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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본여행|출장

도쿄 덕질투어: 밀리시타 2주년 즐기기_ 2019년 7월

by 집너구리 2021. 3. 14.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감사하고 즐거운 일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 중에도 특히 감사한 것들 중 하나는 아내와 내가 둘 다 오타쿠라는 사실이다. 둘 다 만화와 애니메이션, 게임을 좋아하다 보니 공통의 화제나 관심사도 많았고, 때로는 같은 게임을 동시에 즐기거나 같은 작품을 함께 보면서 감상을 이야기하며 불타오르는 경우도 많다. 그 중 대표적인 하나가 지금 둘이 같이 즐기고 있는 스마트폰 게임 '아이돌 마스터 밀리언 라이브 시어터 데이즈(줄여서 '밀리시타')'이다.

 

'밀리시타'는 52명의 아이돌을 리듬게임 등을 통해 육성하는 모바일 게임으로, 본래 카드수집형 모바일 게임인 '아이돌 마스터 밀리언 라이브!'로 처음 런칭된 IP를 리듬게임의 형태로 바꾸어 운영되고 있다. 2020년으로 15주년을 맞은 거대 가상아이돌 프랜차이즈인 '아이돌 마스터' 시리즈의 한 갈래인 만큼 일본에서의 팬층도 상당한 편인데, 한국에서는 아이돌 마스터 시리즈의 다른 프랜차이즈에 비해 상대적으로 팬층이 얇은 편이었으나 밀리시타의 런칭을 계기로 팬이 다수 늘어났고 지금은 한국 서비스까지 전개되고 있다. 나 또한 밀리시타가 처음 릴리즈된 2018년 6월경부터 게임을 즐기기 시작했는데, 관심을 보이던 아내에게까지 영업(?)에 성공해서 아내도 지금까지 같이 열심히 밀리시타를 플레이하고 있다.

 

(좌) 아내의 최애인 '사타케 미나코', (우) 나의 최애인 '마카베 미즈키'.

결혼식을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은 2019년 6월의 어느 날, 우리 부부를 비롯한 밀리언 라이브 팬덤은 밀리시타 런칭 2주년을 맞아 다들 들떠 있었다. 다양한 굿즈가 발매되고, 2주년 기념 인게임 이벤트가 발표되는 등 축제 분위기로 모두들 신나 있는 상황에서, 나는 공지 사이트를 들락거리다가 흥미로운 공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밀리시타 런칭 2주년을 기념하여 아키하바라 전 지역에 걸쳐 기념 행사를 벌인다는 것이었다.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어진 우리 부부는 그 자리에서 바로 비행기표와 숙박을 끊었고, 그렇게 2박 3일의 급박하다면 급박한 여행 일정이 막을 올렸다!

 

아사쿠사바시의 숙소에 짐을 맡겨놓고 찾은 아키하바라는 과연 온 데 사방천지가 밀리언 라이브의 캐릭터들로 가득했다. 아키하바라를 찾는 오타쿠들을 반기는 아트레 아키하바라의 유리창에는 우리가 게임 속에서 늘 만나는 아이돌들의 그림이 커다랗게 붙어 있었다. 그야말로 2주년 축제라는 느낌이 물씬 드는 광경이었다. 일단 배를 채우기 위해 칸다 강을 건너러 UTX 건물을 지나는데, 때마침 밀리언 스타즈 성우들이 공개 라이브를 하고 있어서 생각지도 못하게 성우들의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하는 일까지 있기도 했다.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아쉽게도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첫 발걸음부터 무척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2주년 기념 일러스트로 장식되어 있는 아트레 아키하바라의 1층 창문.
성우들의 라이브 이벤트를 생중계해주고 있었다! 나나오 유리코 역의 이토 미쿠 씨(왼쪽)와 로코 역의 나카무라 아츠키 씨(오른쪽).

점심으로는 창립 100년이 넘어가는 노포 '칸다 마츠야'에서 닭고기양념구이와 자루소바, 카모소바를 먹은 뒤 후식으로 바로 옆의 일본풍 과자 가게 '타케무라'에서 튀김 만주와 안미츠를 먹었다. 마츠야의 카모소바는 그야말로 깊은 맛이 느껴지는 훌륭한 한 끼 식사였고, 타케무라의 튀김 만주는 한 박스 사서 한국으로 가져가고 싶을 만큼 바삭바삭한 겉과 부드러우면서도 부담스럽지 않게 달달한 팥앙금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과자였다. 날씨가 더웠기 때문에 시원한 얼음에 곁들여 나오는 안미츠도 무척 맛있었다.

