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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기

[방문기] 서울 영등포구 '어라운지 선유도점'

by 집너구리 2021. 2. 28.

지난 주에 적은 이 글에서 '선유도 어라운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집에서 상대적으로 가까워 걸어가도 (나 같은 극도의 산책 오타쿠 기준으로) 어렵지 않은 코스이기 때문에 종종 들르곤 하는데, 이번 주말에도 시간 여유가 좀 있어서 바람도 쐴 겸 다녀오기로 했다.

 

2021/02/22 - [잡담] - [방문기] 고양시 일산서구 '이곳은 커피용품 마켓'

 

[방문기] 고양시 일산서구 '이곳은 커피용품 마켓'

개인적인 일이 있어 카쉐어링으로 차를 빌려서 경기도 근교를 다녀오는 길에, 그동안 벼르고 있었던 곳에 가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싶었다. 최근에 커피 내리는 일에 빠져 있다 보니 커피 용품이

sankanisuiso.tistory.com

바로 다음 주부터 봄을 알리는 3월이 시작된다는 것을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한낮의 서울은 도저히 겨울 옷차림으로는 돌아다니기 어려울 만큼 따뜻했다. 듣자 하니 최고 기온이 10도가 넘어간다나. 나름대로 얇게 입는답시고 니트 한 장 위에 겨울 코트만 달랑 걸치고 나갔는데도 고작 1킬로를 걸었을 뿐인데 땀이 뻘뻘 나기 시작했다. 조금 더 얇은 코트를 입고 나올 걸 그랬다는 생각이 한 대여섯 걸음마다 한 번씩 나는 것 같았다.

 

어라운지로 향하는 길의 최대 난코스는 한강 다리를 건너는 부분이다. 성산대교만 건너면 얼마 지나지 않아 어라운지에 닿을 수 있지만, 사방이 뻥 뚫려 있는 길이 1400미터 남짓의 다리 위를 걷는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경험만은 아니다.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에는 양산 없이는 다니기 힘들고, 칼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에는 눈만 내놓고 다녀야 겨우 사람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리 위를 걷기 가장 좋은 계절이 언제인고 하니, 바로 요즈음과 같은 봄과 가을이다. 적당히 따뜻한 햇볕과 적당히 솔솔 부는 바람으로 인해 상당히 쾌적하다. 물론 그 밖에도 "자전거 탑승 금지"라고 덕지덕지 쓰여 있는 표지판을 개무시하고 연이어 쌩쌩 달려가는 무매너 라이딩족들이라든가 아무런 기복 없이 15분 이상 같은 풍경 속을 멍하니 걸어야 한다는 등의 사소한 문제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문제들은 다리 양옆으로 펼쳐진 멋들어진 한강의 풍경을 보면 절로 잊혀지곤 하는 것이다.

 

 

노들길 대로변을 걷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둑방길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을 타고 내려와 골목을 두어 블록 정도 걸으면 커다란 창고 비슷한 형태의 가게가 나타난다. 벽에 'AROUNZ'라고 쓰인 거대한 엠블럼이 붙어 있는지 확인하자.

창고 비슷한 형태라기보다는 사실 창고를 개조한 게 아닐까 싶다. 이 동네에는 오래 된 산업시설들이 제법 많이 남아 있다.
가게 밖에는 다양한 추출 기구를 그려놓은 메뉴판이 그려져 있다. 메뉴의 가격이 놀랄 만큼 저렴하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널찍한 개방 공간이 나타난다. 사진을 찍어 두지 못한 것을 지금 발견해서 아쉽다. 이곳에서는 보통 오래 된 재고 상품들을 저렴한 가격에 진열해 두고 팔곤 한다. 운이 좋지 않다면 아무것도 진열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이번에 갔을 때는 실제로 코코아 가루와 시나몬 가루밖에 없었다), 때로는 핸드밀이나 그라인더 등 제법 고가의 커피 용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개방 공간을 지나서 진열 공간 안으로 들어오면 바로 압도적인 사이즈의 로스터기와 원두 진열장이 눈에 들어온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생두들이 진열장에 전시되어 있고, 여기에서 원하는 원두를 골라 진열장 오른쪽에 비치된 주문서에 적어 요청하면 약 15분 후 갓 볶아진 원두를 받을 수 있다. 가스가 배출되기까지 1-2일 정도 둔 다음에 내려 마실 때 가장 맛있다고.

문간 벽을 빼곡히 채운 원두들.
각 원두의 특성을 살펴보고, 이에 맞춰서 바로 로스팅 주문을 할 수 있다.
안쪽 진열 공간. 앞부분에는 커피 원두와 각종 카페용 식자재들이 전시돼 있다. 시럽이라든가, 믹스라든가.
조금 더 들어가면 다양한 커피잔과 카페 용품들이 있다. 브랜드가 붙지 않은 저렴한 용품들도 많아서 얄팍한 호주머니맨은 감사할 따름.
커피 가는 곳에는 꼭 차가 가더라...
무난한 수준에서 구비되어 있는 핸드밀과, 상당히 넓은 범주로 준비되어 있는 드립 주전자.
카페용 앞치마도 준비되어 있다. 옆에는 다양한 커피필터 용지들. 에어로프레스용도 있다!
모카포트는 비알레띠 것밖에 준비되어 있지 않지만, 드리퍼는 엄청나게 종류가 많다. 에어로프레스도 팔고 있는 게 놀랍다.

지난 주에 갔던 '이곳은 커피용품 마켓'이 좀더 다양한 종류의 용품을 준비해 놓고 있는, "홈카페 매니아"들을 위한 공간이라고 한다면, 어라운지는 홈카페보다는 보다 카페 사장님들의 취향에 가깝게 물건을 준비해 놓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를테면 모카포트를 실제 사업장에서 쓰는 일은 잘 없겠지만, 핸드드립이라면 일반 카페에서도 종종 맛볼 수 있기 때문에 종류를 다양하게 준비해 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의 가장 큰 강점이라면 역시 갓 볶은 원두를 바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원두는 로스팅 날짜가 생명이기 때문이다. 덧붙여서 블렌딩을 처음 시도해 보는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원두를 조금씩 사서 블렌딩해 보면서 자기 입맛에 맞는 조합을 찾는 것도 하나의 재미일 테니.

 

선유도공원에서 고작 도보로 7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으니, 선유도공원에 놀러 나온 커피덕후라면 한 번쯤은 가 보는 것도 좋겠다.