하는 것들 중 하나'라는 뜻이란다. 창 밖에서만 봐도 벌써 엄청난 크기의 잎들이 엿보인다.

데크 위에서 볕을 쬐고 있는 식물 가운데에는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셀렘이나 아단소니, 마란타 같은 친구들도 있거니와, 조금 발품을 팔아야 구할 수 있는 아카시아나 쉬베리아나 고무나무 같은 녀석들도 있다. 중품 이상의 식물들은 예약 딱지가 붙어 있기도 하다. 생각보다 식물 종류도 다양한데 희소성 있는 친구들도 더러 있어 구경하는 맛이 있다. 왜 이런 곳이 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지? 알았다면 심심할 때마다 들러서 구경하다 가곤 했을 텐데.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아니나 다를까 벌써 엄청난 크기의 대품 식물들이 가득하다. 만약 이런 대품 식물들을 구매해서 가져간다고 하면 못해도 수레나 자동차 정도가 있어야 할 것 같다. 특히 싱고니움 치아펜스(Syngonium chiapense)는 이번에 처음 봤는데, 싱고니움 하면 떠오르는 토끼귀 모양의 잎이 아닌 동그랗고 윤기가 나는 중후한 모양의 잎이었다. 다양한 식물들을 봐 오면서도 또 새로운 식물이 나타나면 신기한 것이 식덕의 마음이다. 가게 사장님은 내가 들어갔을 때만 하더라도 뭔가 분주하게 할 일을 처리하고 계시다가, 잠시 뒤부터 친절하게 응대해 주셨다. 뭘 살지 딱히 정해 놓고 간 것이 아니다 보니 이것저것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듯 가격을 물어봤는데도 개의치 않고 꼼꼼히 알려 주셔서 내심 고마웠다.

이름조차 생소한 싱고니움 치아펜스를 이렇게 크게 키워내셨다는 시점에서 이미 눈치채야 했겠지만 가게 안으로 들어오니 확실히 상당히 다양한 종류의 열대관엽이 있었다. 알보도 있고, 무늬 바나나도 있고, 무늬 파키라도 있고, 알보 무늬가 퍽 괜찮아서 하나쯤은 들여 가고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지난 달에 식물을 너무 많이 사서 내 통장 잔고 자체가 쉽지 않은 상태다. 무늬 바나나도 참 예뻐서 언젠가는 꼭 키워 보고 싶은 식물 중 하나인데, 우리 집에서 바나나를 키우겠다고 설쳤다간 좋은 꼴이 나지 않을 게 불 보듯 뻔하다. 베란다가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어요. 

물론 대품 식물들뿐만 아니라 아기자기한 식물들도 많이 있다. 여기에서 호야 친구 두 녀석을 발견해서 구매하기로 했다. 예전부터 이파리가 신기하게 생겨 늘 궁금했던 호야 리네아리스(Hoya linearis)와 호야 로툰디플로라(Hoya rotundiflora)의 두 종류다. 호야 로툰디플로라는 이제 조금씩 시장에 풀리기 시작했는데, 호야 리네아리스를 팔고 있는 것을 본 것은 이곳이 처음이었다. 가격도 퍽 괜찮으니 사지 않을 수가 없잖아? 알보를 사지는 못했지만 이 정도쯤이야. 다만 집에 와서 보니 로툰디플로라의 모가지가 꺾여 있었는데, 호야라는 것이 워낙 잘 꺾이기도 하고 또 뿌리도 잘 나오는 녀석이니 크게 걱정하고 있지는 않다. 물꽂이를 해서 조금 더 뿌리를 받은 다음에 정식해 주려고 한다.

 

인스타그램에서도 사장님이 '널리널리 퍼뜨려 달라'고 하셨으니 (절대 돈 받고 하는 광고가 아니지만) 한 마디 덧붙이자면, 앞으로도 11월 한 달 동안 이렇게 가게정리 세일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나도 왔다갔다 하면서 살 만한 녀석이 있는지 조금씩 눈여겨볼 생각이다. 집이 협소해서 큰 녀석들을 들여올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고 있지만, 겨울이 본격적으로 찾아오기 전까지 조금이라도 이 친구들을 더 좋은 환경에서 클 수 있도록 보내겠다는 것이 사장님의 생각인 모양이니 망원동 근방에 사는 식덕들이라면 한 번쯤 들러 보는 것도 괜찮을 성싶다. 식물 상태도 좋은 편이고, 설명도 친절히 해 주시고 가격도 나쁘지 않은 편이니, 찾아보기 힘든 식물들을 한번 키워 보고 싶다고 생각해 오던 사람이라면 도전해 볼 만한 가게이다. 추운 겨울을 사장님과 식물들이 무사히 잘 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