돌이켜 보면 이렇게까지 좁디좁은 반경 안에서 머물렀던 여행이 있었을까 싶은 느낌이기는 하지만, 이후의 2박 3일간은 오롯이 칸다와 아키하바라, 우에노 근방에서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틈틈이 우에노 공원을 돌아다니고, 클림트 전시회가 너무 보고 싶어 찾아간 미술관에서는 두 번이나 허탕을 쳤고, 맛있는 먹거리를 찾으러 가고, 일요일 아침에는 근처의 성당에 미사를 드리러 가고, 마지막 날에 라쿠고 공연을 보러 렌자쿠테이 요세에 찾아가는 등의 일정은 있었지만, 그 사이에는 매우 꼼꼼하게 아키하바라를 돌아다니며 2주년 축제를 아낌없이 즐길 수 있었다.

 

첫날 저녁, 우에노 쿠로후네테이에서 먹은 경양식. 하야시라이스와 오므라이스, 롤캬베츠.
둘째날 점심, 칸다 진보초에서 먹은 '본디' 커리. 감히 도쿄 최고의 커리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둘째날 간식으로 먹은 니시닛포리 파티셰리 '이나무라 쇼조'의 몽블랑과 시그니처케이크 '눈물' 둘째날 저녁 신니혼바시에서 먹은 '카네코한노스케'의 텐동 세트. 셋째날 공항으로 가기 전에 먹은 아사쿠사바시 '나루토타이야키혼포'의 팥붕어빵.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아키하바라 주변에는 수많은 오타쿠 굿즈샵이 존재한다. 그 중 이름이 널리 알려진 거대 체인들이라면 모두들 밀리시타 2주년 콜라보 이벤트를 벌이고 있었다. 이들 굿즈 샵들을 하나씩 돌아가며 방문하고 가게에 비치된 도장을 찍으면 기념품을 주는 스탬프 릴레이도 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콜라보 이벤트를 하는 샵들을 빠짐없이 돌아다니며 방문할 수 있었다.

이렇게 비치되어 있는 스탬프 랠리 종이를 받아 거리 곳곳에 흩어진 포인트를 찾아다니며 도장을 찍는다.

어느 가게나 호화로운 전시 품목들로 가득했는데, 실제로 성우들이 라이브 이벤트에서 입었던 의상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도 있고, 건물 곳곳에 등신대 입간판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는 곳도 있었다. 캐릭터들과 연관 있는 물건들을 한데 모아서 전시해 둔 공간도 흥미로웠다. 누가 어떤 물건을 놓고 갔나? 하며 맞혀 보는 재미랄까. 길거리 어느 곳을 가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작품의 캐릭터들이 반겨 주는 경험이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하루 종일 쉼 없이 돌아다니면서도 지치는 줄을 몰랐다.

 

라이브 이벤트에 사용된 의상들.
라디오회관의 각 층을 돌아다니면서 아이돌들의 입간판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아이돌 캐릭터들의 상징적인 물건을 모아서 전시해 두기도 했다. 열혈 프로듀서라면 누구나 알아볼 법한 요소들이 만재.
가게와 콜라보를 진행하기도 하고, 기념 와인을 판매하기도 한다(!)
이렇게 많은 앨범들이 나왔구나 하고 새삼 감탄하게 된다.

굿즈샵에서 정신줄을 놓고 물건을 잔뜩 사 모으기도 하고, 전시되어 있는 물품들의 종류와 양의 방대함에 놀라기도 하다 보니 2박 3일이라는 짧은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3주년 행사 때도 꼭 오자, 매년 꼭 오자'라고 둘이 다짐했는데, 3주년을 맞이하는 해인 2020년에 하필이면 코로나바이러스가 터지는 바람에... 기념 행사 또한 상당히 축소되어 진행되었다고 하니 그나마 아쉬운 마음이 조금은 덜어졌지만, 이렇게 '좋아하는 작품과 좋아하는 캐릭터들로 가득한 공기 속을 숨쉰다'는 경험을 하기란 쉽지 않다 보니 때가 되어도 도쿄를 찾지 못한 작년 여름 우리 부부의 입에는 시종 '아 도쿄 가고 싶다'라는 말이 붙어 다녔다는 후문이다. 요새 쓰고 있는 여행기의 거의 대부분이 '코로나 좀 빨리 사라져라'로 끝나는 것은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긴 하지만, 그만큼 간절하다는 거지.

 

올해나 내년에는 다시 여기에 흔적을 남길 수 있기를...
그리고 광란의 (이하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