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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은 거창하게/식물

서울식물원 윈터가든마켓에 다녀와 보았다

by 집너구리 2022. 12. 19.

다소 제목과는 일탈되는 도입부일 수는 있겠으나, 맛집탐방을 좋아하는 아저씨가 인스타그램 없이 살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인스타그램이 마치 전가의 보도라도 되는 양, 무슨 공지만 한다 싶으면 하나같이 인스타그램이다. 오늘 영업 쉰다는 공지도 인스타그램, 판매완료 공지도 인스타그램, 이번 주의 한정메뉴 공지도 인스타그램, 이런 식이니 인스타그램에 거의 포스팅을 하지 않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계정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기왕 인스타그램 계정을 유지할 바에야 차라리 취미생활에나 유효하게 활용하자는 생각을 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커피 관련 계정을 한 볼테기 팔로하고, 식물 관련 계정을 또 한 무더기 팔로하고 나니 생각보다 쓸 만한 정보 수집 도구가 되었다. 하릴없이 스크롤이나 하는 시간이 다소 늘기는 했지만, 남의 집 식물 구경하기가 여간 재밌는 활동이 아니라 그럭저럭 만족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팔로하고 있는 화원 주인들 중 몇몇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서울식물원 윈터가든마켓'이라는 흥미롭기 짝이 없는 이름의 행사에 대한 포스팅을 올리는 것이었다. 무려 서울식물원에서 하는 식물 마켓이라니. 내가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어 왔던 식물마켓 행사 중 가장 우리 집에서 가까운 위치다. 안 가 볼 수가 없잖아? 원래대로라면 아내와 같이 가고 싶었지만, 아내가 몸이 좋지 않은 관계로 일단은 나만 다녀오기로 했다. 아내에게는 나간 김에 아내가 먹을 맛있는 것들을 좀 사 오라는 특명을 얻었다. 

'식물문화센터'라는 곳에서 한다길래 어딘가 했더니 온실이다. 온실 건물의 1층과 지하1층을 합쳐서, 비어 있는 복도 공간을 활용해 여러 식물 관련 셀러들이 나와 식물과 화분, 상토, 액세서리 등을 파는 행사다. 공항철도 마곡나루역에서 내려서 완전히 겨울을 맞이한 서울식물원 야외정원을 터덜터덜 걷다 보면 온실이 나온다. 이리로 들어가면 된다. 밖은 누구 하나 코라도 베어갈 것마냥 싸늘한 겨울 바람이 살을 에이는데, 역시나 온실이라 그런지 실내로 들어가자마자 안경에 뿌옇게 김이 서리며 훅 따뜻한 온기가 끼친다. 역시 여름 피서는 은행이 최고고, 겨울 추위 피하기는 식물원 온실만한 게 없다.

 

온실 출구 앞 기념품 판매처로부터 출구에 이르는 공간, 그리고 1층의 온실 입구 앞 공간에 나무로 만든 부스가 쫙 깔려 있고, 많은 사람들이 푸릇푸릇한 빛깔의 식물들을 둘러보면서 구경하고 있었다. 역시 주말의 식물원이라 그런지 아이들도 제법 많다. 식물들의 종류도 상당히 다양해서 여기 자체로도 구경할 맛이 제법 난다. 식물원에서도 제법 각을 잡고 준비한 티가 난다.

2층 판매 공간은 이런 느낌이다.
엄청난 크기의 두비아 삽수들이 놓여 있다. 이 가게는 유독 팔고 있는 식물 종류가 다양했다.
어느 가게든 알보는 꼭 한 촉씩 놓여 있다. 아기자기한 화분들이 귀엽다.
예전에 망원동 가게로도 한번 찾아간 적이 있는 OOMF도 좌판이 깔려 있다. 사장님이 나를 알아보셔서 깜짝 놀랐다.
화분 판매 공간도 있고, 식물 액세서리로 아크릴 선반 같은 것을 준비해 오신 분들도 계셨다.
1층 판매공간은 조금 더 넓고 조금 더 정신없는 분위기였다. 이쪽에는 안스리움 판매자들이 유독 많았다.
1층에서 만난 무시무시한 크기의 잎을 자랑하는 안스리움 크리스탈리눔. 우리 집에 있는 녀석도 이런 가능성이 있단 말인가... 좀 무섭다.
각 셀러들마다 독특한 색깔이 있어서 흥미로웠다. 식충식물 전문 셀러도 있었고, 비법 상토를 가지고 나오신 분들도 있었다.

벼르고 있던 식재인 세라미스를 한 포대 사니, 응모권 같은 것을 건네받았다. 시간별로 무려 추첨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이런 추첨운은 묘하게 있는 편이라서, 내심 기대하면서 추첨 시간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잠시 아내가 부탁했던 먹을 것을 좀 사 갖고 오니 딱 시간이 맞았다. 유독 아이들이 참 많아서 더욱 재미있었다. 식물을 좋아하는 부모님들을 따라서 그냥 구경을 온 친구들인가 했더니, 추첨 식물들이 하나씩 앞으로 나올 때마다 무슨 식물인지 정확하게 큰 소리로 맞히면서 설레어하는 눈빛을 마구 발사하는 것을 보고서 생각을 고쳤다. 이렇게 될성부른 식덕들이 많으니 식물 애호계의 미래는 밝을 수밖에 없다. 나는 비록 아무것도 당첨되지 않았지만, 추첨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 특히 아이들이 무척 기뻐하며 방방 뛰는 것을 보고 있자니 그냥 받은 것 없이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하여 이것은 오늘의 전리품이 되겠다. 구매한 식물도 있고, 안면이 있는 분에게 인심 좋게도 나눔을 받아 버린 녀석들도 있다. 생각지도 못하게 작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이런 크리스마스 마켓도 나름대로 괜찮은 것 같다. 우리 집에 왔으니 너희도 잘 살아 보자꾸나. 이번 행사가 퍽 성공적으로 진행된 것 같으니, 앞으로도 서울식물원에서 이런 행사들을 자주 해서 근처에 사는 동안 자주 기웃거릴 구실(?)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