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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본여행|출장

도쿄에서 만난 인생 최고의 케밥, 'ADO Kebab House'

by 집너구리 2023. 5. 15.

일본까지 가서 무슨 케밥이냐고, 혹자는 물을지도 모르겠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일본까지 가서 일식을 안 먹고, 그것도 한국 음식도 아닌 완전 다른 나라 음식을 먹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 하는 생각을 누군가는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인제 나는 이제 도쿄를 그래도 자주 다녀 본 사람 입장에서, 이제 도쿄에서도 슬슬 뭔가 다른 시도를 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중에, 칸다역 근처에 무려 구글 지도 평점 4.8(당시 기준)을 자랑하는 무시무시한 케밥 가게가 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 한 번 가 보고 싶다고 아내와 얘기하던 차에, 마침 내가 혼자 도쿄 출장을 가게 된 관계로 한번 시험삼아 다녀와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업무 일정의 마지막 날, 퇴근하고 나니 이미 시간은 저녁 일곱 시 반을 넘겼다. 시부야 도겐자카에서 슬슬 걸어내려와 긴자선 지하철을 타고 칸다로 향한다. 도착할 때쯤 되면 한 여덟 시쯤 되겠지. 퇴근한 직장인이 간단한 식사에 술 한잔 걸치기에는 제격인 시간이다.

사실 지도를 보면서, '지하철을 타지 말고 그냥 야마노테선을 탈 걸 그랬나' 싶은 생각을 잠깐 했다. 긴자선 칸다역은 야마노테선 칸다역과 정말 애매하게 끝과 끝이 이어져 있는 형상인데, 오늘 가 보기로 한 'ADO Kebab House'는 야마노테선 칸다역 동편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별수 없이 한참을 지하통로를 걸어 야마노테선 출구 쪽으로 나왔다. 가게는 생각보다 알아보기 쉽다. 누가 봐도 '나 케밥집이요'라고 선전이라도 하는 듯한 가게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나 이런 가게 이태원에서도 본 적 있는 것 같아. 케밥집 외장은 어떻게 나라별로 하나 다른 점이 없는지 모르겠다. 배가 고프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뻑적지근하게 먹을 건 또 아닌 것 같아 쇠고기 케밥 랩 하나 정도 시키되, 맥주 한 병은 꼭 해야겠다 싶어 에페스 한 병을 시키기로 마음먹고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엄청나게 쾌활한 튀르키예인 점원이 큰 소리로 맞아 주고, 요리사인 듯한 땅딸막한 외국인 점원이 케밥을 열심히 돌려가며 굽고 있고, 그 옆에는 아프리카계인 듯한 젊은 남자 둘이 스티로폼 용기에 담긴 케밥 플레이트를 둘러싸고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고 있다. 가게가 엄청 좁아서 손님 셋이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가게 안이 꽉 찬다. 흥이 많은 튀르키예인 점원은 호객을 했다가 손님들에게 말을 걸었다 하면서 끊임없이 떠드는데 그게 밉지가 않다. 주문을 하고 잠시 기다린다. 맵기 조절이 가능하다고 해서, 중간 정도로 매운맛으로 부탁했다. 제아무리 케밥집이지만 일본에서 장사하는 만큼 '중간 정도 매움'이라고 하면 그냥 김치 먹는 정도겠거니 하고 넘겨짚은 것이다.

머리가 띵해질 정도로 차가운 맥주가 입에 들어오는 순간 느껴지는 청량감. 나는 술을 정말 못 하는 편이지만, 이 날 마셨던 맥주 맛은 도저히 잊지를 못하겠다. 퇴근 후에 술집에 들러서 한 잔 하는 직장인의 느낌이 이런 거구나! 직장인 생활 7년 만에 처음 알았다. 담백하면서도 깔끔한 튀르키예 맥주인 에페스는 내가 딱 좋아하는 맛이다. 이어서 곧바로 케밥이 나오는데, 물론 옆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고깃덩어리에서 바로 막 썰어서 야채와 함께 빵에 말아 내주는 것이다. 고소하면서도 촉촉한 쇠고기와 향신료의 향기, 아삭아삭한 야채의 식감까지 그야말로 훌륭한 한 끼 식사다. 세계요리를 좋아해서 이태원 케밥집들도 몇 번 드나들어 봤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정말 발군의 맛이다. 퇴근과 시장이 반찬일 수는 있겠으나, 그야말로 행복 그 자체의 맛이다. 이걸 깡깡 얼다시피 한 에페스 맥주와 함께 먹고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그렇게 나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서 신나게 식사를 즐기고 있는데, 내 머리 위로 직원과 나머지 두 손님이 영어와 일본어를 섞어서 대화하는 것이 귀에 들어왔다. 직원이 "난 튀르키예에서 왔어! 너희들은 어디서 왔는데?"라고 묻자, 두 손님 중 한 사람이 생각지도 못한 나라 이름을 대는 것이다. "소말리아에서 왔어." 먹다 말고 무심결에 "소말리아라고?"라고 되묻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 얼떨결에 튀르키예인 한 사람과 소말리아인 두 사람, 한국인 한 사람 이렇게 셋이 영어와 일본어를 섞어 대화하는 기묘한 광경에 함께하게 되었는데, 소말리아인들은 각각 다른 대학원에 다니다가 이번에 같이 아키하바라에 놀러 온 거라고 했다. 수줍게 굿즈가 잔뜩 담긴 쇼핑백을 들어서 보여 주는데, 제법 즐거운 쇼핑을 한 모양인지 봉투가 묵직하다. 나는 국적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너 한국인인 것 같은데 맞아?"라고 하길래, 어떻게 알았느냐고 했더니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는데,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이랑 헤어스타일이나 이런 게 좀 달라!"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한참을 즐겁게 대화하다가, 소말리아인 친구 둘은 식사를 마치고 먼저 자리를 떴다. 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식사를 마치고 짐을 싸서 나오면서 튀르키예인 점원에게 튀르키예 말로 "고마워요Teşekkür ederim!" 라고 했더니, 아니 튀르키예 말 할 줄 아냐고 엄청 반가워해 줬다. 급하게 '튀르키예어로 고마워요 뭐라고 하는지' 같은 식으로 검색한 보람이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만남과 함께, 훌륭한 케밥과 맥주를 맛볼 수 있는 가게를 만나 정말 즐거운 저녁을 보냈다. 다음에 도쿄 여행을 갈 때에 아내에게 자신 있게 소개해 줄 수 있는 곳이 하나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