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문기

[방문기] 경기도 의왕시 '베라 커피 아울렛'

by 집너구리 2021. 4. 3.

개인적인 용무 때문에 경기도 남부 쪽을 가야 할 일이 있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전부터 가고 싶었던 커피용품 전문점에 가 보기로 했다. 거의 단골 수준이 된 어라운지, 상당히 만족스러웠던 이곳은커피용품마켓 이후로 세 번째 방문하는 커피용품 전문점인데,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누가 봐도 처음 커피 덕질에 입문하는 사람이 신나서 여기저기 쏘다니고 열심히 글 써서 올리는 느낌이라 우습다. 아 뭐 어때 내가 즐거우면 그걸로 장땡 아닌가!

 

베라 커피 아울렛은 '인덕원IT밸리'라는 건물에 자리잡고 있는데, 사실 굳이 따지자면 소재지는 경기도 의왕시이고 인덕원에서는 약 1.5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안양/의왕/군포는 경계를 따지는 게 사실상 무의미할 만큼 시가지가 연담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무조건 '인덕원'만을 연상하며 길을 찾다가는 실수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물론 운전해서 가는 사람들이라면 내비게이션의 길 안내만 잘 듣고 가면 쉬이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베라 커피 아울렛뿐만 아니라 이 건물 안의 다른 업체를 방문한다 하더라도 최소 30분은 무료주차를 할 수 있다고 하니, 참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층에 있는 베라커피 카페 매장. 이 매장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엘리베이터가 있다.

 

인덕원IT밸리는 지하로 공간이 뚫려 있는 중정을 둘러싸고 몇 개의 큰 건물이 서 있는 형태로 되어 있다. 이 중 우리가 찾아가야 할 곳은 A동이다. A동 1층에는 엄청나게 거대한 크기의 '베라커피' 카페 매장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서 커피를 마셔 보는 것도 좋겠지만, 일단은 쌩하니 매장 앞을 지나서 건물 안으로 내려가 엘리베이터나 계단을 탄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야 베라 커피 아울렛이 나온다. 아울렛에서 얼마 이상 물품을 구매하면 위층 카페에서 음료를 한 잔 마실 수 있는 쿠폰을 준다고 하니, 이용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지하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나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광경은 제법 넓은 공간으로 연결되는 문이 있고, 그 옆으로 다양한 커피 용품들을 할인가로 팔고 있는 진열대의 모습이다. 유통기한이 가까워진 시럽이나 커피믹스 등 식자재를 비롯하여, 유명 커피용품 브랜드(칼리타, 멜리타, 하리오 등) 제품들의 중국산 카피 제품들이 주로 진열되어 있다. 물론 개중에는 카피가 아닌 진짜 제품들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진열되어 있기도 하다. 쭉 둘러보고 안으로 들어간다.

 

가게에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장면. 모카포트도 제법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다. 안캅 도자기 모카포트가 이채롭다.
저렴하고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는 원두들. 사오고 아직 맛은 못 봤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다양한 종류의 그라인더와 탬퍼, 원두와 드립용품들을 전시해 둔 진열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직 초심자인지라 깊이 아는 내용이 없다 보니, 탬퍼나 그라인더 쪽은 한번 슥 보고 지나갔다. 원두의 경우 정말 다양한 종류의 제품들이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는데, 정면으로 보이는 선반에는 200g 단위로 포장된 원두들이 주로 놓여 있었고, 오른쪽의 조명이 깔린 선반에는 500g에서 1kg 단위로 포장된 대용량 원두들이 놓여 있었다. 예전에 지인에게서 선물받았던 에티오피아 아리차가 맛있었던 기억이 나서, 평소에 먹어 보고 싶었던 케냐 AA와 함께 각 한 봉지씩을 구매했다. 200g 원두의 경우 아무리 비싸도 만 원을 가까스로 넘는 구성이었기 때문에 주머니가 얄팍하더라도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내가 원하는 원두를 고를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엄청난 수의 푸어오버 드리퍼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는 브루잉 도구들. 콜드브루와 사이펀 등도 눈에 띈다.
찻잔과 티백 차들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어라운지가 카페 사장님들 취향에 기울어져 있는 편이고, 이곳은커피용품마켓이 홈카페 매니아들 취향에 기울어져 있는 편이라면, 베라커피는 "어쨌든 물량으로 승부한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앞의 두 가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공간 안에 엄청나게 많은 물건들을 창고처럼 진열해 두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카페 영업장이나 홈카페 매니아들이 각각 찾을 법한 물건들이 모두 준비되어 있고, 때로는 생판 처음 보는 브랜드의 물건들이 빽빽하게 전시되어 있기도 했다.

 

실제 매장에서 쓰이는 2그룹 이상의 에스프레소 머신과 제빙기, 캔실러 등도 있다. 전문가용 그라인더도 다양하게 구비돼 있다.

 

막 에스프레소에 입문하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더욱 즐거웠던 점은 사업장용 머신과 그라인더도 다양하게 구비해 두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카페 창업 같은 건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으나(사업은 너무 무서워), 커피를 내리고 스팀을 치기 위한 목적으로만 만들어져 있는 번쩍이는 기계들을 멍하니 구경하고 있자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는 것이다. 20세기 초에 최초의 에스프레소 머신이 발명된 이후로 더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만들기 위해 이렇게까지 기계를 발전시켰다는 사실이 흥미롭거도 하거니와, 수상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각종 장치들이 기계 앞면으로 우둘두둘하게 붙어 있는 것을 보면 괜히 스팀펑크스러운 느낌도 나고 즐겁지 않은가. 마침 에스프레소를 내릴 때도, 우유 거품을 낼 때도 스팀을 활용한다는 것을 떠올리자면 더더욱 흥미롭다. 실은 에스프레소 머신이야말로 현대의 실생활 속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스팀펑크 머신의 한 갈래가 아닐까.

 

아쉬운 것은, 한 바퀴를 죽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도 원두 외에는 딱히 뭔가를 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 지갑은 지켜졌을지도 모르지만, 요새 하리오 핸드밀이 헛돌기 시작해서 새 핸드밀을 볼까 하는 생각도 없잖아 있었던 상황이었음에도 준비되어 있는 핸드밀 제품들은 거의 대부분이 중국산 카피 제품들이었다. 비단 핸드밀뿐만 아니라, 진열되어 있는 상품들 중 많은 부분이 포장에 쓰여 있는 엉터리 영어를 감수할 생각도 하지 않고 내놓은 듯한 중국산 제품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커피 맛의 많은 부분을 그라인딩이 좌우한다는 시점에서 보았을 때, 품질 보장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는 카피 핸드밀을 사용했을 때 얼마나 가루가 균일하게 나올지는 저으기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저렴한 가격에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홈카페 용구들을 구비해 두기에는 좋겠지만, 본격적으로 커피 취미에 투자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라면 약간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내가 제임스 호프만과 같은 스페셜티 커피 쪽 전문가들을 통해 처음 커피의 세계로 입문하다 보니, 저으기 커피 스노비즘에 젖어 있을 수도 있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